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해안선에 붙은 마을

<반공교육? 받아보셨나요?>

by 차유진

동쪽 해안선.

바닷바람은 파도를 타고 모래사장을 지나

마을 골목골목까지 바다 냄새를 진하게 퍼뜨렸다.


비릿한 오징어 냄새는 겨울보다 여름에 더 짙었고,

여름철이면 해수욕하러 온 외지 사람들로 마을이 북적거렸다.

해안의 풍경


우리는 바다를 사랑했다.

하지만 바다가 언제나 평화롭다고는 믿지 않았다.


바다가 심술을 부리면

상상 이상의 큰 비극이 찾아왔고,

마을은 줄초상이 났다.


바다는 사랑의 대상이자, 두려움과 애증의 대상이었다.


바다가 숨기고 있는 또 다른 얼굴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바다는 가끔, 아주 드물게

우리도 모르게 저 위쪽 사람들의 불법 입국장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해안선은 늘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다.


뉴스보다 먼저,

우리는 학교 분위기로 눈치를 챘다.


“간첩 내려왔나 보다…”

“해안선 따라온 거야? 산으로 온 거야?”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가슴은 쿵쾅거렸다.


공비가 무서워서라기보다,

그때 간첩 포상금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두근거렸던 것이다.

오래된 시골의 학교

조기 하교와 선생님의 복수


학교는 조기 하교를 했고,

하루 이틀 정도 휴교가 이어졌다.


선생님들은 학습계획이 꼬여 속을 끓였지만,

우리야 선생님 사정 따위 알 바 아니었다.


학교를 쉰다?

그거면 충분했다.


하지만, 얄밉게도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복수하듯 숙제를 쏟아냈다.


반공 포스터 1장, 반공 표어 2개 이상, 반공 글짓기 1편.


“선생님! 이러실 거면 그냥 학교 나오겠습니다!”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휴교령이 내린 동안 숙제는 피할 수 없는 우리 운명이었다.


유치원의 기억 <빨강토끼와 파랑토끼>

구연동화 시간

유치원 시절,

구연동화 시간은 모두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목소리 톤을 바꿔가며

1인극을 하듯 책을 읽어주셨고,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동화에 빠져들곤 했다.


그런데 1주일에 한 번,

선생님이 책을 읽지 않고

커다란 회색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내오는 날이 있었다.

둥그런 스피커 구멍이 양쪽에 박혀 있는,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테이프가 돌아가고, 선생님은 큰 책을 그림 쪽이 보이도록 우리에게 펼쳐서 보여주셨는데, 그림책은 선생님 손에서, 테이프에서 나오는 내용과 딱딱 맞아떨어지게 책장이 넘어갔다.


“옛날 옛날에, 평화로운 파랑토끼 마을이 있었어요.”


동화 속에서는 빨강토끼들이 늘 문제를 일으켰다.

평화롭게 꽃을 따던 파랑토끼들을 놀리고, 때리고, 음식을 훔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정말 ‘나쁜 빨강토끼’ㅅㄲ 들이었다.


선생님은 동화가 끝나면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빨강토끼들은 나쁜 토끼야.

우리는 파랑토끼처럼 착하게 살아야 해.”

그럼 우리들은 큰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세트 플레이어

그땐 몰랐다.


빨강토끼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파랑토끼가 정말 완벽하게 착하기만 했는지.


그저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빨강토끼는 나쁜 존재라고 믿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동화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반공교육’의 일환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어릴 때부터 세뇌되어 자랐다.


삼촌과 <6.25는 비겼다> 표어


공비 소식으로 조기 하교를 하고,

반공 숙제에 허덕이던 오후


반공표어 숙제를 하다 아이디어 고갈에 직면한 나는

삼촌에게 도움을 청했다.


방바닥에 엎드려 만화책을 읽던 삼촌은

툭 던지듯 말했다.


“6.25는 비겼다. 다시 한번 붙자.”


나는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뒹굴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진심으로 이걸 제출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선생님께 혼날 생각에 결국 평범한 표어를 냈다.


친구네 집, 군인 아저씨들


공비가 잡혀서 휴교령이 끝나고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친구 @@이 신이 나서 말했다.


“우리 집에 군인 아저씨들이 와서 며칠 같이 있었어.”


@@이 집은 산 초입에 있었다.


마당에 텐트를 치고,

건빵도 나눠주고,

모닥불도 피웠단다.


별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그게

영화 같은 모험담이었다.


나는 부러웠다.

왜 우리 집은 산이 아니라서,

군인 아저씨들이 오지 않았을까.

아.. 무척이나 @@이 부럽고 모험을 못해 아쉬웠다.


바다를 보며


바다는 한없이 낭만적이어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한없이 깊어서

두렵기도 하다.

바다의 심연 그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바다처럼 양면성을 뚜렷하게 가진 존재가

또 있을까..


바다를 통해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바다를 통해 간첩을 보내는 북한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난 이왕이면 바다가 좋은 통로로 이용되길 바란다.

그건 바다 입장에서도 그럴 거라 생각된다..

흠.. 아마도.. 말이다..


아름다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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