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낮게 깔린 구름 덕에 무언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든다.
슬플 때는 슬픔 안에 온전히 잠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눈물을 흘려도 별 일이 아니게 되는 것처럼.
기쁠 때는 기분을 정돈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올라가는 것에는 반드시 내려오는 것이 동반된다는 것을 알려주며.
미끄러워진 길가를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신경 쓰지 않고 내달렸던 걸음을 하나씩 소중하게,
걸음마처럼 건넨다.
곳곳엔 물기가 가득하다.
묻어있던 떼를 닦아 흘려보낸다.
새로운 먼지가 쌓일 자리를 만들어준다.
하늘은 하루종일 어둡다.
새삼스레 밝은 빛의 소중함을 느낀다.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에 옷장을 뒤져본다.
좋아하던 겉옷을 찾아 어깨에 걸친다.
평소와 같은 날들을 지내던 와중에,
기분 좋은 환기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