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차안에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아범, 앞으로는 나 혼자 다닐 테니까 이제 그만 와. 너도 바쁠 텐데 맨날 이리 휴가 내고 나오면 안 되잖아.”
“아니 괜찮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그러세요? 휴가 쓴다고 누가 뭐라 안한다고요. 그러니 제발 그만 하세요!”
정수도 모르게 순간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정수는 입을 닫았다.
“엄마가 미안해서 그렇지. 나 혼자서도 올 수 있는데.”
“괜찮다구요. 그러니 제발 이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정수의 목소리가 아까보다는 작아졌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어머니, 저 어머니랑 이렇게 병원 다니는 거 좋아요. 어머니 아니면 저 휴가도 잘 안 쓰는데 어머니 때문에 휴가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정수는 백미러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휴가가 1년에 몇 개 인줄 아세요? 20개가 넘어요. 그거 다 쓰려면 한 달에 두 개씩 써야 해요. 그러고도 못써서 반납해도 돈도 안줘요. 그런데 어머니 병원 간다고 휴가 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애들하고 놀러갈 때 쓰면 되지.”
어머니가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애들 머리 컸다고 어디 가려고 하지도 않아요. 친구들끼리 노는 거 좋아해서 덕자 산책도 안 시켜 줘요.”
“덕자가 불쌍하네. 혼자 얼마나 답답할까.”
“덕자 불쌍해요?”
정수는 백미러러 어머니를 쳐다봤다.
“불쌍하지. 하루 종일 혼자 있을 텐데 …….”
어머니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마치 자신이 일처럼 어머니는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어머니 옛날에 저 데리고 병원 갔던 거 기억나요? 저 맨날 아파서 어머니가 저 데리고 병원 갔었잖아요. 누나는 아파도 약국만 데리고 갔다면서요? 왜 그러셨어요?”
“네가 하도 잘 아파서 그랬지. 수현이는 건강했어. 약 안 먹어도 나았고. 넌 조금만 움직여도 열나고 그래서 겁나서 병원 갔었지.”
어릴 적 정수는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을 자주 가기도 했지만 정수가 아파서 병원을 간 적도 수 없이 많았다. 새벽에 열이 나서 아버지 등에 업혀 병원 문을 두드려 의사를 깨워 진찰을 받은 적도 가끔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정수를 아끼고 사랑했었다.
“근데 왜 누나 혼자 남겨 두고 두 분이 다 병원엘 갔어요?”
“아버지는 널 업어야 했고, 엄마는 널 챙겨야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10리도 넘는 길을 니 아버지가 널 업고 어떻게 뛰어 갔나 몰라.”
어머니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누나가 새벽에 깨서 자기 혼자 남겨졌다고 울기라도 하면 어쩔 뻔 했어요?”
정수는 어머니를 힐끔 쳐다봤다.
“초등학생인데 뭐가. 어린 것도 아니고. 그리고 수현이 깨워서 병원 간다고 말하고 나오긴 했어.”
“누나는 그런 얘기 한 거 어머니에게 못 들었다고 하던데요?”
정수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백미러로 어머니를 보며 물었다.
“잠결에 들었나보지. 그리고 걘 업어 가도 몰랐어. 지금은 결혼해서 아침에 꼬박꼬박 일어나고 출근하는 거 보면 신기해.”
어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누나가 그 얘기만 하면 엄청 서운해 해요. 자기는 병원 한번 안 가봤는데 나만 뻔질나게 다녔다고 …….”
정수는 누나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근데 정말 제가 생각해도 많이 아프긴 했어요. 저도 너무 아파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요.”
“수현이 걱정이 안됐으면 거짓말이지. 미안하고 안쓰럽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 보다는 니가 너무 많이 아팠어. 새벽에 가서 문 두드리고 의사선생님 깨워서 진료 받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다 진료해 줬어. 고마운 분이야.”
정수는 문득 결혼을 해서 소진이 진혁이가 어렸을 때 아팠던 기억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한밤에 아플 때는 정신이 몽롱해 졌었다. 애엄마와 아이만 안고 응급실에 수없이 갔었다. 특히 진혁이는 정수를 닮아서인지 열이 유독 많이 났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119를 부를 시간도 없어서 비상 깜박이를 켜고 응급실을 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저러다 큰일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뿐이었다.
정수는 쓴 웃음이 나왔다. 정수도 처음에는 진혁이가 아플 때 소진이까지 데리고 병원을 같이 갔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소진이만 집에 남겨 놓은 채 애엄마와 함께 병원엘 가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진이를 두고 간 게 잘 자고 있는 애까지 깨워서 같이 가면 잠도 못자고 병원에 감염 우려 때문에 데리고 가지 않은 거 같았다. 뒷자석에 앉은 애엄마는 의식 없는 진혁이를 안고 울부짖듯 진혁이를 불러대곤 했었다.
‘그때 어머니, 아버지도 그런 마음으로 날 업고 병원까지 가서 문을 두드렸겠지.’
한강에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저녁 먹고 가!”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며 정수에게 말했다.
“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거니 천천히 하셔도 되요.”
“애미에게 얘기 했니?”
“네, 여기서 자고 간다고 했어요.”
“그럼 내가 얼른 밥 준비할게.”
정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아무것도 다를 게 없었다. 차에서도 집에 와서도 치매가 있다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정수는 TV를 켰다.
“밥 먹자.”
준비가 다 됐는지 어머니가 정수를 불렀다. 정수는 식탁으로 갔다. 여전히 아버지의 자리에는 밥과 국, 그리고 숟가락이 놓여 있었다.
“식사 하세요.”
어머니가 아버지 자리를 보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식사 잘하세요?”
정수는 식탁 앞에 서서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보고도 뭔 소리야? 잘 드시잖아? 어여 너도 먹어.”
어머니는 웃으면 정수에게 말했다. 정수는 아버지 자리 맞은편에 앉았다. 어머니는 정수 옆에 앉았다. 반찬은 여전히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드셨던 반찬이었다.
“아버지 당뇨 때문에 이렇게 차리신 거여요?”
“응, 토마토하고 버섯이 좋다고 해서. 청국장도 끓였지. 그러고 보니 너 좋아하는 게 없네.”
정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일어났다.
“뭐 하시게요?”
“생선이라도 구워주려고.”
“됐어요. 이거 같이 먹으면 되죠.”
정수는 밥을 먹으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버지 때문에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 긴 나도 이렇게 먹으면 건강에 좋은 거지. 천천히 많이 드세요.”
어머니는 아버지 쪽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식사를 했다. 정수는 눈물을 참으며 밥을 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