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호자

12.

by 미운오리새끼 민

집으로 온 날 어머니는 집안을 한참이나 고개를 돌리며 두리번거렸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나 집에 데려다 줘.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어머니가 정수의 팔을 붙들고 말했다.

“어머니 집에 왔잖아요. 어머니 오고 싶어 하던 집이요.”

정수는 아버지 사진을 갖고 왔다.

“아버지 기억 하세요?”

어머니는 한동안 아버지의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누군지 아세요?”

어머니는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방안을 천천히 살폈다.

“엄마! 여기 엄마 살 던 곳이잖아?”

수현이가 휠체어 앞에 앉아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수현이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침대에 가서 쉴래요?”

정수는 방으로 휠체어를 끌고 갔다. 침대 앞에서 정수가 어머니를 안고 눕히려 하자 어머니가 저항을 했다.

“나 안 누울 거야! 안 누울 거야!”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정수의 몸에서 빠져 나가려 했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행동에 정수도 당황하여 어머니를 휠체어에 다시 앉혔다.

“어머니 침대에 눕는 거 싫어요? 여기 더 앉아 있으실래요?”

정수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 묶어 놓고 죽이려고 하는 거지?”

어머니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엄마 왜 그래? 엄마가 오고 싶다고 해서 왔잖아?”

수현이가 엄마를 다독였지만 어머니는 수현이를 밀쳐 냈다.

“나 묶는 거 싫어. 가만히 있을 테니 제발 나 묶지 말아줘.”

“그렇게 할게요. 어머니 그냥 그럼 더 앉아 있을래요?”

정수는 수현이를 일으켜 세우고 어머니를 가만히 나뒀다. 어머니는 그렇게 한동안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차츰 집에 적응을 하였다. 정수도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에 적응이 되어 갔다. 어머니의 몸에는 야누스가 있는 듯 어린애가 되었다가 사나운 폭군이 되기도 하였다가 순한 양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없이 변하는 어머니의 행동보다 정수는 점점 어머니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그와는 별개로 정수는 하루하루 어머니와 지내면서 나름 어머니를 알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하나씩 찾아갔다.

“할머니, 옛날에는 참 고왔을 거 같아요.”

“곱긴, 하도 힘들게 살아서 그런 거 몰랐지.”

어머니는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할머니 자식들은 뭐해요?”

“시집 장가가서 잘 살고 있지.”

어머니는 먼 곳을 보며 남 얘기 하듯 말했다.

“손주도 있어요?”

“그럼 있지 ……. 근데 기억이 안나. 여자애 둘 남자애 둘이었는데.”

어머니의 얼굴이 밝았다가 일그러졌다.

“할머니, 막내가 많이 아팠어요?”

“어릴 때 많이 아팠지. 날 닮아 약골로 태어났는지 잔병치례를 많이 했어. 그때는 병원도 없어서 10리를 걸어가야 했어. 한밤에 불덩이 같은 애를 업고 어떻게 갔는지도 몰라. 등 뒤에서 울다 울다 지쳐서 아무 소리가 안 들리면 포대기를 옆으로 해서 죽었나 살았나 살피고 그랬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직도 퀭한 눈에 흐를 눈물이 많이 남아 있는 거 같았다. 정수는 그렇게 어머니와 하루하루 과거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며 정수가 기억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할아버지? ……. 괴팍하기도 하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상했지.”

어머니는 한동안 머뭇거리다 말했다.

“할머니에게 잘 해줬어요?”

“잘 해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내가 원체 몸이 약했거든. 막내를 낳고 나서부터 많이 아팠어. 애 아빠가 벌어다주는 돈 족족 다 내 병원비로 나갔으니, 안 그랬으면 애들도 그렇고 다들 편히 살았을 텐데 …….”

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 많이 사랑하셨나보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사랑은 무슨 ……. 그건 모르겠고, 싸움을 할 때도 소리는 많이 질렀어도 한 번도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어. 그리고 내가 아프면 애들 밥이고 집안일이고 다 했었지. 가정적인 분이었지.”

어머니는 뭔가를 회상하듯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할아버지하고도 많이 싸웠어요?”

“애들 어렸을 때는 ……, 집안일보다는 외부 사람들 일로 그랬지.”

“외부 누구요?”

“동네 주민들이나 친척들 뭐 다양해.”

“근데 두 분 문제로는 안 싸웠어요?”

“응 안 싸웠어. 싸울 일이 뭐 있었나. 내가 맨날 아파서. 집안일 갖고는 싸운 적은 없었던 거 같아.”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셨다.

“근데 왜 다른 일 갖고 싸웠어요?”

“할아버지가 괴팍하니까. 친척들도 싫어했어. 싫은 소리만 하니. 본인은 조카들, 형제들 잘 되라고 하는 말이지만 그런다고 듣나. 그러니 다들 여기 와서 싫은 소리 듣고 나면 싸우고, 안 찾아오고 하니 내가 제발 좀 그만하라고 하면 또 그 불똥이 나에게 튀어서 싸우고 그랬어.”

어머니는 회한이 깊은 듯 한숨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이혼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어머니는 기억을 되찾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그냥 집을 나갔지.”

“왜요?”

정수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어머니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웃집이 오해를 해서. 내가 잘 못하지도 않았는데 옆집 아줌마가 뭐라 했거든. 그래서 그걸 할아버지에게 말했더니 할아버지가 그 여편네 혼내주겠다고 막 쫓아가려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다 싸웠지.”

“할아버지 멋지시다. 할머니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뭐가 멋있어. 그래서 싸우고 나면 그 아줌마를 어떻게 봐? 별 것도 아닌 것을 할아버지가 흥분해서 그런 거지.”

어머니는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약간 언성이 높아졌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뭐 어떻게 돼. 나하고 한바탕 싸우고 집 나가겠다고 해서 나도 나가라고 했지. 그랬더니 막내를 들쳐 업고 나가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할머니는 가만히 있었어요?”

“아니,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막내가 막 발버둥 쳤지. 울면서. 막내가 아빠를 엄청 무서워했거든. 애들에게도 너무 엄하게 해서 애들이 다 아빠를 무서워했었어. 그러니 아빠가 같이 나가자고 하는데 따라 나서겠어. 안 간다고 난리 난리 쳤지.”

“어머니는 안 말리셨어요?”

“데리고 가면 가나 보다 생각했는데 애가 하도 그러니까. 혼자 가버리더라고. 그때 얼마나 창피했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

어머니는 그때의 일이 또렷이 기억나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왜요?”

“동네 사람들이 다 우리 집 문 앞에 와서 구경하고 있었거든. 사람들이 난리 났는 줄 알고 대문 앞에서 웅성거리고 그랬었으니까.”

“근데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 왔나 봐요?”

“응 왔어.”

어머니는 덤덤하게 말했다.

“얼마 만에 왔는데요?”

“아마 한 한 시간도 안됐지.”

“네? 한 시간도 안 있다 오셨어요?”

정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응. 금방 왔어.”

“왜 그렇게 빨리 오셨데요?”

“나중에 물어 보니까 애들 나두고 가기 뭐해서 동네 한 바퀴 돌고 왔대.”

“막내가 따라 나갔으면 어땠을까요?”

“글쎄?”

“할아버지 막내가 따라갔으면 안 돌아올 생각 이셨나 봐요?”

“모르지. 그럴 수도 있고.”

“근데 왜 막내만 데리고 가려고 했을까요? 자식이 둘이나 있었다면서요?”

“아들이니까 데리고 가려고 했나 보지.”

어머니는 과거 얘기를 할 때면 차분하고 암전해졌다. 정수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 과거 속으로 매일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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