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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희 Jun 11. 2023

미디어 노출 규칙 만들기

예상 가능한 일상생활 만들기

미디어 노출을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입장은 아니다.


물론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건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 티비 보는 시간이 참으로 아깝다. 게다가 나라는 사람 자체가 어릴 적부터 그리고 지금도 영상물을 즐기지 않기에 저게 뭐가 재밌냐 싶기도 하다. 그래서 평소에는 최대한 힘닿는 데까지 영상 노출 없이 시간을 보내려 하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때나, 바쁠 때, 아이 없이 어른 손님만 왔을 때, 캠핑장 매너타임이라 조용히 해야 할 때 등 필요할 때에는 스스럼없이 영상을 제공한다.


최근엔 집에 무려 75인치 티비를 없애는 결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엄마 티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빈도가 늘었다. 규칙을 정하지 않고 내 기분에 따라 영상을 제공하기 때문일까 싶어서 (나만의 기준은 있었으나 아이이에게 공유하진 않았음) 명확한 기준을 세워 알려줬다.


1. 평일엔 어린이집 다녀와서 하루 20분.

2. 아빠 없는 주말엔 오전 1시간 오후 1시간.(낮잠을 안 잔다.)

3. 어린이집 가기 전에는 영상 불가

4. 아침밥 먹기 전에는 영상 불가

5. 음식 먹으면서 영상 불가

6. 외출 혹은 기타 사유로 영상을 못 볼 수도 있음(취침시간 준수)


내가 기대하는 바는 티비 보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그 시간을 기다리며 나머지 시간엔 재미있게 놀이하는 것이었는데, 웬걸 아침에 눈뜨자마자 여전히 "엄마 티비 보고 싶어요~"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보여주고 싶다는 것... 아이 둘을 돌보면서 힘드니까 그냥 쉽게 쉽게 가고자 하는 유혹에 빠진다. "안돼!"라고 말하기가 정말로 힘들었다.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러겠지, 하고 타이르길 수차례. 토요일인 오늘도 눈뜨자마자 티비 틀어달라는 소리에 열받아서 외쳤다.


"엄마 티비(태블릿) 버릴 거야!!!!!!"


지키지 못할 말은 하면 안 되는데. 열받아서 질러버리고 아차, 후회 한번 하고 슬그머니 이번주 시청 금지라고 했다가 도무지 내가 자신이 없어서 오늘 시청 금지로 변경했다. ㅋㅋ 아이가 울고 당황하느라 눈치 못 챘길 바랄 뿐;


오늘 우리 재미있는 곳 가기로 했었잖아. 어디 가기로 했었어? 그런데 티비가 보고 싶어? 하니 기억을 못 한다. 뚝딱아 큰일 났다. 엄마가 티비 재밌지만 너무 많이 보면 생각을 잘 못하고 놀이도 잘 못하는 어린이가 된다고 했잖아. 봐봐, 지금 생각을 잘 못하는 어린이가 되어버렸나 봐!! 했더니 당황한 눈치다. ㅋㅋㅋ. 엄마 말이 진짜였다니!!(동공지진) 키즈카페 가기로 했다고 알려주고 이제 티비 조금만 보자니까 이내 수긍한다.


즐겁게 놀고 민들레도 따고 집에 와서 점심도 먹고. 빈 시간은 그동안 전혀 하지 않던 퍼즐 맞추기 1번부터 10번까지 클리어해주시고 (연습하지 않아도 인지능력 상승에 따라 할 수 있게 되는 게 신기함) 숨바꼭질도 하고 (숨는 실력이 진짜 제법 늘었다.) 수박도 썰어서 그릇에 담아두고 수박 아이스크림도 만들고 책도 많이 읽었다. 평일 미디어 시청을 제한해서 그런지 그냥 그런 시기인지 요새 다시 책 읽는 시간이 늘고 있는데 오늘은 어제 읽은 책들 반복독서도 했다. 미디어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이렇게 좋은 활동들을 할 시간을 빼앗는 건 맞다.


저녁에 한번 티비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나 오늘은 안된다 설명했더니 크게 떼쓰지 않고 수긍했다. 그래 원하는 게 있는데 또 너무 빠르게 포기하면 안 되지. 한번 더 찔러보는 태도는 칭찬할만하다. 나중에는 나를 설득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음. ㅎㅎ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또 시간을 정해서 보는 게 아니고 아예 안 봐야 덜 찾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런데 또 아예 안 보면.. 내가 어릴 때 이런 제약 때문에 또래문화를 따라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 아이도 그렇게 될까 봐 차단하고 싶지는 않다. 하루종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만 보더라도 티비 보고 싶은 욕구를 낮추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훗날 시험기간이면 티비 끄고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는 그런 자기 조절력을 위한 밑거름을 잘 길러주고 싶다. 어찌해야 할지..


엄마의 실험은 계속된다..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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