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잉~~~”
기계음 소리 이외에 모든 소리는 다시 숨죽이고 있었다.공간 속에 긴 침묵과 긴장감만이흘렀다. 어느 누구도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지켜지고 있었다.
“으으으윽 ….”
상우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한 신음소리가 침묵을 깨는 거 같았지만 이내 소리는 기계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려 어느 누구도 상우가 소리를 낸 거조차 알지 못했다.
상우는 본능적으로 다시 바짓가랑이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느새 몸은 꽁꽁 언 동태처럼 굳어 버렸다. 철물점에서나 어울릴 것 같은 펜치와 커다랗고 두툼하면서 끝이 가늘고 뭉툭한 송곳 같은 것이 다시 상우의 입 속으로 들어왔다.
주변의 사물들은 여전히 숨을 죽인 체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오직 간호사의 손에 쥐어 있는 긴 빨대만이 이들의 긴장감과는 무관하게 정적을 깨며, 입 속에 고여 있는 붉은 물을 진공청소기처럼빨아 대고 있었다.
벌써 한 시간째,수많은치과 도구들이 상우의 입 속을 바삐 왔다 갔다 하고 있었지만, 사랑니는 그 자리에서만 움직일 뿐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치과의사인 미라도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미라는 상우의 입속과엑스레이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쉼 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벌써 이러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미간에 주름이 다시 번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미라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대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의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미라가 잠시 멈출 때마다 상우의 경직된 몸은낙지처럼 흐믈 거리듯 가라앉았다.미라는 다시 포셉을 단단히 쥐고 좌측 아래쪽 사랑니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상우의 얼굴과 몸도 따라 움직였다.무의식적으로 손목에 힘이 갔다. 지도 위의 도로를 나타내듯 파란 줄이 손등에서부터 손목에 이르기까지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 상우는 힘대결이라도 하듯 미라가 힘을 쓰면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뻣뻣해 지면서 같이 힘을 쓰고 있었다.마치 두 사람은 씨름선수가 된 듯,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잘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상우는 예전부터 다녔던 치과를 가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그냥 가던 곳을 갔었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그냥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일어날까?’
상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복잡한 마음이 일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기에 더 긴장되고 초초했다.
상우가 단골로 다니던 병원은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곳이라 치과 선생님하고도 매우 친했다. 그런 곳을 나두고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곳을 찾았던 것은 자신의 아픈 상처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로부터 사랑니는 날 때도 뺄 때도 힘들다고 얘기는 들었지만이정도로 힘든 고통이 있는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상우는 점점불안해 졌다.눈 주위를 가리긴 했지만커다랗고 예리한 도구들이 수없이 입 속을 오가며 턱 주위로 힘이 가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것들이 목젖이나 입 속 어딘가를 찌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상우의 마음도 점점 더 복잡해져 갔다.
‘그만 하자고 할까? 아냐, 괜히 그랬다가 저 사람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 나만 참으면 되지. 믿자, 믿어!’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흔들리는 갈대처럼 수시로 오락가락했다.
‘잘 될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조금만 참으면 다 해결될 일이야. 별거 아니잖아 그냥 이 하나 뽑는 건데 …'
상우는 속으로 자신의 마음을 잡고 또 잡아 보았다. 상우는 사랑니가 잘 빠지길 간절히 바랐다.그리고 사랑니만 뽑을 수 있다면 이 정도의 두려움쯤은 거뜬히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우는 다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주위로 눈물이 살짝 흘러내려 귓불을 적셨다.
지수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사랑니도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었다. 쉽게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지수에 대한 사랑은 혼자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아와 머물다 가곤 했다. 그리고 떠나가 버린 그 빈자리의 쓸쓸함을 되새김할 때면,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졌다.
