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Travis Scott [상편]
힙합 뮤지션을 넘어 문화의 아이콘이 된 트래비스 스캇, 스니커즈 리셀 문화에 ALL NEW 깡패 감성을 이식한 악명 높은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랩 모르고 패션 몰라도 그의 이름은 다 아는 것이다.
트래비스 스캇은 약삭빠른 전술가 캐릭터다. 하지만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전략가 타입이기도 하다. 그는 데뷔 초부터 자기 창의의 결과로 세상 사람 모두를 감동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그려왔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몽상가만도 아니다. 그는 거듭 결과 증명을 통해 보여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묻히면 코 묻은 돈이 따라와서 마케팅과 브랜딩은 트래비스 스캇을 졸졸 따라다니는 대표 해시 태그가 되었지만, 그는 노상 자연빵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트래비스 스캇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탐구하려면 그의 랩 스킬이나 패션 스타일이 아닌 프로듀싱 능력과 이력에 먼저 집중하는 편이 더 낫다. 스스로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 파트로 ‘프로듀싱’을 꼽기 때문이다.
(예고: 그의 패션 스타일을 다루는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해주시라.)
뉴비 시절의 그를 도둑놈이라고 표현하는 평론가도 많았다. 데뷔 믹스테이프 <Owl Pharaoh>(2013)부터 <Days Before Rodeo>(2014) 그리고 정규 데뷔 앨범 <Rodeo>(2015)에 이르기까지 스캇의 커리어 초창기, 사람들은 트랙에서 칸예나 키드 커디가 보이고, 치프 키프나 믹 밀, 에이셉 라키가 들린다고들 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중 하나는 랩 커리어 초기의 스캇은 (후술할 그의 멘토 칸예처럼) 똘똘한 편집의 달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히트곡의 대표 구절을 따 오고 인기 사운드를 따 오고 랩 스타일을 따와 적절히 믹스했다. 특히 에이셉 라키와 그는 랩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로 자주 엮여왔는데, 언젠가 라키 크루의 멤버는 이 놈이 우리 스타일을 계속 따라 한다며 스캇을 고소하기도 했다.
제발 걔랑 날 비교하지 마.
그거 나 모욕하는 거야.
이건 디스 랩도 아니고
우린 딱히 적도 아냐.
걔는 히트곡에 혈안,
나는 역사를 쓰려고 발악
- 에이셉 라키의 프리스타일 중에서
하지만 트래비스 스캇은 그것들을 뛰어넘어 고유의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었고 시그니처 라인을 개발했으며 실험적인 사운드에 도전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만 그것을 폭넓게 감싸는 자기만의 날카로운 감각이 살아있는 '어둠 속에서 (약에) 취하는 듯한' 사운드스케이프와 두 말하면 입 아픈 그의 오토 튠 보이스까지 더해져 그 자체로 트래비스 스캇스러운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스스로 이르길 ‘신계의 비트와 미친 랩핑’이란다.
그는 일찍이 미국 힙합계의 두 거물 카니예 웨스트와 T.I로부터 각각 좋아요와 찜, 알림 설정을 받은 인물이다.
2012년에는 칸예(예)의 레이블 ‘굿 뮤직’ 레이블과 계약했고, 2013년에는 티아이(팁)의 그랜드 허슬 패밀리에 조인했다. 칸예와는 프로덕션 딜을, 티아이와는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계약을 마쳤다. 다시 말해 그는 프로듀싱 천재로부터는 프로듀싱 인증 도장을, 스타일리시한 랩 거물로부터는 랩 인증 도장을 받은 것이다. 탄탄대로의 신호탄이었다.
데뷔 초의 그는 선배 래퍼 ‘키드 커디’의 자타공인 빠돌이였다. 자기는 그저 키드 커디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랩을 하는 것이며 오직 그가 선물한 영감이 있기에 음악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서 과도한 너스레를 떨며 추앙했다. 일례로 데뷔 믹스테이프를 발매하고 난 이후에 스캇은 키드 커디의 초상화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는 ‘성배’라는 캡션과 함께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기도 했을 정도다.
나 좋다며 미친 사람처럼 팻말 흔들고 따라다니는 후배 래퍼가 사랑스럽지 않을 턱 없는 래퍼 ‘키드 커디’ 또한 역으로 ‘트래비스 스캇’을 홍보하고 대놓고 예뻐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캇은 키드 커디의 멘토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카니예 웨스트’와 만나게 된다.
이후 트래비스 스캇은 칸예의 가장 실험적인 앨범으로 손꼽히는 <Yeezus>(2013)의 두 곡 ‘New Slaves’와 ‘Guilt Trip’의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고, 연달아 대선배 래퍼 ‘제이지’의 <Magna Carta Holy Grail>(2013)의 ‘Crown’을 프로듀싱하고 곡 참여까지 완료한다.
