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별을 위한 사랑 3-2.
“규석아 나 결혼하면 엄마 곁에서 같이 살고 싶어. 그래 줄 수 있어?”
“그야 당연하지 어머니 혼자신데 우리가 잘 모셔야지.”
“어머니, 아버지가 싫어하지 않을까?”
“우리 집은 형도 있고 누나도 있잖아. 누나도 결혼해서 바로 옆에 살고 있는데 뭐.”
결혼을 하면 엄마와 같이 살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결혼해서도 같이 살자고 하면, 혼자 살겠다고 했었습니다.
“너희들끼리 잘 살면 엄마는 그것으로 족해. 너 보내고 나면 엄마도 이제 혼자 살고 싶어.”
전에 했던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가 됩니다. 어쩌면 엄마는 저와 적당한 거리를 두며, 엄마의 행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를 떠나 자유로이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누군가와 사랑도 할 수 있겠죠. 그러고 보면 자식이 왠수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처음에는 엄마가 아빠 이외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지금은 이해하려고 합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엄마는 정말 잘 살 수 있을까요? 그래도 지금은 나마저 떠나면 엄마 혼자서 외로이 살 것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네요. 엄마의 행복은 뭘까요? 내가 빨리 없어지는 게 아닐까요? 현관문소리가 들리네요. 엄마가 온 거 같아요. 창문을 얼른 닫아야 겠어요.
바람은 창문을 닫는 걸 아는 지 빠르게 방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정현이는 조금 열려진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잘 있었어? 밥은?”
엄마는 정현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살핀 후 정현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먹었어.”
정현이는 침대에서 앉으며 말했다.
“금방 저녁 준비할게. 너 좋아하는 된장찌개 재료 사왔어.”
엄마는 피곤하지도 않나 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씻지도 않고 저녁 준비한다고 주방으로 들어갑니다.
“엄마, 나하고 있으면 행복해?”
밥을 다 먹을 즘 정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니? 니 아빠 죽고 나서 너 없었으면 하루도 못 살았을 거야. 니가 있어서 이렇게 버틴 거지.”
엄마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나 없었으면 다른 남자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잖아?”
“하하하 글쎄?”
정현이의 말에 엄마가 정현이를 놀리듯 말했다.
“뭐야 그 웃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가보네.”
정현이는 막상 엄마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갑자기 아빠가 죽은 후 정신이 없었지. 엄마에겐 아빠보다는 너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어. 아빠에 대한 슬픔과 원망도 잠시라고 할까? 혼자 남은 너를 어떻게 잘 키워야 하나 하는 생각에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네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가니까 조금씩 변하더라. 너에게도 누군가가 생기고 너하고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니 내 주변의 삶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까? 그런데 엄마에게는 그게 사치 인가봐. 다시 정신 차리고 너만 바라보고 살아야 겠다고 마음먹으니 행복해.”
엄마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왜 사치야 지금이라도 그렇게 살면 되지.”
정현이는 엄마가 불쌍해 보여서 아까와는 다른 감정으로 말했다.
“아니, 엄마가 너 말고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말라고 아빠가 그러는 거 같아,”
엄마는 정현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겼다.
왜 이 상황에서 서영이라는 사람이 생각날까요? 엄마와 서영이가 오버랩 됩니다. 서영이는 왜 준호를 잊어야 할까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잊기 힘든 거겠죠? 그래도 서영이는 준호를 잊으려고 거리를 둡니다. 여자의 촉인데요, 서영이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나 봅니다. 어머니도 아빠를 잊었을까요? 그래도 매년 기일을 챙기는 엄만데 …….
엄마는 잊혀지기보다는 무뎌진 거 같아요. 세월의 흔적이겠죠. 나도 규석이가 무뎌질 수 있을까요? 정말 힘들 때는 엄마보다 규석이가 더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요? 멀어졌던 규석이가 다시금 가까이 다가와 있어요. 엄마는 항상 내 곁에 있고, 내 편인데도 규석이가 생각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내가 이렇게 아파서 힘들 때 규석이는 항상 내 곁에 있어 줄까요? 살짝 의문이 갑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는데. 규석이가 언제까지 내 곁을 지켜줄지 그런 불안 때문에 내가 먼저 그를 떠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아프고 힘들면 규석이가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규석이를 보면 좀 아픈 것이 덜 아플 거 같아요.