상우는혼자 있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나 모두 흩어지고 나면 지수에 대한그리움은 언제나 쭉 상우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어느새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다정히 나타났다.그리고는 찰거러미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입 속을 가득 채웠던 도구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미라는 큰 한숨을 내 쉬었다. 상우는 눈을 떠 가름막 사이로 살짝 보이는 미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마에 맺힌 땀들을 닦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마스크는 크게 몰아쉬는 숨소리로 인해 입 주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눈도 초점을 잃은 사람처럼 그냥 힘겹게 상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는 혈전이었다. 마취의 느낌조차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뽑을 수 있을까? 사랑니 하나 뽑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텐데 ……. 널 잊는다는 게 …, 이렇게 어려운 걸까? 지수야 ….’
미라의 입은 바짝 바짝 타 들어갔다. 대학 때와 인턴, 레지던트 과정 때 배웠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상우의 사랑니는 좀처럼 뽑히지 않았다. 미라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해 있었고, 턱에 힘이 가해졌다.
엑스레이 사진을 다시 살펴봤다. 그러나 엑스레이 사진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엑스레이 사진에는 뿌리 부분이 휘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뿌리가 옆으로 휘어져 있는 걸까?’
미라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뿌리 부분이 휘어져 있지 않다면 엘리베이터와 포셉으로 밀어 제쳤을 때 뽑혀져 나왔어야 했지만, 사랑니는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끊임없이 한숨만 흘러나왔다. 미라의 머릿속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해 졌다. 갑자기 머릿속이 윙윙거리며 현기증이 느껴졌다.
‘왜 저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까? 아프다고 소리라도 지르면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하자고 할 텐데 …….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 볼까?’
미라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땀방울이 눈가를 타고 내려 왔다. 온 몸이 땀으로 덮여 가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내린 땀방울들이 허리를 지나 엉덩이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잠깐 쉬었다 하죠?”
미라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상우에게 말했다. 상우는아무 말이 없었다. 미라는 상우도지쳐 있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운을 벗고 세면대로 갔다. 축 늘어진 어깨와 핏기 없는 얼굴에 처진 눈을 한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한이 많아 떠나지 못하는 망자의 설움이 느껴졌다.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미라를 애원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한없이 서럽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손이 그녀의 얼굴에 닿는 순간 물보라처럼 그녀의 모습 또한 점점 주변으로 번져 가더니 거울 속에서 사라졌다. 미라의 손이 얼굴로 갔다. 오래 전 자신의 사랑니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자신과 자신의 일부분을 앗아갔던 사람 ……. 문득 아직도 사랑니가 남아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의료 사고였다. 아니 어쩌면 어느 누가 그 수술을 담당했더라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환자는 결국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신경외과로서 촉망받던동하는 의사 가운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
그 일이 있고 나서 동하는 그 환자의 환영 속에서 살고 있었다. 진료 중 환자가 찾아와 자신을 원망할 거란 생각에 동하는 다시 의사가될 수 없다고 했다. 길에서 장애인을 만나더라도 동하는 그 환자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다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모두가 자신의 일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술에 의지하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주위 사람들의 위로와 만류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동하 혼자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미라 또한 고통 받는 동하의 모습 속에서 더 큰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픔이 밀려왔다. 언제 나타났는지 맞은편 여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큰 한숨이 절로 흘러 나왔다.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라는 얼굴을 닦고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쥐었던 주먹이 스르르 풀렸다. 굳었던 몸에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우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점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미라가 제안한 잠깐의 휴식이 상우에게도 몸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됐다.
‘이래서 사랑니라고 하나?’
상우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지나갔다. 지수를 잊기로 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이름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아팠다. 상우는 지수와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리며 다시 헛웃음을 지었다. 마지막까지 그녀가 다가오기를 바랐던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희망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을 알면서도 미련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사랑니가 삐뚤어지게 나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오래 전 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살을 파고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볼이 붓고 아프기 시작하면서알게 되었다.위쪽은 별 문제가 없었지만 아래 사랑니 두 개가 수줍은 새색시 마냥 얼굴을 가리려는 듯 살갗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사랑니의 이러한 행동은 몸이 피곤하거나 신경을 쓰게 되면 통증이 더 심해졌다. 상우는사랑니라는 생각 때문에사랑니가 아플 때면 지수에 대한 그리움이 더 해 갔다.
‘사랑니를 뽑으면 지수에 대한그리움도 사라질까?’
