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난리 속에서 아이를 낳으니 언제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야외공간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캠핑을 다니기도 하고, 돗자리를 들고 공원에 나가기도 한다. 한 친구는 자그마한 세컨하우스를 마련하고 싶다며 직접 부동산 임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유튜브에 근교 시골 주택을 검색하며 매물을 둘러보다가, 이럴 바에야... 겸사겸사 공간 대여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돈도 벌고 우리 애들도 놀고 너무 좋을 것 같지만 아기가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아기가 있는 가족을 상대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높은 벽으로 느껴진다. 구글링도 제법 해보지만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보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방법들을 생각해 보다가, 40분 거리에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 댁을 이용해 보기로 한다. 집에서 멀지 않고, 무료이며(!), 깨끗한 화장실과 음식이 제공되는데 부모님께 효도까지 할 수 있다. 게다가 무려 프라이빗 독채!
집 옆에 쓰지 않는 땅을 써도 될지 여쭤보고, 허가받았으니 어떻게 그 공간을 꾸며갈지 생각해 본다. 여름에는 당연히 고민할 필요도 없이 수영이다. 손주들을 자주 보고 싶은 할아버지는 작년에 진작 수영장을 준비해 두셨다.
봄가을에는 모래놀이와 미끄럼틀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 거창하게 할 필요도 없고, 당근에서 저렴한 플라스틱 미끄럼틀을 구입해 사둬야겠다 생각했다. 모래놀이할만한 공간도 만들어야겠다.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어른들은 옆에서 고기라도 구워 먹으면 정말 재미있겠다. 기쁜 상상에 들뜬다.
여름이 가고, 아버님이 손수 자갈을 고르고 잔디를 심어두신 땅이 푸르르다. 이제 진짜 당근에서 매물을 알아볼까 싶던 차에 남편이 #지아지조마켓 링크를 보낸다. 우리 이거 살까?
홀린 듯 결제하고 정신 차려보니, 통장 잔고는 아슬아슬한데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 야간근무 가야 하는 남편이 오두막 놀이터를 조립하고 있다. 이거.. 잘 한 선택이겠지..?
모기에게 뜯기며 놀이터를 만들면서, 아이들도 모기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해 본다. 목공의 ㅁ자도 모르는 문외한이라, 만들면서도 자신이 없다. 이거 안전한 거 맞아..? 이 정도로 만들고 이 위에 올라가도 돼..?
나사 못 길이를 잘못 봐서 애써 다 조립했다가 푸르기를 세 번을 반복하고 간신히 만들었다. 만들면 완성인 줄 알았는데 사포질도 해야하고 스테인도 칠해야 한다. 끝인 줄 알았는데 첩첩산중인 게 아주 육아랑 꼭 닮았다. 출산하고 일 년이 지나도록 지방들과 이별을 못한 내가 안전 테스트 겸 올라가 본다. 부서지진 않네, 합격이다.
엄마 아빠 공사하느라 하루 종~일 실컷 티브이 보시던 따님이 만족스럽게 논다.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집에 안 가신단다. 이 정도면 성공이다.
파란 가을 하늘에 푸르른 잔디밭. 그 위에 있는 모래 놀이터와 2층 오두막집. 기다란 노란 미끄럼틀.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아직 자라지 못한 7살짜리 꼬마가 오두막을 보며 부러워한다. 좋겠다. 부럽다. 나도 갖고 싶다. 저기서 재미있게 놀고 싶다.
그래도 행복해하는 딸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달래본다. 우리 딸들이 나중에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장면이 떠오를 거야. 먼 훗날 자신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 배우자에게 "우리 할머니 집에는 노란 미끄럼틀이 달린 오두막이 있었거든." 하고 이야기할 거야.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는 "정말 재미있었겠다!" 하며 부러워하겠지? 그런 상상을 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큰딸이 곧 있으면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생 최초의 기억이 생길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최대한 나쁜 일 없이 충만한 행복을 안겨주고 싶다.
아이를 기른다는 건, 그의 첫 기억에도 관여하는 일이다. 우리 딸들의 유년 시절이 부디 행복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