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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욱 May 23. 2022

입대

어수선한 한 시절이 애달픈지 뜻 모릅니다.

군용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떨어져 가는 자식 형제들 간에 마지막으로 작별의 언성이 높아져갈 때

나는 몸을 움츠리고 눈을 감았다.

고향, 고향이 내게 주는 의미는 우울감뿐이었고 그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나의 그 길은 차라리 홀가분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태어나 이십 년 동안을 줄곧 살아온 고향을 떠나는 마당에,

그러나 내겐 누구 하나 한치의 아쉬운 이별 나눌 사람 없는 그 마당에서

군대 간다는 설움이 나에게는 그저 평온처럼만 느껴진다.


다시는 찾고 싶지도 않은 고향.

아, 물론 모두들 다 잘 있으시오.

무심한 마음으로 갈 길을 떠나는데, 차창 밖으로 외따로이 서있는 초라한 아주머니 하나가 조용히 떠나는 마당에 그만 내 얼굴을 적셔놓고 만다.


"어, 저 아줌마 봐라. 운다."


열차는 점차 속도를 더 하고 당신 아들의 모습은 저만치 멀어졌는데도

그 자리에 꿋꿋이 선 채 아무 말 없이 눈물만 글썽이며 조용히 계속 손을 흔들고 있는 주름살 짙은 아주머니.


떠들고 몸부림치는 형제 친구들 간의 이별 속에서 소리 내어 흐느끼는 연인의 눈물들 속에서도 수 만 곱절이나

짙게 돋보이는 늙은 어머니의 조용한 눈물에 나뿐 아니라 떠나가는 우린 모두 그 어머니의 아픔이 되어

갑자기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서로에게 감추느라 한동안 눈을 감고 입을 떼지 못했다.


나는 결국 흘러내리고만 눈물을 닦기 위해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가야만 했다.


어머니, 나는 내 어머니에게,

군대 간다 한다 하고 장난처럼 말해놓고

골목으로 뛰쳐 들어가 벽에 기대어 눈물 한번 쏟은 뒤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와 버렸을 때,

내 어머니는 이 집 저 집으로 이 아들을 찾아다녔다 한다.


"내 아들 못 봤소? 내 아들 못 봤소?"



1975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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