“첫사랑은 다 안 되나봐?”
범수가 규석이와 함께 시험을 마치고 나오면서 푸념하듯 말했다.
“왜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 시험 망쳤냐?”
“아니, 그냥,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
범수가 넋두리를 하듯 말을 했다.
“하하, 너도 그 친구에게 맘이 있었네.”
규석이가 범수를 놀리듯 말했다.
“너 보니 처량해서 그렇다.”
범수는 규석이를 힐끗 처다 보며 말했다.
“참, 친구 결혼식 때 어땠냐?”
“으, 응. 뭐 그렇지.”
규석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대충 얼버무렸다.
“기분이 묘했겠네?”
“뭘, 그냥 친군데, 다 똑 같은 거지.”
범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만약에 정현이가 나 말고 다른 남자랑 결혼한다고 해서 예식장 가면 이상할 거 같아.”
규석이는 상상을 하며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야, 너하고 같냐? 난 그냥 친구고, 넌 애인이고.”
“넌 그런데 아쉽지 않냐? 지원이하고 사귀지 못한 것을? 그래도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 있을 거 아냐?”
규석이가 범수를 의심의 눈초리로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범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쨔샤, 다 지난일인데 뭘 그런 거 따지면 뭐 하냐.”
“맞아, 그때 다른 과 후배 데리고 갔다면서?”
“응 그랬지. 혼자 가는 게 좀 부담되더라구.”
범수는 규석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미리 얘기를 했다.
“어땠어?”
“뭐가?”
규석의 음흉한 눈빛을 범수는 일부러 피했다.
“아니 결혼식장 데리고 갈 정도면 걔하고 뭐 있는 거 아냐?”
“인마, 그냥 후배야 후배.”
범수는 규석이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에이,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결혼식에 데리고 가?”
범수의 말에 규석이는 여전히 의심을 했다.
“혼자가기 뭐해서 데리고 갔다니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거 아냐.”
“그럼 걔는?”
“하하, 그 애도 마찬가지고.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고, 이번 학기 같이 수업 듣다보니 좀 친해진 거지 별 의미는 없어.”
범수는 무의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
규석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야, 쓸데없는 상상 하지 마! 괜한 오해 생길라.”
“니가 그래서 여자가 없는 거야.”
규석이는 범수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범수는 규석이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오늘 시험도 끝났겠다. 맥주내기 당구 어때?”
규석이가 술이 당기는지 범수에게 제안을 했다.
“야, 나 당분간 금주해야해.”
“아니 천하의 술꾼이 갑자기?”
범수의 뜻밖의 말에 규석이가 놀랐다.
“그럴 일이 생겼다.”
범수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뭔데?”
“건강검진을 받아야 해서.”
“어디 아파?”
규석이가 범수를 천천히 살피며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군대 있을 때 헌혈하면서 조혈모세포기증을 신청했는데 나와 일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의향이 있냐고 얼마 전에 연락이 왔어. 그래서 한다고 했지. 다음 주 검사 받으러 가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피를 깨끗이 해서 가야 하지 않겠니?”
“그거 위험하다고 하던데 괜찮아?”
규석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사람 살리는 일인데 죽기야 하겠냐? 별일 없으니 다들 하고 그러는 거지.”
“오! 범수 대단한대. 난 못할 거 같아. 부모님은 허락했어?”
“응,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는데 내가 잘 말했지. 그게 부모 자식 간에는 일치할 확률이 없고, 형제간에도 25%정도 된다고 하네. 타인 간에는 2만분의 일 정도고. 평생 한번 할까 말까 한 일인데 그래도 졸업 앞두고 좋은 의미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규석이는 범수가 갑자기 어른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