이 정도면 2013년은 그의 힙합 인생의 원년이라고 부를 수 있겠으며, 신입이 보여줄 수 있는 지고의 가치 창출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역시 미친 전략가이고 전술가인 것이다. 심지어 스캇은 힙합계의 대부호 퍼프 대디와도 막역하다.
삼면이 힙합의 왕으로 둘러싸인 그의 앞길을 누군들 막을 수 있었을까.
아티스트가 글 쓰는 걸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어요. 제게 다짜고짜 이메일을 보낸 스캇은 진짜 똑똑했어요. 그리고 그의 샘플을 몇 곡 듣고 칸예와 연결시켜줬죠.
- 뮤직 엔지니어 Anthony Kilhoffer
아이콘으로서의 트래비스 스캇을 이야기하려면 아티스트로서의 셀프 브랜딩을 본격화한 2016년의 2번째 정규 앨범 <Birds In The Trap Sing McKnight>(2016)의 발매 이후를 얘기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전설적인 사진작가 닉 나이트가 참여한 앨범 커버를 통해 그는 악마의 날개를 달고는 특유의 신비롭게 취한, 정신줄을 놓은, 매섭게 노려보는 영혼 가출남의 컨셉을 확고히 했다. 그는 무엇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사실 무얼 얘기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잔뜩 분위기를 잡아놓고(사운드적인 측면에서) 잘 나가는 동료들을 싹 다 불러 모아 함께 랩했다. 딱히 차린 건 없지만 분위기 하나는 끝내준다면서 간지가 철철 흘러넘치는 생일 파티에 초대하는 개핵인싸의 느낌이랄까.
그는 섹스랑 약 얘기뿐이냐는 다수의 비판을 피해 가며 그것들은 그저 메타포일 뿐이라고 설명했고, 나를 힙합의 틀에 가두지 말라면서 교묘히 빠져나갔다. 스스로 말하길 환각의 끝을 경험하게 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매일 머리를 흔들며 노력하는 자신은 사이키델릭 락 펑크의 에너지가 넘치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노랫말이 어떻고 주제가 어떻건 스캇이 천부적인 무드 메이커이며 호기심을 부르는 타고난 컨셉 장인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18년, 트래비스 스캇은 그가 어린 시절 실제로 들르던 고향 휴스턴의 식스 플래그 테마 파크로부터 영감을 받아(2005년에 문을 닫았다) 정규 3집 앨범 <Astroworld>를 제작했다. 전작에 비해 월등히 발전한 미친 사운드와 함께 그는 젊은이들의 기분을 고양시키는 가장 흥미롭고 섹시한 최고의 랩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무려 멀티 플래티넘, 멀티 그래미 노미네이티드 힙합 아티스트가 되었다.
실제로 10대 시절부터 트래비스 스캇과 쭉 함께 작업해온 사운드 장인이자 휴스턴 출신의 레전드 엔지니어 겸 프로듀서 ‘마이크 딘’은 앨범 아스트로월드의 5번 트랙 하나를 완성하는데만 1년이 걸렸다고 밝혔을 정도이니 앨범에 들어간 공을 감히 가늠하고도 남는다(스티비 원더와 키드 커디, 제임스 블레이크 등의 아티스트가 합일했으니 오죽했겠는가).
트래비스 스캇의 닉네임은 La Flame이다. 대충 불을 지피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는 무대 아래 팬들을 ‘Ragers’라고 부른다. WWE 레슬링 경기를 보고 자란 스캇의 와일드한 퍼포먼스 때문에 그의 공연은 미친 분위기를 자랑하는데 그는 이러한 상황에 걸맞은 하입한 사운드를 추종한다. 옛 K-힙합의 도끼 식 표현으로 ‘털ㄴ업’ 사운드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2021년 11월의 아스트로월드 페스티벌 대참사로 이어지게 된다. 지나치게 흥분해 정신줄을 놓은 관객들이 한쪽으로 쏠리며 아수라장이 벌어져 10명의 관객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 기절한 사람 살리라며 손을 흔들고 소리 질렀지만, 흥분한 사람들은 그들을 짓밟고 더 방방 뛰었다. 정말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콘으로서의 그를 조명하기 위해서 짧게 줄이지만 상당히 안타까운 사고였다. 욕도 보통 많이 먹은 것이 아니다.
2015년, 일본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베이프’와의 연합 컬렉션을 발매한 이래로 그는 나이키, 맥도널드, 포트나이트, 플레이스테이션, 디올 등 최고의 브랜드와 함께 협업을 진행해왔다. 대중들에게도 스캇은 그의 음악보다는 트래비스 스캇 나이키와 트래비스 스캇 디올이라는 브랜드 합성어로 사실 더 잘 알려졌다. 그는 가수보다는 인플루언서에 가까웠다.