이런 생각이 상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수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잊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니를 뽑으면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 확신으로 다가서자 상우는 사랑니를 뽑기로 결심을 했었다.
‘참 끈질기기도 하다. …….사랑니, 날 때도 아프고 뺄 때도 아프다더니…….’
지수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조금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외눈박이 스탠드가 안쓰러운 듯 눈을 감은 채상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라는 상우의 입안에 넣어 두었던 솜뭉치들을 하나 둘씩 빼냈다. 마취약이 담긴 주사바늘이 이곳저곳 잇몸 주위를 꾹꾹 눌러보더니 나갔다. 다시 여러 도구들이 상우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상우의 귀에 드릴이 움직이는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고요함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긴장감마저 깨지는 못했다.
입안이 꺼끌꺼끌 했다. 모래가루처럼 잘게 부서진 사랑니의 가루들이 입 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리 길지 않았다. 앞에 눈이라도 달린 듯 쎡션은 그것들까지 찾아 깨끗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핸드피스의 움직임이 멈춰 서자 다음에는 스푼익스카베이터가 사랑니의 조각들을 긁어내고 있었다. 미라의 얼굴에는 다시 이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이번엔 제발 …….’
상우는 눈을 감으며 사랑니가 빨리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미라는 사랑니를 잘게 조각냈다.힘을 가한다고 해서 사랑니가 빠지지 않을 거 같았다.
‘분명히 엑스레이 사진 상 보이지 않는쪽으로 사랑니가 휘어져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안 빠질 리가 없어. 게다가 이미 이 환자의 사랑니는 살 속을 파고들고 있었잖아.’
미라는 자신에게 계속 최면을 걸었다. 대체로 뿌리가 휘어져 있으면 이는 쉽게 뽑히지 않았다. 미라는 가능한 밑동이 보일 때까지 사랑니를 부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이라서 쉽게 쪼개지지가 않았다. 핸드피스의 떨림이 점점 손에서 몸으로 전해졌다.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 이 남자, 사랑은 제대로 했을까?’
사랑니가 잘 나야지 사랑도 쉽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같이 느껴졌다.
문득 대학 때 치아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이야기 해 주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사랑니에는 그 사람의 사랑이 묻어 있어. 그래서 아픈 사랑을 한 사람일수록 사랑니의 고통은 더욱 더 크지. 가슴속에 절절이 묻어 있는 사랑이 사랑니에게로 옮겨가기 때문이야. 사랑니에게로 온 사랑은 조각조각 나뉘어져 그리움이 되고, 그것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지 않으면 한이 되어 남아.’
미라는 가루가 되어가는 사랑니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말처럼 이 남자의 사랑은 한이 된 그리움들이 뿌리까지 녹아내려 사랑의 그리움들을 움켜쥔 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를 가슴 속에 품고 아픔을 삭이고 있는 걸까? 누굴까 그 사람은 …….’
미라는 핸드피스를 움직이면서 천으로 가려진 상우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았다.미라는 남자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이 남자의 사랑니 속에는 어떤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일까?’
“나 아기 가졌어.”
“……!”
동하가 놀라면서 미라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동하가 좋아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아팠다. 빈말이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었다. 아니 다른 누구의 축복보다도 그의 말 한마디가 더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 축하 안 해줘?”
“얼마나 됐어?”
축하한다는 말은 없고 동하의 무뚝뚝한 음성이 들렸다.
“6주 째야.”
“지워!”
그가 툭 던진 한마디에 미라는 너무나 놀랐다. 자신의 임신 사실을 말하면 동하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의 말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오빠 의사 맞아? 그게 지금 의사로서 할 얘기야?”
“난 이제 의사가 아니야. 그리고 누구하고도 결혼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아빠가 된다고? 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말도 안 돼는 소리 집어치워!”
동하의 말은 얼음같이 차가웠다.살을 에듯이 미라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우리 결혼 안 해?”
“못해!”
동하의 말이 칼날같이 느껴졌다.
