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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희 Apr 20. 2023

어떻게, 뭐라고 해야 하지?

지난밤. 아직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갈 순 없는 아이에게 자기 전에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평소에는 곧잘 따르는데 어제는 아니라고 화장실 가지 않아도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아침에 불러서 옆에 누웠는데 축축하다.


아직 어린 나이니 당연히 자다가 실수할 수 있다. 매트리스에도 꽤 성능 좋은 방수커버가 씌워져 있으니 이불빨래만 하면 되는 약간 성가신 상황일 뿐이다. 그런데,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조금 화가 났다. 나는 너의 의사를 존중하고 널 믿었는데 너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4살 아이에게 할법한 기대는 아닌데 그래도 오늘 아침엔 그런 서운함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다음번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뚝딱이는 아직 어린이니까 당연히 자다가 쉬 할 수 있어. 그런데 뚝딱아, 어제 엄마가 자기 전에 변기에 앉아보자고 했잖아. 그런데 네가 싫다고 했지? 화장실 다녀왔는데도 실수했으면 어쩔 수 없지만, 네가 괜찮다고 했었으니까 오늘 이불 빨래는 네가 해야 해.


혼자 할 수 없다며 깜짝 놀라는 아이에게 당연히 엄마랑 같이 할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침대에서 이불을 걷어내고 매트리스 커버도 벗겨 세탁기에 집어넣게 했다. 직접 이불 치워보니까 어때? 응, 뚝딱이 안 쉬웠어. 앞으로 자기전에 화장실 갈 거야? 응. 이제 엄마 말 잘 들을 거야.


그렇게 큰소리 내지 않고 기분 좋게 등원하고 하원시간이 되었다. 이후 일정이 있으니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길래 "뚝딱아, 아침에 있었던 일 기억나지? 화장실 가야 할지 안가야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 하니까 군말 없이 다녀온다. 기쁜 맘으로 다음 일정을 소화하고 놀러 가기로 약속했던 키즈카페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엉덩이가 축축했다. 뚝딱아 쉬했어? 언제 했어? 왜 이야기 안 했어?


짧은 시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책임지게 해야 할까? 울든 말든 오늘은 키즈카페에 갈 수 없다고 집으로 가야 할까? 그래도 오랫동안 가고 싶어했고 또 한참 동안 갈 수 없는데 너무 가혹하지 않나? 내일 뀰이 데리고 같이 와야 하나? 생각만 해도 번거로운데. 지금 감기 걸려서 더 조절을 못하는 거 같은데, 물도 평소보다 많이 마셨고. 화장실에 가기 불편한 상황이기도 했고. 내가 소변실수 할 때 너무 무섭게 굴었나? 키즈카페에 가지 못하게 될까 봐 소변봤다고 말도 안 했나? 평소엔 급하다고 잘만 말하더니!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 끝에 책임지게 해야할 순간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차에 타기 전에 화장실 가고 싶으냐고 물어본 것도 아니고, 언제 소변본 것인지도 모르겠고, 충분히 부끄러워하고 당황해 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렇게 바지에 소변보면 집에 가야 해. 젖은 바지로 놀 순 없거든. 그런데, 다행히도 1층에 아이들 옷을 파는 가게가 있으니 우리 한번 가보자.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가게를 비운다는 메모와 함께 문이 잠겨있다.


뚝딱아, 옷가게 문이 닫혀있어서 우리 오늘 키즈카페는 못 가게 되었어. 쉬한 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런데, 미리 쉬했다고 이야기해줬으면 엄마가 여기까지 오지 않고 바로 집에 다녀오거나 문이 열려있는 가게에 들려서 옷을 갈아입혀 줬을 거야. 다 도착해서 알았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집에 다녀오면 시간이 너무 늦어서 키즈카페가 문을 닫아. 오늘은 집에 가고 다음에 꼭 다시 오자. 대신 오늘은 옷을 갈아입고 산책하거나, 놀이터에 갈 수 있어. 어때? 다음에 같은 상황일 땐 화장실 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어, 아니면 익숙해질 때까지 엄마가 기저귀를 준비해 주면 좋겠어?


다음번엔 기저귀를 준비해달라며 오늘은 놀이터에서 놀겠다는 아이와 기분좋게 집으로 왔다. 오늘 밤 아이는, 변기에 앉아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나의 행동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까?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속상하게 만든 건 아니겠지? 잘 가르친 것 같아 약간 뿌듯하기도 하고, 또 후회되기도 한다. 아주 짧은 순간에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고 감정을 추슬러 이야기하는게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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