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라이벌은 걸리버예요
학창 시절 친구들한테 손 편지 쓰던 잔재주를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쨌든 그림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제가 갑자기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브런치에는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작년 9월 처음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나기 전까지 브런치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던 제게 너무 막막한 숙제였어요. 다행스럽게도 한편씩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가끔 댓글이 달리는 것도 기뻤습니다.
사진첩에 가득한 발리 이야기를 쓰다 보면 친구들이 농담으로 발리 가서 가이드를 하라고 합니다. 저 또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뭘 하면 좋을까' 궁리하다 덜컥 출판사 신고를 하고 왔습니다. 목표는 발리에 처음 가는 사람이 보기도 편하고, 발리를 좋아하는 여행자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출판사 신고는 이미 했는데 제가 전자책 만드는 방법을 어떻게 알겠어요. 또 막막한 심정으로 검색을 하고 있는데 서체라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복병처럼 느껴지는 것이에요. 전자책에 많이 쓰이는 코펍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럴 거면 그냥 다 손으로 그려버리는 게 어떨까?"
이렇게 시작된 저의 무모한 도전이 드디어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동안 돼지저금통에 동전 넣듯이 저금해 둔 브런치 글과 블로그 기록들을 밑천으로 발리 여행 안내서를 만들고 있어요. 그림을 그린다라는 것 자체가 먼 나라 이야기만 같던 제가 느릿느릿 그림을 그립니다. 친구가 만들어준 식빵 고양이들에 이름을 붙여가며 직녀가 베짜듯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최근 몇 년간 제 인생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 투성이입니다. '실패하면 어때. 이것도 다시 돼지저금통에 넣는 오백 원짜리가 될 텐데.'라고 마음을 먹었더니 겁이 좀 덜 나요. 전자책 1인 출판을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무식하게 하는 사람은 세상에 몇 명 더 있을까요?
어린 시절의 저는 항상 색깔이 가장 많은 색연필세트를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다 책상 위에 A4 사이즈 도화지를 펼치고 총천연색으로 편지지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친구들은 그때 니가 써준 편지 아직도 기억난다며 손 편지 쓰길 좋아하는 사람으로 절 기억해주고 있어요.
여행기의 페이지를 만드는 마음도 비슷합니다. 맛있는 음식과 다정한 사람들, 멋있는 장소를 떠올리며 내 여행이 이랬어, 저랬어 친구한테 이야기하듯이 한 장씩 적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이 마음이 닿길 바라면서요.
실패하면 또 어떻겠어요. 제가 재밌어서 하는 거니깐 괜찮아요.
제 글을 읽어주시고
하트를 눌러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