일상의 공간에서 특별한 장소로

Kenko kuma_Nezu museum

by demji

일상은 영위되어야 하지만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무미한 시간은 가을의 붉은 잎, 황금 들판을 탈색시킵니다. 하지만 어제와 같은 일상은 건축을 통해 특별한 곳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공간에 '장소'를 생성하는 것은 건축이 가진 잠재력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은 모든 건축이 가질 수 있으나 대부분의 건축이 지니지 못하는 특질이기도 합니다. 건축을 통한 '장소' 만들기는 건축의 직능을 멋있는 형태 만들기와 면적 확보로 한정하는 한 절대 얻을 수 없는 건축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장소를 만들어내는 공간적 어휘들은 대개 낯선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창조되어 사람을 놀라게 하고 주목을 끄는 그런 것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평소에 접할 수 있었던 그런 것,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나머지 건축 디자인 요소로서 인식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기법을 통하여 사용됨으로써 일상의 공간을 놀라운 장소로 재탄생시키기도 합니다.


켄고 쿠마 Kengo Kuma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기존의 건축 구법을 자신만의 것으로 번안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건축가입니다. 그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일본이라는 지역성에 바탕을 두면서, 건물이 위치할 사이트의 지역성과 재료를 탐색하고, 그 재료를 구성하는 새로운 구법을 창안하여 활용하는 추종 불가한 강점을 지녔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의 초기 작업에서 엿보였던 아쉬움은 그의 강점이 이것에만 한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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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9년에 개관한 네즈 뮤지엄 Nezu museum에서, 그는 자신의 한계를 완벽하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모든 공간이 아름답지만 뮤지엄 초입에서 거쳐가는 처마 밑 공간은 압도적입니다. 번잡한 도로에 인접한 이 좁은 공간이 도시의 시각적, 청각적 소음을 모두 차단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장소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일견 그저 익숙한 처마 밑 공간입니다. 단지 캔틸레버로 길게 뽑히고, 돌과 자갈이 깔렸으며 투시형 담장과 대나무로 위요되었을 뿐입니다. 별다른 디자인이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분위기는 특별합니다.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재료의 조합과 디테일의 구법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좋습니다.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일본의 전통과 현대성, 기술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전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디테일과 디자인의 미감보다는 처마 밑 공간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인지 이 곳의 이미지가 건물 전체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서면서 일상적이지 않은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했음을 느낍니다. 건축에 대한 화제로 대화를 시작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무엇인가를 관찰하듯이 공간 속을 배회하거나 합니다. 그것은 일상이 특별함으로 치환되는 순간입니다.


과연 특별한 장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그 모든 소재는 일상에, 우리 주변에 숨겨져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날카로운 눈썰미로 발굴하여 진부함을 털어내고, 폭력적인 일상에 맞서 세상에 드러내었을 때 새로운 장소는 비로소 조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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