“오빠가 그 일 잊어버릴 때까지 내가 돈 벌고 키우면 되잖아? 오빠 우리 애야. 이렇게 죽일 수는 없잖아?”
미라는 일부러 지운다는 말 대신 죽임이란 단어를 썼다. 동하가 갖고 있는 의사로서의 마지막 양심에 호소하고 있었다.
“집에서 네가 낳은 애 보면서 살림이나 하면서 살라고?”
동하의 입에서 푸념 같은 소리가 흘러 나왔다.
“왜 자꾸 그렇게 생각해! 내 마음 그런 거 아닌 거 잘 알잖아? 언제까지 그 사람 환영 속에서 살아갈 테야? 평생 그렇게 살 거야? 우리 아기를 봐서라도 다시 시작하자. 내가 잘 할께!”
미라는 울면서 동하에게 매달렸다.
“넌 그럼 이게 언젠가는 잊혀질 일이라고 생각하니? 넌 몰라! 그리고 뭘 다시 시작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이 나이에 다시 대학이라도 들어가서 다른 전공이라도 할까?”
동하가 눈을 흘기며 미라의 손을 뿌리쳤다.
“이제부터 찾아보면 되잖아?”
“다 소용없어!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나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마!”
“오빠!?”
“너와 나 둘 다를 위해서야. 잘 생각해 봐. 나중에 나 만난 거 후회하지 말고!”
“원장님!”
한 간호사가 미라를 불렀다. 손에 쥔 핸드피스가 허공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미라는 그제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땀이 많이 나네.”
미라는 누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땀과 함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핸드피스가 다시 상우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사랑니의 밑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미라는 포셉을 들어 사랑니를 흔들어 보았다. 흔들림이 더 컸다. 사랑니가 들썩거렸다. 포셉에 힘을 주고 당겨 보았다. 그러나 사랑니는 그 자리에서만 움직일 뿐 빠지지 않았다.
‘뭐야 왜 지금도 안 빠지는데?’
조급함이 짜증으로 그리고 다시 실망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화가 났다. 미라는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조금 마음은 진정이 되었다.
미라는 사랑니 주변의 잇몸을 메스로 찢었다. 찢겨진 부위로 밑동이 드러났다. 밑동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미라는 사랑니의 뿌리가 휘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포셉으로 사랑니를 잡고 흔들었다. 사랑니는 아까보다 더 많이 흔들렸다. 미라의 손목에 힘이 가해졌다.
사랑니만큼이나 늦게 나타난 늦깎이 사랑이었다. 남들은 사랑니를 20대 초반에 나서 뽑는다고 했는데, 상우의 사랑니는 서른이 다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즈음 지수를 만나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상우의 사랑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사랑니는 사랑처럼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사실 지수는 대학 후배였다. 지수가 대학 들어오기 전부터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그냥 친근하고 어린 후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지수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지수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수에 대한 사랑은 연민으로 출발했다. 헤어짐의 이유가 지수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했다. 지수는 말은 안했지만 실연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서 밝게 지내려는 모습을 볼 때면 상우는 왠지 가슴이 허한 느낌이 들었다. 상우는그런 지수를 보며 지수의 실연을 말없이보듬어 주었다.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감정이 조금씩 사랑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알아가게 되었다.
'그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아니 너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그렇게 상우는 자신에게 그리고 지수에게 수없이 마음속으로말하며, 지수의 힘든 여정을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지수가 필요할 때 언제라도 달려가기 위해서, 아니 지수가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줄 때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상우는 그렇게 그녀 뒤에서 조금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수는 상우가 자신에게 보내는 사랑을 알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상우를 부담스러워 하며 멀리했다.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지수의 걸음만 재촉할 뿐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 이외에 지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상우의 마음은 아팠다. 그리고 더 이상 상우는 지수 옆에 다가갈 수 없었고, 지수는 차츰 한걸음씩 상우 곁에서 멀어져 갔다. 상우는 가만히 서서 지수가 멀어지는 것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상우는 지난날 지수와의 만남을 하나 둘 떠올리며 쪼개져 나가는 사랑니의 조각들 편에 추억들을 하나씩 날려 보냈다.
