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받는 블라인드 리더란
무신불립이란 말이 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한 말에서 유래된 말이다. 뜻은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라는 의미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민법에서도 이를 가장 우선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사람 관계에서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을 의심하고 함께 어떤 일을 하기에는 부적절한 사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신뢰 역시 한 조직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다. 조직원 중 누군가 조직 내 중요한 기밀 사항을 상대 조직에게 유출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할지 상상해 보라. 특히 기업의 특허 기술이나 핵심 기술 유출의 경우에는 회사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다. 그래서 요즘 기업들의 경우 회사의 기술 보호를 위해 보안을 강화하고 있지만 가끔씩 기업의 기밀 유출 사례가 뉴스에 회자되기도 한다.
회사나 조직에서 상하 간의 관계, 특히 리더와 참모와의 관계는 신뢰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함께 일을 할 수 없다. 리더에게 능력 있는 참모와 충성스러운 참모 중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 리더는 충성스러운 참모를 택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리더에 대한 충성심과 신뢰가 없는 참모를 데리고 있는 리더는 없다. 능력 있는 참모를 선택하는 경우는 후에 리더가 참모를 토사구팽 할 수도 있다. 능력은 교육이고 신뢰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모는 리더를 항상 신뢰해야 한다. 한순간도 리더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도 안 되고, 더 나아가 리더를 배신해서도 안 된다. 리더와 참모는 처음부터 한 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리더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다. 때론 목표를 벗어나 일탈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리더를 불신하거나 리더가 위험에 빠졌다고 해서 참모가 리더를 저버린다면 신의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다. 리더를 이해하고 이를 도와주는 참모가 되어야 한다.
'어진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라고 했듯이 처음 리더를 선택한 것이 참모라면 자신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 참모의 불신과 배신은 조직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리더를 의심하더라도 참모는 충심으로 리더를 믿고 리더를 올바른 길로 이끌며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했다. 물론 그의 아들 유선에게도 참모로써 충성을 다했다. 유비가 제갈량을 신뢰하고 모든 권한을 위임해 준 것도 있지만 제갈량은 참모로써 유비를 신뢰했다. 유비가 가끔 그와 다른 결정을 했을 때에도 제갈량은 유비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를 위해 계책을 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10만이 넘는 백성을 이끌고 형주에서 조조를 피해 달아날 때였다.
제갈량은 조조의 군대가 다다르자 유비에게 말했다.
"조조 대군이 벌써 번성에 도착하여 곧 강을 건널 태세입니다. 강릉은 요충지라서 충분히 조조의 군대를 막을 수 있으니 잠시 백성을 버리고 먼저 가시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자 이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저 사람들은 나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왔소. 무릇 큰일을 하는 사람의 기본이 사람인데 나 하나 살겠다고 지금까지 함께 온 사람들을 버리고 간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오."
"백성들과 함께 가시면 하루에 10리 밖에 가지 못합니다. 강릉에 다다르기 전에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런다 해도 난 이들을 버리고 갈 수 없소."
이 말에 모든 백성들이 감복을 하였다. 고도의 정치적 수사가 깔린 유비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말이지만, 제갈량의 입장에서는 목숨이 위태로운 시기에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답답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었다.
제갈량은 이런 백성들과 함께 가는 유비를 위해 유기에게 구원병을 요청하고, 강릉까지 백성들을 이끌고 가기 위한 계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결국 조조의 군대에 추격을 당하고 유비도 결국 백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또한 유비가 유언으로 유선을 부탁하며, 능력이 안되면 제갈량 보고 나라를 물려받아도 좋다는 유지를 남긴다. 하지만 제갈량은 유비에게 유선을 충실히 돕겠다고 말했으며, 이후 죽을 때까지 유선을 위해 헌신했다. 비록 유선이 왕으로서 심신도 미약하고, 정치적인 면에서도 부족했지만 그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기에 황제 유선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을 수 있었던 것이고, 충실한 참모로 남을 수 있었다.
이처럼 리더가 능력이 뛰어나고 안 뛰어나고 아니다. 또한 실수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도 아니다. 리더와 참모는 보통 이상의 관계이기에 가족보다 더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로버트 이튼은 '상대에 대한 신뢰는 상대가 자신을 신뢰하게 만든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모두에게 다 적용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그렇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항상 의심하고, 주의하며, 성급함을 갖다 보면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신뢰란 상호작용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신뢰를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리더가 참모에게 보내는 신뢰는 참모로서는 리더에게 충성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반대로 참모가 리더에게 보내는 신뢰는 리더에게도 신뢰를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참모는 리더의 신뢰를 얻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사로운 의견 다툼은 피하고, 리더가 맡긴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리더와 의견 다툼을 하다 보면 점점 둘 사이에는 거리가 생길 수 있으며 점차 리더의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가장 이상적인 참모로 주나라의 주공을 뽑았었다. 공자가 이처럼 주공을 참모의 귀감으로 삼은 이유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오로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공은 노나라의 봉지를 받은 상황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대신하여 자신의 아들 백금을 봉지로 보내고 주나라에서 조카 성왕을 보필하며 주나라가 안정적으로 권력 이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주공의 주변 사람들은 주공이 왕위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주공은 이렇게 말을 하였다.
“아무리 왕이 어리다 한들 이미 나라에 왕이 있으며, 왕을 잘 보필하지 않는다면 어찌 신하의 도리라 할 수 있겠는가? 나의 입무는 주나라가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도록 어린 왕을 도와 일을 하는 것뿐이니 그대들도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
또한 성왕이 병에 걸려서 위독하자 그는 자신의 손톱을 잘라 황하에 던지면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왕이 아직 어려서 제가 왕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허물이 있다면 당연히 제가 그 제양을 달게 받아야 마땅하오니 벌을 주시려거든 저에게 내려 주시옵서소.”
이렇듯 주공이 왕을 향한 충성과 신의는 대단하였다.
관중은 자신이 처음 따랐던 주군이 죽자 새로운 주군을 위해 일을 하였다. 관중은 조직, 즉 국가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전체적인 안목에서 보면 관중은 제나라를 위해 일한 참모인 것이다. 그는 리더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 즉, 제나라라는 국민들을 위해 일을 한 것이다.
참모는 자신의 조직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물론 자신이 믿고 따르는 리더와 함께 조직에 헌신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될 때에는 리더보다는 조직을 생각하여 움직일 수 있는 정무적인 판단도 필요한 것이다.
리더에게 충성과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는 참모 자신이 처신을 잘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 역할에 충실히 일을 하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항상 기억하며 겸손을 잃지 않는다면 리더도 참모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참모를 신뢰할 것이다. 신뢰란 바로 이렇게 출발하는 것이다.
김유신 또한 금관가야 왕족 출신의 후예로서 왕위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려부터 신라 귀족세력에 편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의 행동을 봤을 때, 그의 목표는 왕이 아닌 신라에서 인정받는 귀족세력이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왕에게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것이다.
저우언라이도 국민과 조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웠기에 마오쩌둥은 그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가 항상 겸손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며, 자신 앞에서 자만하지 않은 모습에 저우언라이를 신뢰하였고, 참모로써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참모는 항상 겸손해야 하며, 사적인 이익을 챙기려 하면 안 되고 항상 리더를 먼저 생각하고 리더를 위한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충성심과 신뢰가 있을 때 리더와 참모 간의 신뢰는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PS : 가장 신뢰하고 있던 직장상사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좋지 않은 소문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제일 먼저 하게 될까? 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그 상황을 대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