디올 맨즈의 아트디렉터 킴 존스는 스캇이 어린 친구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으며 브랜딩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맥도널드 미국의 마케팅 대표는 그를 문화 아이콘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
크리에이티브나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이상한 선택을 하면 당신의 브랜드는 그냥 맛탱이 가는 거라고요.
성공적인 협업 왕자인 메가 인플루언서 스캇의 영업 비밀은 결국 자기가 잘 아는 것만을 골라서 슬기롭게 잘 선택한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던 뉴비 시절의 그에게 소중한 의미였던 맥도널드(그는 텍사스 대학을 중퇴하고 엄마 몰래 친한 친구와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차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해 온 그의 인생 슈즈 나이키 그리고 학창 시절의 탈출구가 되어주었던 플레이스테이션과 게임, 루이뷔통 시절부터 6년 넘게 꾸준히 연락하며 가깝게 지낸 킴 존스라는 인물까지 말이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대상과는 함께 일을 진행할 수 없다고 어떤 인터뷰를 통해 밝힌 부분은 이러한 점을 증명한다.
트래비스 스캇 나이키 슈즈의 경우에는 그의 승인 없이는 신발의 아일렛(끈이 들어가는 구멍) 모양이 작게라도 변경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디자인의 전 과정을 세심하게 컨트롤한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이러한 완벽주의는 그의 크리에이티브 스승이자 동서 지간이었던 강박의 왕자 칸예의 옆에서 그의 집착적인 직업윤리(?)를 보고 배웠을 공산이 크다. 결과적으로는 그러했기에 시대를 대표하는 스니커즈가 탄생할 수 있었으니 잘 된 일이지만 말이다.
진행하는 협업마다 대박을 친 그에게 새로운 ‘건수’를 찾아 헤매는 브랜드/마케팅 업계는 자연스럽게 ‘킹 오브 테이스트 메이커’의 작위를 내려줬다. 그리고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현재까지도 트래비스 스캇의 고공행진을 막을 길은 딱히 없어 보인다.
뭐든 배우고 싶고,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어요. 모든 걸 다 잘하고 싶고 다 알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저보다 더 많이 아는 걸 안 좋아해요.
휴스턴 지역의 느릿느릿한 화법으로 웅얼거리며 인터뷰하는 스캇이지만, 그는 언제나 큰 그림을 가지고 민첩하고 똘똘하게 움직여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소란스러운 버즈도 만들며 싸돌아다녔다. 아무래도 거기엔 그의 슈퍼스타 와이프 ‘카일리 제너’의 영향이 컸다. 코첼라 파티에서 만나 2017년 4월부터 공개 연애를 시작했던 그들은 동서 칸예와 킴 카다시안 커플만큼이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덕분에 딸내미 이름까지도 유명해졌다.
의도했건 안 했건 그는 슈퍼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타고났다기보다는 본인이 그렇게 노력하고 애썼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문화계의 관종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청춘을 다 보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좋은 실력을 한 번 더 뻥튀기해주는 든든한 뒷배로 가득하다는 현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스캇을 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든 일등공신과도 같은 조건이진 않았을까, 하는 허무한 결론 또한 내려본다.
스캇은 그의 4번째 정규 앨범의 타이틀이 <Utopia>가 될 거라며 2020년부터 말했다. 2018년 8월 발매한 3집 앨범 <Astroworld>(2018)의 타이틀과 컨셉을 2016년 5월부터 예고하던 그였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러한 예고 드립은 앨범의 기획과 구성을 허투루 하진 않는다는 것의 방증일 것이다.
그는 후속작을 말하며 유토피아를 이렇게 설명했다. 모두가 함께 앉아 평등을 이야기하는 곳, 서로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단 그냥 서로 보고 있어도 행복한 곳이라고 말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최측근 마이크 딘에 따르면 후속작의 사운드는 보다 더 훌륭할 것이며, 데뷔 믹스테이프의 느낌으로 회귀할 것임을 예고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게 귀했던 가진 것 없던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자기와 다시 마주하고 싶은 고독한 슈퍼스타의 모습이 느껴져 '유토피아'라는 앨범 타이틀이 왠지 조금 더 감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아이폰 메모장에 따로 저장해두고 곱씹던, 스캇의 대선배 래퍼 '제이지'가 그에게 선물했다던 귀한 교훈의 말씀이 머릿속의 알 수 없는 교량으로 연결되어 번뜩 떠올랐다.
우린 모두 부자로 태어나. 재산이 꼭 정신적인 성숙함과 일치하는 것도 아냐. 돈이란 건 어떤 거랑 연결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우린 그저 공동체 속을 살며 특정 수준의 부를 얻기 위해 노력할 뿐이지.
-미국 힙합 씬의 이명박 '제이지'
스캇이 설명한 유토피아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이렇게 좋은 말을 먹고 자라니 아이콘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