미라의 얼굴이 밝아졌다. 상우도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사랑니가 빠지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큰 힘이 한번 가해지고 난 후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있었고, 턱 주위로 더 이상 힘이 가해지지 않았다.미라의 한숨 소리가 마스크를 향해 작게 들렸다.
“사랑니가 이렇게 난 것은 처음 봐요. 뿌리가 휘어져 있는 것은 많이 봤지만, 이것은 뿌리가 넓게 퍼져 있었어요. 그래서 사랑니를 빼는 것이 어려웠던 거여요.”
마스크를 벗고 나서 미라가 말했다. 미라는 상우에게 윗동이 조각난 사랑니를 보여 주었다. 하얀 비닐장갑을 낀 그녀의 손 위에는 지금껏 자신의 가슴 속에 박혀 있던 사랑가파편들과 함께 놓여 있었다.오랜 고생 끝에 나온 사랑니라 그런지 그것이 한없이 애절하게 느껴졌다. 정말 신기하게도밑동은 ‘ㅗ’ 모양을 하고 있었다.상우는 그것을 보자‘왜 나에게만’ 이란 생각이 들었다.질기다란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운 끝에는 지수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이렇게 작은 것도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아쉬운 것인데 …….’
상우는 머리를 돌렸다. 모든 것을 잊어야 된다는 생각이 다시 밀려 왔다.
“오늘 하루는 무리하지 마시고, 사랑니 빠진 곳으로는 음식 드시지 마세요.”
미라는 주의해야 될 사항들을 상우에게 설명했다.
“위의 사랑니는 안 뽑나요?”
마취가 덜 풀린 입을 움직이며 상우가 말했다. 조금 전까지 이것만 뽑으면 다른 곳에 가서 사랑니를 뽑으려고 했던 생각을 뒤로 접고, 상우는 미라에게 요청을 하고 있었다.아니 애당초 오늘 위아래 두개를 뽑기로 했기에 상우는 미라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말했다.
“오늘 위아래 두개 뽑는다고 하셔서요.”
“위에도 뽑아 달라고요?”
미라가가 당황하며 말했다. 상우는 고개만 끄덕였다.처음에는 미라도 위아래 두개를 뽑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랫니로 힘을 다 뺀 상황이라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일 하면 안 될까요?”
미라의 목소리에는 힘이 쭉 빠져 있었다.
“내일은 제가 시간이 없거든요. 그냥 지금 해주세요!”
상우는 일부러 약속이 있는 듯이 미라의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 미라의얼굴이 어두워 졌다. 안도의 빛을 띠며 즐거워하던 모습은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드러웠던 분위기가 일순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그러나 상우에게는급했다. 하루라도 빨리, 아니 오늘 될 수만 있다면 사랑니를 다 뽑고 싶은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라는 남자의 말에 맥이 쭉 빠졌다. 한시름 놓았나 싶었는데, 다시 사랑니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위에 것도 아랫니와별로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닭살이돋았다.
더 이상 상우에게 진을 뺄 여력조차 없었다. 위의 사랑니마저 지금 뽑는다면 오늘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사랑니를 뽑지도 않았는데 피로감이 먼저 밀려왔다. 미라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감춰지지 않는 서글픔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상처일까? 왜 이렇게 집착하고 있을까?’
미라는 상우에게 왜 그러는지 묻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미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구나 사랑의 아픈 상처는 빨리 잊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랑한 사람의 채취가 묻어 있는 모든 것들을 치워버린다. 그것이 사랑니와 연관되어 있으면 더욱 그렇다. 사랑니의 아픔이 사랑의 아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라는 손안에 들고 있던 사랑니 조각을 의약품 휴지통에 버리고 마스크를 썼다.
‘지금 이 남자가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사랑에 대한 상처 때문이라면 …….’
“한 간호사 마취약!”
미라는 결심이 선 듯 한 간호사에게서 마취 주사를 받고 상우의 입에 마취를 했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다가올 사랑을 위해 아픔을 견뎌내는 사람이 있을까?’
선배의 얘기가 환청처럼 들렸다.
