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소리와 발도르프, 어린이집 그리고 육아원칙
뭐라도 써보자.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순 없지만 순간의 기억이라도 묶어두도록 어수선한 글이라도 써보자. 하고 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했다.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살며 내 삶을 돌이켜볼 시간도 없었는데, 최근 회사일이 약간 정리되어 짬이 났다. 사실 어젯밤에 나의 불안증이 일을 해, 혹시라도 살면서 내가 뚝딱이 곁에 있어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나의 일기라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쓸 마음을 먹은 것 도 있다. 서른두 살이 된 뚝딱이가 서른두 살의 엄마가 쓴 글을 읽으면 조금이나마 함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나이에 필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맘이다.
19개월 뚝딱이는 정말 말도 안 되게 귀엽다. 자아가 강해져 맨날 뚝딱이가, 뚝딱이 꺼, 뚝딱이! 를 달고 살고, 조금만 맘에 안 들면 다 쏟아버리고 던져버리고 울어버리지만, 그 모든 못된 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귀엽다.
할 줄 아는 말도 늘었고 하는 행동도 귀엽고 스스로 책도 펴보고 아기 인형 눕혀놓고 진찰도 하고 클레이 가지고 놀고.. 너무 귀여워서 회사에 있으면 얼른 집에 가서 끌어안고 싶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이런 뚝딱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고민이 많다.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육아 동지들을 보면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해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르다. 튼튼이 엄마는 영양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건강한 식습관과 건강한 신체에 관심이 많고, 제리 엄마는 예의 바른 아이로 자라는 것에 관심이 많고, 나는 아이 교육과 발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신학기를 맞아 어떤 어린이집에 보낼 것인가도 최근의 큰 관심사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유치원 교사인 동생의 영향을 받아 막연히 아이가 5살이 되면 보육 중심인 어린이집보단 교육중심인 유치원에 보내야지 생각했는데, 육아에 대해 공부할수록 생각이 바뀌고 있다. 막연히 유치원에 보내야지 했다가, 몬테소리 교육에 푹 빠져있을 땐 몬테소리 기관에 보내야지 생각했다가,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접하고 바깥놀이를 매일 할 수 있는 놀이중심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는 식이다. 어차피 몬테소리든 발도르프든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내가, 평범한 중산층의 워킹맘으로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비싸지 않은)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이념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 교육방식을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어렵다.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나만의 방향성을 세우고 그에 맞는 기관을 선택해야 한다.
이번에 기관을 선택하면서 생각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적기교육의 중요성"이다. 많은 육아서에 의하면 7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에게 적기교육이란 "책상 앞이 아닌 실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한다. 적기교육에 대해 듣고 있노라면 교직이수 시절 배웠던 내용이 떠오른다.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14살 무렵이라,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음수를 배운다고 한다. 발달이 조금 늦는 아이들은 음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워할 수 있는데, 몇 해가 지나면 수직 선위에 -1, -2를 쉽게 표시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비록 몬테소리에서는 놀이를 하지 않지만) 놀이 속에서 배우고, 직접 경험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발견하고, 실수에서 깨닫고, 어쩌면 방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약간의 심심함 속에서 스스로 상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이 시기에 꼭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싶다.
마침 직장어린이집이 이런 가치관에 부합했다. 대표적으로 비가 와도 바깥놀이가 가능하고, 물을 흘리더라도 빨대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놀이중심 어린이집이라는 점. 숲유치원 같은 발도르프 기관도 생각해보았으나 나의 일상생활과 출퇴근 동선까지 고려했을 때 직장어린이집이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지였다. 현재 다니고 있는 단지 내 어린이집에서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옮기는 게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이 되긴 하지만 어차피 7세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과감히 결단했다.
어린이집 선택 외에도 요즘 내 육아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침들을 이런 것이다.
아이는 조금 심심할 필요가 있다. 심심함 속에서 주변에 주어진 것을 가지고 노는 법을 깨닫는다.
너무 많은 장난감은 불 유익하다.
매일 자연과 함께해야 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뛰어놀어야 한다.
재미있게 놀면서 배워야 한다. 아이에게 모든 놀이는 가장 좋은 학습이다.
즐거운 놀이의 경험이 스스로 배우는 아이로 성장시킨다.
영어는 언어이다. 문자로, 교과목으로 학습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부터 일상생활에서 재미있게 사용한다.
학령기가 되어 필요할 때 기쁘게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며, 아웃풋을 기대하지 않는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진 생활 속에서 습득하는 경험이 가장 소중한 교육이다.
글자 교육은 되도록 늦게 시킨다. 스스로 깨닫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미디어는 되도록 재미있는 영어 영상으로, 내가 집안일을 해야 할 때만 보여준다.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영구적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면, 자잘한 상처를 얻는 것은 중요한 삶의 경험이 된다.
카시트는 최소한 두 돌까진 뒤보기한다.
36개월까지는 훈육하지 않는다. 수천번 다시 가르쳐준다.
울릴 필요가 없는 일에 괜히 울리지 않는다. 해줘도 문제없는 건 한 번에 들어준다.
하지만 떼쓸 때는, 울음을 그칠 때까지 들어주지 않는다. 떼쓰는 걸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준비하되, 안 먹으면 그냥 둔다. 밥은 식탁에서 먹는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아이와 몸의 일부가 맞닿은 상태로 책을 읽어준다.
하지 마! 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나는 다독하고 속독하는 사람이라,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보라 하면 아무리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몬테소리 교육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래서 몬테소리가 뭔데?라고 물어봤을 때 대답하기가 참 힘들다. 하지만 여러 가지 책을 읽고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접하며 나의 생활 속에 육아의 원칙과 방향성을 세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정리되지 않은 나의 생각과 깨달음이 사라질까 봐 이렇게 짧게나마, 두서없이 글을 써본다.
그래서 이렇게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내가 바라는 우리 아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냐고? 당장 지금부터 똑똑하게, 누구보다 빠르게 정답을 말하는 아이는 아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장의 아웃풋을 위해 아이를 압박하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우리 아이는 직접 겪어본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신뢰하고, 학습을 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학습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자라길. 훈장 같은 자잘한 흉터 위에 단단한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길. 약간의 상처는 나를 성장시킴을 기억하길. 때로는 울고 떼써도 가질 수 없는 것도,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다는 걸 배우길.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키우길. 규칙적인 생활과 영양가 있는 식습관, 매일 뛰어논 자연과 함께 건강한 아이로 자라길. 나중에 자랐을 때 "우리 집은 이렇게 재미있는걸 많이 했어!" 하고 되새길 추억이 많은 아이로 자라길.
아이는 이미 완성된 존재이고,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며 그 아이가 잘 자라도록 준비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몬테소리 여사의 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욕심을 버릴 것. 엄마만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