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방학이 필요한 이유
날 것의 감정들이 무수히 쏟아지는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들의 속은 훤히 비쳐서 좋지만 동시에 성가시기도 하다. 읽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한가득 머리에 자동으로 입력되기 때문.
오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덕지덕지 붙은 오만가지 시선들과 감정들을 가득 안고 퇴근한다. 나만의 퇴근 의식은 버스에 올라타고 내리는 것. 버스가 나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준다고 생각하며 올라타고, 내리면서 이 공간에서의 일은 다 털고 잊어버리는 거다.
타인과의 짙은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점점 옅어진 것도 이 때문이겠지. 매일을 감정의 범람 속에 사느라 막상 가까운 사람에게는 귀 기울일 여력이 없다. 기대고 기대주는 과정에서 애정을 확인받는 사람이라 이런 소통의 부재는 회복탄력성을 아주 더디게 만든다. 너무 많이 사용해서 다 늘어진 용수철처럼.
올해는 그래도 운이 좋게 마음이 맞는 동료를 몇이나 더 만났다. 그들에게 소소하고도 큰 위안을 받고 있는데, 얼마 전 나도 그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찌나 고맙던지.
사람 사이 오가는 정이 전부인 나에게 사람의 이중성을 직면하는 건 꽤나 힘에 부치는 일이다. 무엇이 담겨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지만 굳이 열어서 세세히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들 중에 하나다. 그래서 그냥 이제는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들만 믿기로 했다, 마음 편하게. 이전엔 사실 관계를 밝히는 일이 더욱 중요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나를 위한 배려겠거니 한다. 물론 사람은 이기적이라 나를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본인을 위한 포장지라는 것쯤은 안다. 그래도 속아주는 것까지가 어른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싶다.
축축한 글 말고 촉촉한 글 쓰기로 했는데 잘 안 되네. 역시 마음이 힘들 때 글은 제일 잘 써진다. 여기에 에너지를 몇 스푼 더 넣으면 한 단계 또 성장해 있으리라 믿는다. 남들보다 생각이 많고 감정의 파도도 잦지만 이런 특성들을 발판 삼아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려내고 있는 게 내 장점이니깐. 자주 위태로워도 쓰러지지는 않는 오뚝이니까요. 적절한 운동과 적절한 휴식. 끝내 무너지지는 않을 경계 내에서 스스로를 잘 돌보며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