‘그러나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아픔을 견뎌내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
미라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복잡해 졌다.아픔을 견디면서 다가올 사랑을 준비한다는 것은 이미 아픔을 잊은 거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이 들자 뭐가 사랑이고 아픔인지 구분이 안 갔다.
‘선배의 말처럼 이 남자에게는 지금이 진장한 사랑의 시작인가?’
미라는마취가 된 것을 확인하고엘리베이터로 위쪽 끝에 있는 사랑니를 흔들었다. 여러 도구들이 상우의 입 속으로 하나 둘씩 들어갔다. 뭔가 힘이 가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이번에는 상우의 몸에 큰 힘이 가해지지 않았다. 힘이 가해진 것도 상우가 긴장을 해서 자신이 몸을 움츠렸기 때문이었지 처음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서 그것을 버티려는 방어적 힘은 아니었다.
우직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거림이 느껴졌지만 아픈 것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의 힘이 가해졌을까 사랑니가 뽑혔다. 조금 전의 사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사랑니가 허무하게 뽑혔다. 상우와 미라는 동시에긴 한숨을 쉬었다. 방안을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렇게만 뽑혔더라면 …….”
미라의 한숨 소리와 함께 이런 말이 들렸다.
미라는 상우에게 사랑니를 보여 주었다. 위는 평평하면서 둥그스름한 네모 각에 뿌리로 갈수록 좁아져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평범한 치아의 모습이었다. 삐뚤어지지도 않았고, 처음 것처럼 뿌리가 넓게 펴져 있지도 않았었다. 그 생김생김이 너무나도 이전 거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피가 당분간 나올 거니까 입을 꼭 다물고 계셔요. 그리고 집에 가서 얼음찜질을 해 주시고, 음식은 부드러운 것을 드세요. 오른쪽 사랑니는 일주일 후에 실밥 빼내면서 뽑을 겁니다.”
미라는 두터운 솜을 윗니 주변에 꼬깃꼬깃 넣으며 주의해야 될 점들을 천천히 상우에게 설명해 주었다.
상우는 병원을 나왔다. 커다란 눈깔사탕을 물고 있는 듯 왼쪽 입안이 불룩해져 있었다. 서서히 마취가 사라지면서 통증이 느껴졌다. 온 몸이 저리고 피로감이 확 밀려왔다.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몸을 움직이는데 너무나 많은 힘이 들었다.
미라는 원장실로 들어가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미라는 인터폰으로 한 간호사를 불렀다.
“예약 환자 또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원장님 좀 쉬세요. 힘들었을 텐데.”
한 간호사도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 건지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미라는 고개를 의자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노크 소리가 나며 한 간호사가 들어와 차를 책상에 두고 나갔다.
미라는 한동안 모과 향이 나는 차의 향기를 맡았다. 한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솜이불 같은 햇살이 부드럽게 미라를 감싸주었다. 꽃샘추위로 사람들의 몸은 움츠려 있었지만 햇살은 완연한 봄이었다.
병원을 나선 상우가 건널목을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주위의 사람들이 총총 걷는 모습과는 달리 그는 땅이라도 꺼질까봐 매우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힘없는 상우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미라는 턱을 어루만졌다.
병실엔 그녀 혼자만 있었다. 미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동하는 서울을 떠나고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가볼 만한 곳은 가보기도 하고 수소문을 했지만, 이미 사라지기로 마음먹고 떠난 사람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엄마가 …….’
미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생명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이 살아 있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는 미라에게 신호를 보냈었다. 그것을 알면서 아기를 지울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하가 떠나간 고통보다는 아기에 대한 갈등이 미라를 더 힘들게 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흘러갔고 아이는 예정일을 조금 넘어서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태어났다.
그래도 아이가 태어날 때쯤이면 동하고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 보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는 커가면서 동하를 더 닮아가고 있었다. 그러나지금도 그 사람에 대해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니를 뺀 것이 그쯤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질간질하던 사랑니가 아기를 낳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아파 오기 시작했다. 몸도 많이 피로했었고,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니란 이름 때문인지 사랑니가 아파 오면 동하에 대한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라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다 지난 일인데 …….’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낯선 사람의 사랑니를 통해 자신의 오래 전 일들이 영화필름 돌아가듯 머릿속에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집은 언제나 쓸쓸해 보였다. 이런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따라 더더욱 쓸쓸해 보였다.
