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열심히 굽고 있는 건 시몬 카스테라 혹은 시본 카스테라라고 불리는 컵케이크 모양 카스텔라다. 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건 왜 이 빵은 이름이 시몬 카스테라인가인데 시몬이라고 하면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에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할 때 외치는 그 시몬이 저절로 떠오르기 때문에 저 낙엽 밟는 소리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모를 그 시몬은 이 빵이랑 무슨 상관인 건지 생각의 끝은 늘 알쏭달쏭하게 마련이다.
이런 궁금증은 나만 가진 게 아니었던 듯 며칠 전 sns에서 이 호기심을 파헤치는 글을 읽었는데 아마도 시폰 카스텔라의 일본식 표기에서 전해져 단어가 변하고 바뀌어 지금의 시몬 카스테라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럴싸한 대답을 보았다. 이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이 빵을 시본 카스테라라고 부르는 제과점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르신들이 익숙하지 않은 영어 단어를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가끔 시장 좌판 앞 누런 박스 종이에 갈겨쓴 수입 채소들의 이름에 실소를 터트리곤 한다.
브로콜리는 한국의 시장에서 보리꼬리가 되기도 하고, 부루커리가 되기도 하고, 부르크리가 되기도 한다. 들리는 발음대로 글자를 추정해 적은 브로콜리 간판은 젊은 세대들 카메라에 담겨 온라인을 떠돌며 재밌는 이야기로 소비된다.
나는 보리꼬리를 보면서 웃다가도 흠칫하는 순간이 온다. 수십 년 전 중학생일 때 한국의 지하철은 정기권과 일 회권을 지하철 매표소나 자판기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탑승할 수 있었는데 가끔 매표소가 비어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판기 앞에서 쩔쩔매고 계시는 걸 많이 봤다. 그때의 자판기 사용이 어려웠던 건 구간별로 요금이 달랐기 때문에 목적지에 따라 버튼을 누르고 각기 가격이 다른 승차권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그게 어려워 자판기 앞에서 망설이다가 학생이나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승차권을 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요즘의 햄버거 가게 키오스크처럼 말이다.
상상력 풍부하던 중학생은 그때마다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이다음에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 더 어려운 게 나오면 어떡하지? 열심히 배울 수 있을까? 승차권을 사는 간단한 일마저 어렵게 느끼게 될만한 것은 뭐가 있을까? 하며 한참 멀고 먼 미래를 미리 걱정하곤 했다.
며칠 전 친구 가족과 저녁을 먹으면서 조카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조카가 받아쓰기 틀린 것 복습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데 4학년이 받아쓰기를 해?”
물었다. 받아쓰기는 저학년 때 이미 끝나는 프로그램 아니야?
요즘 받아쓰기 맞춤법엔 띄어쓰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한 줄 남짓한 문장을 철자와 띄어쓰기를 완벽하게 적어야 맞는 문제로 처리된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플랫폼에 글을 쓸 때마다 띄어쓰기를 열몇 군데씩 틀리는데 이놈의 띄어쓰기라는 것은 아무리 봐도 헷갈리기 때문에 당최 열 군데 이하로 수정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받아쓰기에 띄어쓰기가 포함된다니!
어쩌면 나의 미래에 내가 쓴 문장들에서 틀린 띄어쓰기를 보며 웃는 다음 세대가 나타나게 되는 거 아닐까. 내가 보리꼬리를 보며 웃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할머니가 되면 온 세상이 영어나라가 돼서 우왕좌왕하는 상상을 하며 곤란해하곤 했었는데 오늘부터 띄어쓰기가 추가됐다. 어딜 띄어 써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는 나와 그런 나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는 조카를 상상하니 식은땀이 조금 난다.
보리꼬리를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