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안의 약탈?

때로는 잔혹한 정당성

by 제인 Jane



"다수결로 결정합시다"라는 말이 나오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어도 결국 수긍하게 된다.


그러한 장면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가장 많이 득표한 의견이 '은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소수의 우려는 번거로운 절차처럼 취급됐고, 말 많은 사람이라는 시선을 받으며 서서히 입을 닫았다.


그러나 가끔은 의문이 든다.

정말 '다수결'은 옳은 결정일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또는 유지되기를 원하는 '우리'와 다른 소수를 빠르고 깔끔하게 지워내기 위한 가장 간편화된 방식일까?






민주주의는 아름다운 말이다.

'모두를 위한 제도', '의견의 평등', '권력의 분산' 같은 말들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하지만 그 제도 아래에서 '다수'가 '정의'라는 이름을 걸친 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몫을 서서히, 그리고 아주 교묘하게 빼앗고 있는 건 아닐지를 반드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아파트 주민회의나 SNS 여론 속에서, 그 다수의 이름으로 결정된 수많은 것들 속에서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쉽게 "다수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누군가의 쫓겨나는 고통을 무시해 왔는지를 마주해야 한다.






최근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느낀 사례는 부동산 재개발 소식에 있었다.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노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손때 묻은 빌라와 열심히 살았던 걸음걸음이 묻어나는 골목길, 소중한 기억들이 담긴 마당을 이유로 재개발에 반대했다. 물론 지금 당장 이주해 나갈 곳이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회의에서는 '오래된 건축물', '다수의 이익'이라는 말들이 우세했고, 그들의 반대는 결국 '비합리적 감성일 뿐'이라며 기록에 다루어지지도 않고 묻혀버렸다. 그리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법적 동의율이 충족되자,
그들은 마치 합법적으로 '설득당한 듯' 퇴거해야만 했다.


물론 그 과정은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들의 삶은 예고 없이 "다수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거세되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리의 재산권이 달린 문제고 우리 결정권의 문제인데, 결국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라는 말 뒤에는,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롭지만 때로는 안타까운 기제가 작동하기도 한다.


바로 사회심리학에서 일부 문제로 지적하는 '집단적 사고(Groupthink)'이다.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집단 내 의견의 일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반대 의견은 쉽게 묵살되며, 집단은 스스로를 '옳다'라고 착각한 채 위험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는 회의 자리에서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소수의 말을 당연하게 무시하기도 하고, 대세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불편하게 느끼며 묵시적 압박을 가하곤 한다. 그리고 이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누구도 명확하게 악의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모두가 "공공의 이익", "다수의 합의", "합리적 절차"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결과를 회피한다.


렇지만, 실제 피해는 언제나 가장 힘이나 목소리가 약한 이들에게 집중된다.






민주주의가 진짜로 기능하기 위해선, 그 구조 속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소수를 '먼저'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가장 부드럽게, 그렇지만 아주 조용하고 잔혹하게 타인을 몰아내는 방식을 배운 셈이 된다.


사회의 질은 다수가 얼마나 편한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소수가 얼마나 존중받는가로 측정된다. 법과 제도, 시스템보다 중요한 건,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다.


그 탓에 때때로 우리 사회는, 다수가 정당하다는 믿음 아래 가장 잔인해질 수 있다. 그러한 장면은, 가족이든 자신이든, 언젠가 우리의 바로 앞에서 펼쳐질 수도 있다.


그러니,떤 결정 앞에서 "다수에 따라야지"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생긴다면, 한 번쯤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


"리가 지금 하는 이 결정이, 누구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나 현실적인 피해가 될 수도 있을까?"


"나는 누군가의 의견이나 지금까지의 삶을 지워버리는 편에 서 있는 건 아닐까?"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인간의 존엄의 방식은 서로를 얼마나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