‘이럴 때 문을 열어주며 괜찮냐고 물어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
긴 한 숨이 절로 흘러 나왔다. 밀물처럼 그리움이 밀려와 가슴을 핥고 지나갔다. 상우의 손이 사랑니를 뺀 턱 주위로 갔다.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 속마저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상우는 아침에 나왔던 이불 속으로 몸을 맡겼다. 햇살이 어머니의 손길처럼 상우의 볼을 어루만져 주었다. 지수의 얼굴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오늘 너를 나의 마음에서 조금은 보낸 것 같다. 행복하니?’
상우의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간호사의 들어오라는 말에 상우는 진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에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오늘이면 끝인가?’
상우는 의자에 앉아 이런 생각을 했다. 미라가 원장실에서 나왔다. 고개를 들어 미라에게 인사를 했다.
“괜찮으세요? 일주일 동안 불편하거나 아픈 건 없었나요?”
미라가 웃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예!”
상우는 짧게 대답했다. 미라는 마스크를 쓰고 하얀 비닐장갑을 꼈다.
“자, 아, 해보세요?”
상우는 입을 벌렸다. 미라는 지난번에 뽑았던 사랑니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아래쪽에 꿰맸던 실밥을 뽑아냈다.
“잘 아물었네요.”
미라는 오늘 뽑을 사랑니에 마취 주사를 놓으며 말했다. 전처럼 여러 가지 도구들이 상우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상우는 눈을 감았다. 입 속에 큰 힘이 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큰 나무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우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턱이 들리는 듯 하더니 사랑니가 빠졌다.
“지난번처럼 힘들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미라는 쉽게 일이 끝나서 기쁜지 웃으며 말했다. 미라는 솜으로 사랑니가 빠진 부위를 단단히 막은 후 마스크를 벗고 비닐장갑을 벗었다.
“위에는 안 뽑나요?”
상우는 고개를 들어 미라를 보며 말했다. 지난번처럼 위에는 안 뽑을 거 같아 상우는불안했다. 미라가 상우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위에 사랑니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으니 다음에 뽑는 게 좋겠어요.”
미라는 상우의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겠다는 듯 상우를 지긋이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째서 뽑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도 한다고 하던데 …….”
상우는 미라에게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부탁하였다. 미라는당황해하며 상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상냥하게 웃으며말했다.
“꼭 뽑아야 될 일이라도 있나요? 아직 나오지도 않은 것을 잇몸까지 째서 뽑는 건 좋지 않아요. 그냥 이것은 나중에 뽑죠?”
“……!?”
상우는 어떻게 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남아 있는 사랑니를 뽑지 않으면, 지수에 대한 기억이 자신을 계속해서 괴롭힐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래야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왠지 쑥스러웠다.
“그냥 뽑는 김에 다 뽑아 주세요? 언젠가는 뽑을 거잖아요?”
상우는 다시 한 번 미라에게 간절히 부탁을 했다.
미라는 상우가 계속해서 나오지도 않은 사랑니를 뽑아 달라는 말에 어찌해야 될지고민이 됐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하는 거 보니 뭐가 있긴 있는 거 같아.’
미라는 상우가사랑니에 대한 한을 넘어서 집착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한 집착이 이 사람의 사랑을 실패로 만들었지 않을까 하는생각이 들었다.
‘피우지 못한 사랑이 담겨 있는 사랑니일 텐데.’
미라는상우의 눈을 보며 잠시 생각을 했다.
