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서사 정체성으로 바라보는 자기소개서
기업은 사람을 채용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진짜 면면은, 대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라는 제한된 틀 안에 담기기엔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때때로 정량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질문을 품는다.
“이 사람은 함께 일할 때 어떤 감정을 품을까?”
“이전의 실패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문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일까?”
이런 질문에 답을 주기엔, ‘자기소개서’라는 글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사람이 자기 삶을 어떻게 서술하느냐'가 그 사람이 삶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태도로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그리고 그 힌트는 기업의 채용 장면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높은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서사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Dan McAdams)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엮으며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단지 일어난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결과에 부여한 의미,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나의 역할이 모두 포함된다. 바로 그 안에, 한 사람의 심리적 기질과 신념, 감정의 지형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자기소개서를 읽게 되었다고 해보자.
“처음 맡은 프로젝트에서 실패를 경험했지만, 이 실패 덕분에 책임감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매일 회고 일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은 단순히 성실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의 글은 ‘구원 구조(Redemption sequence)’를 따른다고 할 수 있는데, 즉 본인이 겪은 어려움을 긍정으로 전환한 사람이 사용하는 서사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낙관적인 해석을 통해 부정적인 경험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좋은 프로젝트였지만 팀원 간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결국 저조한 결과로 끝났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아직도 아쉽게 남아 있습니다.”라고 작성된 이야기는 ‘오염 구조(Contamination sequence)’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초기의 긍정적인 사건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전환된 것으로, 이런 경우는 아직도 그 '아쉬움'이라는 여운 속에 머물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서사의 흐름은 지원자의 기술 역량이나 직무 경험 이상으로, 그 사람이 삶에서 위기를 해석하는 방식이나, 감정 조절 능력, 인간관계의 패턴에 대한 단서를 던져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HR에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평가가 누군가의 ‘진실’ 또는 '진심'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글은 언제나 포장될 수 있고, 사람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식은 진단 도구가 아니라,
면접이라는 과정에서 ‘더 좋은 질문을 만들기 위한 렌즈’로 쓰이는 게 옳다고 본다.
그렇게 설계된 면접 질문은 (직접 몇 가지 설계해 보니 확실히!)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깊이가 깊어질 것이다. 그것은 면접을 지원자를 단순히 '시험'해보거나 '표면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한층 더 들여다 보고, 우리 조직 목표와 그리고 팀원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인지를 진실되게 검증'하는 과정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누군가의 자기소개서에 쓰이지 않은 ‘마음의 이력’을 조심스럽게 읽는 시대에 와 있다. 그 마음을 잣대로 재단하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함께 일할 준비가 된 사람인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서사는 감정의 구조이자, 믿음의 형식이다. 그리고 채용의 본질은 언제나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채용은 스펙이나 이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서사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