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합니다.
외교부에서 카톡이 왔다.
두근두근.
[여권법 시행령 제45조]에 따라 나의 여권 유효 기간 만료일을 사전 고지한다는 메시지였다.
아, 그러니까, 미계획 지출을 종용하시는 거죠?
거부할 수 없으면 즐겨 버릴 것.
내친김에 여권 사진을 새로 찍기로 했다.
10년 만이다.
며칠인가 미루다가 집 앞 골목길 작은 빌딩 2층에 위치한 사진관에 예약을 걸었다.
아무렴 네이버 지도는 무조건 거리순이다.
시간에 맞춰 건물 앞에 도착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데 주변이 온통 어두컴컴했다. 이런 곳에 사진관이 있다고? 섬뜩한 불길함. 하지만 걱정도 잠시, 사진관 밖으로 새어 나오는 밝은 조명과 이름 모를 여자 아이돌 음악이 나를 안심시켰다. 이런 곳에 사진관이 있구나.
그리고 아뿔싸!
문 앞에 2열 종대로 전시된 다이소 슬리퍼 군단이 나의 맨발을 멋쩍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사적인 공간이 아닌 곳에서 맨발을 내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공감 못할 나 혼자만의 ‘예의’라고 쓰고 ‘유난’이라고 부른다. 할 수 없지. 뒤축이 다 닳은 반스 볼트 체커보드 슬립온을 조심스레 벗어 준비된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거두절미. 기사님께 인사를 건네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나의 기울어진 자세를 바로잡아주며 주목을 요구하는 기사님, 가늘고 긴 내 뒷목이 파르르 떨렸다.
찰칵, 찰칵, 찰칵.
금세 촬영이 끝났다.
뭐 힘든 일 했다고 그새 소파에 앉아 대기하는데, 기사님이 보정 전의 원본 사진을 보여주시겠다며 나를 불렀다. 제길슨, 이토록 못 볼 꼴이라니. 잡티와 비대칭의 하모니. 어떤 때의 나는 정당하게 내가 싫다.
10분도 채 안 되어 얼굴 점 하나 없이, 완벽히 좌우 균형이 잡힌,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보정본 속의 멀끔한 내가 탄생했다. 그리고 곧 그런 내 구라 같은 모습이 프린트된 여권 사진이 여러 장 담긴 조그만 디자인 깡통을 하나 받아 쥐었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여권 사진인데,
보정해도 되나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에어팟 속 음악 트랙 하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닥에 대충 앉아 2015년에 발급받은 철 지난 여권 속 그날의 나와 오늘의 나를 나란히 두고 비교해 본다.
점점 후퇴하는 헤어 라인과 성긴 머리카락, 사막처럼 푸석한 피부와 절벽처럼 닳고 닳은 단 몇 톨인가의 생기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가까스로 자위한다.
이런 식의 애잔한 위로에는 이미 이력이 붙을 때로 붙은 나란 인간은 참 질리지만서도, 그렇기에 대단히 인상적이다.
다만 조금 더 지혜로워졌기를, 너그러워졌기를, 눈으로는 안 보이는 진짜 소중한 인생의 가치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섬길 줄 아는,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었기를, 염치없이 바라본다.
10년도 더 된 여권 속 내 산뜻한 얼굴과 정확히 10살 더 까먹은 오늘의 내 푸석한 얼굴을 이리저리 겹쳐보면서.
그렇게 바보처럼 멍하니.
우린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
남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아.
난 근데 왜 이런 말을 계속할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너에게,
이젠 무엇도 믿지 않는 너한테.
Frank Ocean
<Close To You>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