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릴 때 가족들끼리 여행은 다니셨어요?”
“여행은 무슨 꿈도 못 꿨지?”
“뭐 가까운 곳도 안다니셨어요?”
“먹고 살기 바쁘고, 나도 몸이 안 좋으니 어디 갈 엄두도 안 났지. 막내도 날 닮아서 버스를 못 탔어. 그때는 지하철도 없고 하니 버스 탔다하면 멀미하고 두세 정거장 가면 차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가고 그랬으니까. 그래서 병원 갈 때도 차비 아끼려고 그러기도 했지만 멀미하니까 그냥 먼 거리도 걸어 다녔지. 막내가 나 따라 다니느라 고생 많이 했지.”
“혼자 다녀오시면 됐잖아요?”
“혼자 어떻게 나둬? 아직 학교도 안간 애를”
어머니가 정수를 보며 나무라듯 말했다.
“누나가 있었다면서요. 누나에게 맡기고 가면 되죠?”
“누나는 학교 안가나. 큰애 학교 갔다 오기 전에 병원 갔다 와야 하니 부리나케 서둘러 갔다 오고 그랬지.”
어머니는 그때일이 생각나는지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좀 쉬었다 다시 버스 타고 가면 되잖아요?”
“버스 한번 탈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데 너무 비쌌어. 그래서 막내하고 나는 어디 못 갔어.”
어머니는 그 시절 안 좋은 기억들이 생각나는지 얼굴에 주름이 더 생겼다.
“그럼 같이 어디 간 적이 한번 도 없었어요? 시골도 안갔어요?”
“한 번 있긴 했지. 내가 친정에 갈 때.”
어머니는 다시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를 생각해 내는 거 같았다.
“그때는 어떻게 갔는데요?”
“기차 타고 갔지.”
“기차는 괜찮았어요?”
“기차는 괜찮더라고. 근데 뒤로 앉으면 멀미 했어.”
어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할머니하고 막내하고 둘이 간 거여요?”
“그랬지. 엄마 생일이었나 해서 거기 들렀다가 막내네 큰 집이 거기서 멀지 않아서 들렸다 왔지.”
“그럼 꽤 오래 갔다 오셨네요?”
“말 마, 큰 집 가는데 죽는 줄 알았어.”
어머니는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겁에 질린 얼굴로 말을 하였다.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때는 차도 얼마 없고 해서 밤이 다 되어서 큰 집 근처에 내렸지. 날이 어둑해지고 시골길이라 뭐가 보여야지. 지금처럼 가로등이 있길 해 그렇다고 손전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사리 같은 애 손 잡고 논길을 가는데 아무리 찾아도 집은 안보이고 이상한 공동묘지가 보이니 얼마나 무서웠겠어. 애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손과 치맛자락만 붙들고 나에게 착 달라붙어서 따라오는데 다리도 안 떨어지고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정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몰라 어떻게 나왔는지. 묘지를 빠져 나와서 여기저기 무작정 걸었던 거 같아. 한참 가다보니 불빛이 보여서 겨우 찾아갔지. 큰 집에 도착하니 좀 안심이 됐는지 애가 그때부터 막 울기 시작했어.”
정수는 그때의 기억이 잔상처럼 가물가물 떠오르는 거 같았다. 정수는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왜 나는 기억을 못하고 있었을까?’
정수는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소환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 조각들은 퍼즐처럼 맞춰져 가고 있었다. 물론 어머니를 통해 새롭게 듣는 얘기들이 더 많이 있었다. 정수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하나씩 완성 될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머니와의 추억속의 이야기를 통해 정수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했던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수는 그동안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아쉬웠다. 어머니와 중학교 이후로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그게 어느 순간부터 너무 자연스러워졌는지 같이 있어도 대화를 하지 않아도 낯설지가 않았다. 대부분 정수는 어머니가 물어오는 얘기에 간단히 대답을 하거나 주로 어머니가 라디오처럼 혼자 말을 하면 듣고 있었다.
“할머니, 자식들 많이 보고 싶으세요?”
“여기 있는데 뭐가 보고 싶어?”
어머니가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기억하겠어요?”
정수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럼, 나 돌봐주는 아저씬데.”
어머니는 알 듯 모를 듯 한 말을 했다.
“여기 사진 속에 있는 분, 아시겠어요?”
정수가 사진첩을 갖고 와 어린 시절 사진 속에 자신을 가리켰다. 어머니는 말없이 쓰다듬고 있었다.
“우리 손주랑 많이 닮았네.”
“할머니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여요?”
정수의 물음에 어머니는 주저 없이 대답을 했다.
“나이를 잊게 만들지.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도 부모 눈에 자식은 여전히 애거든. 자식만 보면 힘도 나고. 근데 컸다고 나를 이기려고 하고 지가 보호자 역할을 하려고 해. 내가 지 보호자 인줄 모르고. 그럴 땐 서글퍼, 미안하기도 하고.”
어머니는 대화를 하는 내내 얼굴표정이 변화무쌍하게 변했다.
“자식들이 무시하는 거 같아서 그래요?”
정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내가 이제 부모로서 역할을 다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 치맛자락 붙들고 숨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잖아. 나이가 들면 아프고 병들어서 오히려 짐이 되어 버리니. 이제 쓸모없는 사림이 된 거지.”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리 하세요. 자식에게 부모는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죠.”
“그래요? 아저씨도 그런 생각이 들어?”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네, 그러고 말고요.”
부모가 되고 나서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정수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부모님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내 자식에게 상처가 나고 아프면 돌봐주는 부모 탓을 했었다. 손주가 아팠을 때 어머니는 얼마나 더 가슴 아프고 미안한 맘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은 못했던 거 같았다. 정수는 가만히 어머니를 바라봤다.
‘나도 잘 못 키운 내 자식들을 어머니는 훌륭히 잘 키워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