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창수야, 병원에서 아버지 마음의 준비 하라고 한다. 어쩌면 좋냐?”
“오늘 그런 거야?”
정수는 술을 한 모금 털며 고개만 끄덕였다. 창수도 말없이 술 한 잔을 벌컥 들이마셨다.
“아버지가 그동안 잘 버텨 주셨는데 힘든가봐.”
창수가 자신의 술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정수는 다시 술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정수는 덩그러니 남겨진 빈 잔만 바라봤다. 창수가 정수의 잔에 술을 채웠다. 창수가 정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건데?”
“글쎄, 나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어머니하고 얘기해 봤어?”
“아직, 아무하고도 말 못했지. 네가 처음이야. 어머니에게는 뭐라 말 하냐. 못난 자식 지 부모하나 책임지지 못하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게 한다고 욕하실까?”
“아이고 니 어머니가 그럴 사람이냐?”
“그럼 옳다구나 잘 됐다 그럴까?”
정수가 다시 술을 비웠다.
“창수야, 나 지금까지 뭐 한 거니?”
“…….”
“빈 골대에 헛발질 한 거 아니니?”
“니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했잖아.”
“이렇게 허망하게 마무리 할 거였으면 차라리 어머니 말씀처럼 집에 모셔서 조금이라도 같이 있는 게 나았을 거 같아. 지금은 가도 얼굴도 못 알아보고. 통증이 심한지 얼굴은 오만상이 다 찡그러져 있고. 휴~~.”
정수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야! 자기가 자기 목숨에 대해서 결정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아버지 생사를 왜 내가 결정해야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불쌍해.”
정수가 울부짖듯 화를 내며 창수에게 말했다.
“그래도 어머니에게 말하고 어머니 의견을 따라야 하는 거 아니니?”
“어머니는 무슨 죄니? 네가 의사니까 한마디 해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수가 애원하듯 창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창수는 말없이 술잔만 비웠다.
“아버지 사실 만큼 산 거 아니니? 그만하자.”
어머니가 정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붉게 충혈 됐다. 정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수현이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저렇게 병원에서 혼자 가시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 하루가 몇 시간이 되더라도 함께 있다 가는 게 아버지도 행복할 거야.”
“어머니 후회 없으세요?”
정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도 이해하실 거다. 아범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니 고생한 거 아버지도 다 알거야. 할 만큼 했어.”
어머니는 수현이를 바라보며 손을 지그시 잡았다. 수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울었다. 어머니는 수현이의 등을 쓸어 주었다.
아버지는 끝내 집에는 올 수 없었다. 집에서 아버지를 간호하겠다는 가족의 의견은 주치의의 불가 방침으로 할 수 없었다. 대신 창수의 병원에 입원하는 걸로 허락을 받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으로 못 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아버지와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아버지는 창수의 병원으로 옮긴 후 일주일 정도 있다가 떠나갔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버지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종종 사람을 못 알아보거나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 아버지의 모습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사람같이 보였다.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는 정수와 가족들 곁을 떠났다.
아버지의 짐을 어머니는 정리하지 못했다. 정수도 수현이도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어머니와 정수의 곁에 함께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식사를 차리면서도 꼭 아버지의 밥그릇에 밥을 펐다. 어머니는 그렇게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있었다.
“집을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누나의 말에 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크잖아?”
어머니는 여전히 그 집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같이 살자고 말은 했지만 어머니는 혼자가 좋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 큰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 혼자 된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식사 때마다 아버지의 밥을 식탁에 올려놓고, 수저와 젓가락을 가지런히 아버지의 자리에 놓았다. 처음에는 몇 달 그렇게 하다 말겠지 했는데 벌써 1년이나 어머니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혼자 계신 어머니가 나름대로 홀로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누군가 같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머니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라 여겼다.
요즘 들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다정스레 식사를 하라고 말을 건네며 식사 중에도 이런 저런 얘기들을 했다. 마치 정말 옆에 아버지가 있는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며 식사를 했다. 살아계실 때 어머니는 식탁에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평소 어머니가 이상행동을 하지 않던가요?”
신경과 의사의 뜻밖의 말에 정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에게 이상행동은 없었다.
“어머니랑 같이 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씩 찾아뵙거나 전화 통화할 때 별 이상한 느낌은 안 들었는데요? 무슨 병이라도 ……?”
“집착적인 행동이나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향은 없었나요?”
의사의 말에 정수는 빠르게 어머니의 행동을 생각해 봤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의사는 어머니 뇌 MRI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였다.
“지난번에 정기 검사 때 발견한 건대요. 이 부분 보이시죠?”
의사는 마우스를 이용하여 어머니의 뇌 사진 속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혈관이 붉게 보이다가 가늘고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있었다.
“혈관성 치매 초기 증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의사는 정수의 얼굴을 한번 보고 나서 다시 설명하였다.
“아직 큰 문제는 없으나 방치하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약물치료하고 어머니 혼자 두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정수는 진료실을 빠져나와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정수가 나오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