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호자

10.

by 미운오리새끼 민

“정수야 내가 요즘에 기억을 자꾸 까먹는 거 같아.”

한동안 차안에서 말이 없던 어머니가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이 드시니 그럴 수 있죠. 저도 깜박깜박 할 때 많아요.”

“니 아버지 기일도 잊어버리고 …….”

어머니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런데 밥 먹을 때나 TV볼 때면 너 아버지가 있는 느낌이 들어. 자꾸 헛것이 보이고.”

정수는 백미러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아무런 표정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니들 고생시키면 안 되는데 …….”

어머니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어머니 아무 일 없으니 걱정 마세요. 아버지 몫까지 오래 사셔야죠?”

“아버지도 오래 살다 가신거지. 이제 아무 여한 없어. 너희들 다 잘 살고 있고, 애들도 다 컸고. 나만 아프지 않고 살다가 가야 하는데 …….”

어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빗줄기가 한 방울씩 차창 밖을 때리고 있었다.



“준비 다 끝난 거야? 미안해 같이 준비하지 못해서 …….”

정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에게 말했다.

“형님이 다 했어요. 전도 미리 다 준비해 갖고 오셨더라고요.”

“왔니? 엄마 왔어?”

수현이 주방에서 나와서 정수와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생 많았네.”

주방에서 나오는 수현을 보며 정수가 말했다.

“올케가 힘들었지.”

수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수는 어머니의 짐을 소파 옆에 두었다.

“어멈 고생 많았네.”

어머니가 소파에 앉으면 말했다.

“아니어요. 어머니 괜찮으세요?”

“응, 난 괜찮아.”

“매형은 언제와?”

정수가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물었다.

“방금 전에 출발했다고 하네. 우리 먼저 지내라고 했어.”

“은혁이하고 은영이는?”
“은혁이는 시간 맞춰 온다고 했고, 은영이는 막달이라 오지 말라고 했어.”

“잘했네. 건강은 이상 없대?”

“응, 뭐 아직까지는 괜찮은가봐. 애 안생기다가 아버지 그러고 난 다음에 생겨서 은영이는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마지막 선물 주고 갔다고 계속 그래.”

수현이는 뭔가 미련이 남는지 아쉬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하고 다시 주방으로 갔다.



향에 불을 붙이고 정수는 가만히 그 앞에 앉았다. 병풍 뒤로 베란다 밖의 하늘에는 잘려진 손톱 같은 달이 구름 위에 떠 있었다.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제사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혁이가 술을 받아 상위에 놀려 놓았다. 정수와 진혁이, 은혁이, 소진이가 절을 했다. 이어서 수현이가 은혁이가 받은 잔에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한동안 다들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누구라도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촛불로 밝힌 거실은 어두웠지만, 소파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또렷이 보였다. 여전히 어머니는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한잔 드리실래요?”

정수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소파에서 일어나 향이 피어있는 앞으로 왔다. 정수는 상위에 있던 잔을 비우고 어머니의 술을 받아 상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어머니!”

기도를 하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수가 소리쳤다. 어머니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정수는 허겁지겁 어머니를 들쳐 업었다.

“왜 그러신 거야?”

수현도 놀라서 정수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병원 가야지.”

정수는 이미 어머니를 업고 현관 앞으로 가고 있었다.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아내가 정수를 따라가며 물었다. 갑자기 집안은 아수라장이 된 듯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 거렸다.

“시간 없어. 일단 병원가자.”

정수는 어머니를 업고 현관을 빠져 나왔다. 그 뒤를 수현이가 따라 나섰다. 차에 어머니를 태운 후 정수는 비상 깜박이를 킨 상태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뒤에서 수현이가 어머니를 깨우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정수는 스피커폰으로 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어. 지금은 의식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하냐?”

정수가 다급하게 창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쓰러지셨는데?”

평소 침착하던 창수도 정수의 말에 빠르게 물었다.

“몰라, 아버지 제사 지내고 있는데 내가 술 한 잔 따르시지 않을 거냐고 했거든, 그랬더니 어머니가 소파에서 일어난 후 제사상 앞에서 쭈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잔에 술을 따르고 잠깐 앉아서 기도를 하시다가 갑자기 옆으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어. 그리곤 의식이 없어.”

정수는 주변 차들을 빠르게 추월하며 말했다.

“기립성 저혈압 증세 같은데. 머리 심하게 부딪혔니?”

정수의 말에 창수가 말했다.

“쿵하는 소리가 들렸지.”

“병원에 가고 있는 거지?”

“응 지금 가고 있어.”

“뇌 손상이 없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도착하면 전화 줘 봐.”


창수의 말대로 병원의 진단은 기립성 저혈압에 따른 쓰러짐과 이로 인한 뇌손상이었다.

“편마비 증상이 올 수 있습니다. 심하면 말도 어눌해 질 수 있고요. 뇌출혈이 심해서 일단 응급으로 수술을 했지만 치매와 뇌경색이 있었던 터라 회복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가 정수에게 말했다. 정수는 말없이 의사의 말을 듣기만 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수현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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