‘사랑니는 사랑과 함께 시작된다. 그래서 사랑니는 사랑할 때가 되면 나온다고 했지.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랑니는 이 남자에게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사랑일지도 몰라.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남은 사랑니가 영원히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
“다른 이가 썩었을 경우 지금 안 나온 사랑니로 대체가 가능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미라는 상우를 보며 다정히 말했다. 상우의 얼굴이 밝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미라에게 더 이상 말해도 안 들어 줄 거 같다고 생각을 했는지마지못해 수긍하는 거 같았다.상우가 나가자 미라는 원장실로 들어갔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창가에 다가서며 미라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햇살은 하루가 다르게 더 따뜻해지고 있었다. 봄볕이 미라의 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미라는 손으로 왼쪽 턱 주위를 만졌다. 지금은 아무런 감각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랑니의 감각을 느껴 보고 싶었다. 미라는 손을 오른쪽 턱으로 가져갔다.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랑니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양쪽 모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하에 대한 기억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아이를 낳고 나서 처음에는 동하를 더 많이 원망 했었다. 사랑니만 빼면 잊을 것 같았던 동하에 대한 기억은 아이가 커 가면서 다시 문득문득 미라의 가슴에 자리 잡더니이제는 점점 더 생생하고 또렷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미라야! 너 아직도 동하 선배 원망하니?”
수현이가 진우가 있는 쪽을 살피며 미라에게 물었다.미라도 진우 쪽을 바라봤지만 진우는 다른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
“야, 진우 듣겠다. 오랜만에 동창 모임 와서 왜 그런 얘기 하니?”
지선이가 미라의 굳은 얼굴을 보며 수현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나저나 미라 넌 둘째 계획은 없는 거야? 선호 혼자 외롭지 않니?”
지선이가 화재를 돌리려고 미라에게 물었다.
“우리는 하나면 충분해. 미라도 너무 바쁘고 나도 바쁘고. 그런데 왜 여기는 공기가 차가워? 시베리아 벌판 같아. 자, 마시자, 수현이도 그렇고 지선이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진우가 미라 옆으로 와서 앉으며술을 권하며 말했다. 수현이가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진우가 미라 옆에 앉자 가만히 술만 들이켰다. 분위기는 다시 전처럼 시끌벅적했지만 수현이의 말에 미라는 한동안 가만히 술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미라아!”
택시를 기다리는 진우와 미라 옆으로 수현이가 와서 미라를 잡아끌었다.
“동하 선배얼마 전에정미 선배가 봤대.”
수현이는 진우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조용히 미라의 귀에 속삭였다.
“…….”
“시골 어딘가에 정착해서 거기서 개업했는지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더라. 너 혹시 소식 궁금해 할까봐. 그럼 나 간다.”
“……!”
멀어져 가는 수현의 뒷모습을 그렇게 미라는 한 없이 바라만 보았다.진우가 택시 타라고 불렀지만 미라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우가 미라의 손을 붙잡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미라의볼에 촉촉한 물기가 느껴졌다. 창밖으로 봄 햇살이 미라의 볼을 감싸 주었다.지난 주 동기모임 때수현이의 이야기가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살아 … 있었구나? 잘 … 살아 … 있었어.’
상우는 병원을 나왔다. 눈을 찌푸렸다. 햇살이 참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봄바람에꽃눈이 흩날리며 내리고 있었다.상우는 벚꽃 나무를 쳐다보았다. 벚꽃 나무 위로 태양이 걸쳐 있어서 햇빛과 흰 백의 벚꽃 잎들이핑크 다이아몬드처럼빛나고있었다. 그리고바람이 꽃잎을 살짝살짝 건드릴 때마다반짝거리며 흩날려날아갔다.
상우는살며시 눈을 감았다.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꽃눈이 상우의 얼굴에 잠시 머물다 가고를 반복했다.
‘아직 사랑니 한 개가 남아 있어. 나에게남아 있는 사랑이 있다는 걸까?’
상우는 손을 펼쳐 벚꽃 한 잎을 움켜쥐었다.
‘벚꽃 꽃눈이 흩날리며 살포시 오듯이사랑도시나브로나에게 올까?’
상우는 남아 있는 사랑니 부위를 만져 보았다. 언제 올지모를사랑이 그 사랑니 속에서 자라고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상우는 다시 옷깃을 여미고 햇볕이 따사로운 거리로 걸어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