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건조한 삶, AI 언어 모델 그리고 이승환 2집
2009년의 여름 방학, 스무 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늦잠이나 자고 싶은데, 아빠가 나를 못살게 굴었고, 그 길로 운전 학원에 등록했다. 클러치와 액셀, 브레이크 위에서 발을 떼었다 눌렀다를 셀 수 없이 반복하고, 언덕길 위에서 몇 번인가 시동을 꺼뜨리고 나니까, 내 손에 네모난 자격증이 하나 쥐어졌다.
나 홀로 첫 운전은 짜릿했다.
온몸은 경직되고, 머리도 아팠지만, 어른이 된 기분은 쾌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겠구나. 행복했다.
그해 3월엔 대학에 입학했다.
매일 충무로에서 술을 먹었다. 10시가 넘고, 11시가 넘어도, 집에선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이게 어른의 삶이구나! 막차 시간이 임박해 왔지만, 언덕길만 오르면 과방이 있었다. 새벽에 낀 렌즈가 말라 뻑뻑해져도 괜찮았다. 충혈된 눈을 한 채 친구들과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미친놈처럼 술을 들이부었다. 즐거웠다.
2025년의 여름, 나는 출근하고, 퇴근하고, 운동하고, 밥 먹고, 글 쓰고, 책 읽고, 음악을 듣는다. 주말이 와도 같은 패턴의 일상을 반복한다. 예외란 없다. 그야말로 무미건조. 처음이 없으니 설렘이 없고, 반전이 없으니 떨림이 없다. 되게 배부른 소리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재미가 없다. 어쩌랴.
어제 2011년의 군대 일기장에서 우연히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라며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꼰대다. 작은 희망이나마 부지런히 찾아 나가는 것이 인생의 참된 의미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월급 딱 9만 원 받아서 책 사고 옷 사며 행복해하던 22살의 내가 36살의 나를 가르친다.
꿀밤을 한 대 세게 맞은 듯 머리가 띵! 했다.
아저씨, 그러니까 작은 희망이나마 부지런히 찾아나가세요. 그게 인생의 참된 의미랍니다. 아시겠어요?
넵!
시(詩)와 인공지능(AI)에 관한 세스 고딘의 언어 통찰이 흥미롭다.
“AI 언어 모델은 언어 자체에 내재한 가능성, 다시 말해 시(詩)가 본디 가지고 있는 성질(시성 詩性)을 추출하는 것이고, 인간이 그것의 잠재력을 받아들이고, 특정한 의도를 담아 ‘예술’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시가 된다”
GPT의 도움과 함께 단 한 편의 글이라도 완성해 본 이라면 깊이 와닿을 실로 멋진 비유다.
한편 7년 차 잔챙이 블로거로서 요즘 분명히 체감하는 것은 AI 검색 시대가 열리면서 블로그 콘텐츠의 소비 방식이 크게 변화했다는 점과 이에 따라 블로그 포스트의 조회수 역시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슬프군.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스눕피야.
네 앞에 펼쳐진 내리막길을 졸라게 축하한다!
R.I.P.
스눕피 SnooPy
2018.10 ~ 2025.07
검색엔진최적화(SEO)를 넘어 AEO(Answer Engine Optimization)는 물론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까지 신경 써야만 하는 피곤한 세상이다.
하지만 보기 좋고 듣기 좋고 읽기 좋은 콘텐츠의 본질은 변함이 없을 거란 나의 믿음 역시 변함은 없다.
긍정적 기여의 관점에서 나와 인공지능 세상 사이의 관계를 대체적으로 낙관하고, AI가 전하는 언어의 가능성을 분별하여 슬기롭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뜻밖의 감동을 담은 인간의 아름다운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승환의 <너를 향한 마음>(1991)을 듣는데, 마치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 번쯤 우연히 만날 것도 같은데,
닮은 사람 하나 보지 못했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일까,
저 골목을 돌면 만나지려나?
“만날 수 있을까”도 아니고 “만나지려나”라니!
흑흑ㅜㅜ
외부의 힘에 의해 그녀와의 만남을 입게 될지,
가볍게 추측해 보며 슬쩍 자문하는 남자 주인공.
한국어 문법 관점에선 꽤나 어색한 표현이지만,
감정적으로는 보다 큰 울림이 느껴진다.
찌질하고 소심한 남주의 상상 그릇 크기가 딱 내 수준이라서 그런지 어떤 애잔함까지 느껴졌다.
체념과 미련에 관해 생각해 본다.
체념은 미련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는 것이고,
미련은 깨끗이 잊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을 남겨두는 것이다.
체념은 체념대로 슬프고,
미련은 미련대로 우울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체념도 미련도 결국 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저 골목길을 화끈히 돌면 반드시 그(녀)와 만날 수 있을 거란 당당한 확신의 돌격이라는 옵션이 남아있다는 것 역시 잊G는 말자.
언젠가 이명박 옹은 자신을 자꾸만 귀찮게 구는 한 젊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젊은 사람들이 건강해져! 어?
마음을 쭉 피고 확 열고 그렇게 살어. 어?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생각해?
동의해? 오케이!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mM1jrvRNKgA?si=hXEpQX-ytR973c2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