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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희 Dec 22. 2022

식사전쟁

밥을 신경 써서 먹이기로 한 이후부터 매일이 전쟁이다.

난리법석이 된 식탁과 바닥을 치우는 것보다 밥 먹이는 게 힘들어 7개월부터 아이주도 이유식을 해왔다. 먹으면 먹는 대로, 남기면 남기는 대로 아이의 식사량은 아이가 결정하는 거고 나는 양질의 식사를 제공해주면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잘 먹지 않으면 그냥 두었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마른 체형이었던 적이 없는 나는, 배가 안 고파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배고프지 않으면 안 먹는 남편 같은 사람으로 자라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도 평균키보다 크고, 남편은 아주 큰 사람이기 때문에 걱정이 덜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제법 잘 먹던 아이가 아이가 두 돌이 넘으면서 식사량이 점점 줄고 대신 군것질을 한다. 키 크는 속도가 더뎌지고 상위 90%던 키가 65%까지 떨어지며 남편과 아이의 식사량과 식습관에 신경 쓰기로 했다.

아이는 자기 입에 아주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면 잘 먹지 않아서 - 특히 밥을 안 먹는다 - 옆에 앉아서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 먹이는데 아주 고역이다. 남들은 이유식 할 때부터 연습해왔던걸 말통하고 스스로 먹을 줄 아는 32개월에 하려니 이렇게 스트레스받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입맛이 없어서 며칠째 저녁을 굶거나 거의 안 먹고 있다. 인생의 1/3을 과체중으로 살아온 나에게, 그 힘들다는 첫째 신생아 때도 식사를 거른 적 없던 나에게 아주 충격적인 일이다.


오늘은 일주일 동안 12시간씩 근무하던 남편이 오래간만에 쉬는 날이라, 저녁은 제대로 먹을 수 있겠다 기대했다. 어제 잘 먹었던 반찬들을 준비하고 함께 밥을 먹는데,  입에 음식을 넣은 채로 바람 불고 뱉고 포크로 얼굴을 찌르고 난리다. 요란 떨지 않고 입만 안 벌려도 스트레스인데 밥상머리에서 이렇게 장난을 치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다. 세 숟가락 남겨놓고 아이에게 말했다. "밥 그만 먹고 네 방으로 가서 혼자 놀아. 오늘은 간식도 먹을 수 없고 놀아주지 않을 거야."


아무렇지 않게 방으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얄밉다. 방에서는 신나게 노는 소리가 들린다.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며 주방정리를 했다. 진짜로 저녁내 안 놀아줄 순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잠시 뒤 아이가 방에서 장난감을 들고 나온다. 그래도 혼자 노는 건 심심했나 보지? 약간 마음이 풀린다. "방으로 들어가. 엄마가 주방 정리하고 부를 때까지 혼자 방에서 놀고 있어." 착한 내 딸은 군말 없이 방에 들어간다. 그러나 채 3년도 살지 않은 아이의 인내심이 그리 길던가, 곧 방문이 열리더니 장난감 강아지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또 방에서 나왔나 싶어 아이방 쪽으로 가보니 강아지인형뿐이다. 시위하는 건가? 웃기는 꼬맹이라고 생각하며 남편이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이가 방에서 나온다. "엄마가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지. 엄마 정리 거의 다 끝났어 기다려." 했더니 "멍멍이가 밖에 나가서 데리러 온 거야!" 한다. 요 깜찍한 꼬맹이가 어느새 자라서 엄마말을 듣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 내는 거지? 하는 생각에 남편과 눈을 마주치고 소리 없이 웃는다. 정리를 끝내고 아이에게 가려던 차에 우는소리가 들린다. “으앙~ 엄마 여기 아야 해요 “


아이방에 가보니 둥글게 마감처리된 아이침대를 가리키며 ”엄마 여기에 부딪혔어요 여기 뾰족해요.” 그런다. 하나도 안 뾰족한데? 둥근데? 하니까 금세 우는 척을 멈춘다. 어쨌든 엄마를 부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밥을 그만 먹고 싶으면 장난치지 말고 이야기해야 한다. 식사를 다 하지 않으면 간식을 먹을 순 없지만 엄마랑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설명해주니 엄마미안해요 - 하면서 배불러서 밥 그만 먹고 싶다고 한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나의 아기.


잘 안 먹는 아이 밥먹이며 스트레스받는 건 나만의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이 보기에 내 상태가 심각하며 그냥 밥을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게 두자고 한다. 쉬운 길이지만 옳은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잘 챙겨 먹이는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아이의 키가 부쩍 자랐기 때문이다. 대신 나도 이렇게는 안 되겠으니 남편이 있는 날은 남편이 아이 밥을 먹이기로 했다. 자랄수록 나아지겠지 막연히 기대하고 있지만 둘째가 태어났으니 첫째가 스스로 밥을 잘 먹게 될 때쯤엔 또다시 둘째와의 전쟁이 있을 것이다. 그때도 고민할게 분명하다. 그냥 생명유지와 열량섭취에 의의를 두고 편안하게 생활할지, 올바른 식습관을 기르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도록 노력하며 스트레스받을지.


육아는 항상 그런 것 같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 사이에서의 선택.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고 만나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미소. 조금 전까지 악마 같았던 꼬맹이의 천사 같은 모습.


잠자리에 누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식사자리에서 음식을 뱉는 아이가 아니라 장난감 강아지를 데리러 나왔다고 핑계 대는 사랑스러움이라 또다시 내일을 버틸 힘을 얻는다. 둘째가 크더라도 부족한 체력 때문에 더 많이 화내거나 쉬운 길을 선택하는 일은 없길 바라며 내일은 운동을 꼭 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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