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Oct 04. 2023

버티는 삶에 관하여

서른 번째 한가위를 지나며

  만 서른의 4분기가 시작되었다. 원래도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지만, 요새는 이렇게 중간중간 쉼표를 새기지 않으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하여 필사적으로 멈춰 서서 숨 고르기.


1. 당위에 대한 내려놓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방법을 배웠다. 얼마 전 친구의 브이로그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옛날에는 절대 안 돼 싶었던 게 많았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계가 무너지고 절대 안 되는 게 세상에 어딨어 싶다.” 깊게 동의한다. 지난날의 나 역시 스스로나 세상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터라 이건 안 돼 저건 안 돼와 같은 당위성에 대한 기준이 높았다. 조금은 오만한 사고방식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정한 규칙 안에서는 어기는 것 없이 살아왔으니까.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않은 일을 왜 해? 싶었다.

  그러나 세상 일은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고, 나도 가끔은 한심한 짓을 하며 살더라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나를 지키기 위해 혹은 상대에 대한 애정으로 발 밑에 묻고 넘어가게 됐다. 물음표를 덧붙이지 않고 또 예상답안도 적어 내리지 않은 채로 묵묵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일. 되돌아보면 이런 종류의 배려는 늘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라도 알아차린 것에 감사하며 묵묵히 갚아나가야지.


2. 버티는 삶에 관하여

  늘 열심히 사는 친구와 예전에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혀 사는 것 같지만 어쩌겠어 이게 나인걸.” 허지웅은 이런 에세이도 쓰지 않았는가. “버티는 삶에 관하여”

  목표가 생기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붓는 타입이라 앞만 보며 달리는 경주마라는 별명도 가졌었다. 이를테면 연말에 있는 시험을 위해 여름에도 기모후드집업을 입는 식이다. 옷이 없는 게 아니라 그만큼 다른 것들에 무감각해진다.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 지금 누릴 수 있는 걸 포기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좋은 결과가 따라붙을 때면 보상심리로 이어졌고, 좋지 않은 결과가 따라올 때면 한 치의 당근도 허용하지 않고 더 몰아세웠다. 

  사고방식이 이렇게 흘러갈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성공이 더 이상 달콤하지 않다는 점이다. 원하는 걸 이뤄내기 위해 버티는 게 당연해지면, 그 후에 무언가를 이뤄내더라도 “그저” 이뤄낸 게 된다. 별로 신기할 것 없이 성취를 마주하면 기쁨은 아주 잠깐이고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버티는 삶이 펼쳐진다. 목표를 가지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목표가 너무 간절해지면 다른 것들은 그저 수단에 머물게 된다. 그러지 않고 현재에 발을 디딘 채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고 싶다. 현실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미래에 대한 긍정 또한 잃지 않는 사람.

  수영에 푹 빠진 나의 오랜 친구가 얼마 전 바다 수영을 다녀오며 말했다. 바다에서는 전속력으로 달리다가도 지치면 발라당 누워 하늘을 구경하면 된단다. 잠깐 쉬고 또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그 모든 과정이 환희라고 했다. 손을 내저어 물살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도, 잠시 쉬며 주변을 바라보는 순간도. 나도 그렇게 살란다. 무언가를 맞이하기 위해 인내하며 내딛는 걸음도 결국 내가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니 콧노래를 멈추지 않기를.


  마지막은 나에게만 다정한 아빠의 말로 마무리해야지. 대답이 두려운 질문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묻지 못해서 불안해질 때면 예상 답안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나에게 좋은 무언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행동을 해라. 마음에 지옥이 만들어지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어찌 됐건 나의 행복이 최우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터가 초등학교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