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월 아기 기저귀 떼기
어린이집에서 기저귀를 벗고 생활한지는 벌써 두 달가량 된 것 같다. 지난주부터는 낮잠시간에도 기저귀를 벗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선생님들이 부담 주지 않으시는 편인데, 집에서도 팬티를 입혀달라는 알림장이 작성되었다. 마음으로는 나도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 의자에, 이불에, 침대에 소변볼게 두려워 기저귀를 벗기지 못했다. 엄마 나 응아 마려워! 잘도 말하는데 요의는 전혀 못 느끼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변처럼 자기가 요의를 느끼게 되면 자연히 기저귀를 떼게 되지 않을까? 둘째랑 같이 케어하며 집안일하기 바빠 죽겠는데 아이가 소변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컸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찔려, 배변훈련 스티커판을 사다가 화장실 문 앞에 붙여뒀다. 긴 시간 기저귀가 젖지 않았으면 화장실에 가서 앉아보자고 하는데, 워낙에 거부가 심해 심리적인 문턱을 낮춰보고자 한 것이다. 스티커판 사진을 찍어 알림장에 올리니 선생님께서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스티커판을 원에도 붙여주셨다. 나한테 감사하다고 하시는데 면목이 없다. 우리 아이를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교육시켜주시니 그게 직업이라 해도 감사하고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스티커판의 효과가 있던 건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 적극 지도해주신 덕분인지 변기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 단지 그것뿐, 요의를 느낀다거나 특별히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진 않았다. 배변훈련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문득 주변 선배 엄마들이 이 시기에 내복을 엄청나게 사대 던 것이 생각났다.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갈아입는다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용기를 낼 시간이었다. 남편이 없는 날이라는 핑계는 댈 수 없었다. 생리현상은 매일 일어나니까. 둘째가 태어나자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로 채워져 가는 쓰레기통도 양심을 쿡쿡 찔렀다. 환경을 엄청나게 파괴하고 있다. 그동안 애써 외면하던 것이 무색하게 그렇게 갑자기 어느 날 하원하고 기저귀를 벗겼다.
팬티만 입히니 내 신경이 예민해진다. 이전에 소변보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무언가 마시진 않았는지,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진 않은지,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을 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나지 않는 것들에 매 순간 촉각을 세우게 된다. 신기하게도, 아이도 소변이 마려우니 몸을 베베 꼰다. 기저귀가 없으니 화장실에 가야 된다는 것을 인지는 하고 있는 걸까? 원래 그랬는데 내가 예민하게 알아챈 것일까? 책을 읽다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화장실에 데려가니 시원하게 볼일을 본다. 성공이다.
둘째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홀로 아이 둘을 보는 일요일. 기저귀를 벗긴 지 삼일차 되는 날. 정신없이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아끼는 의자에 앉아 영상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부른다. "엄마 쉬했어요!" 아이에게 화장실 갈 때에는 영상을 정지시켜줄 것이고, 화장실 다녀와서 또다시 보여줄 테니까 다음에는 소변이 마려우면 꼭 말하라 알려주고 다정하게 수습해줬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이가 먼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저귀를 벗기지 않았다면, 그래도 오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을까? 자기가 아끼는 의자가 젖지 않았다면, 편안하게 영상을 시청하다가 바지가 축축해져 불쾌해지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며칠간 화장실에서 소변보며 칭찬 듣지 않았다면, 그래도 오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의사 표현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요의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느낄 필요가 없던 것 같다. 아이가 신호를 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기저귀라는 안전망이 있으니까.
이미 어느 정도 준비되어있던 아이는, 엄마가 매트리스를 버릴 각오를 했을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사실 언제나 부족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라고. 작은 용기들이 좀 더 멋진 삶을 불러온다고. 내일은 오늘보다 용감한 엄마가 되어보리라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