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리더인가? 참모인가?

by 미운오리새끼 민

재작년 대통령 탄핵과 그리고 대통령 보궐선거는 최순실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연 어떻게 장관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와대 참모도 아닌 일반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대통령에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변 참모들의 문제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때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충신은 없고 간신만 들끓었다는 얘기다.


지금 상황과 딱 맞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바로 안데르센의 동화 중 '벌거숭이 임금님'이란 우화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한번 다시 리뷰해 보자.

허영심 많고 나랏일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새로운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 앞에 두 명의 사기꾼들이 재단사로 속이고 임금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임금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임금님 저희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 옷은 착한 사람들에게만 보이고 게으르고 바보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입니다.”

임금은 미심쩍은 면이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를 승낙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옷이 완성되었으며, 정말로 옷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하들은 자신들이 게으르고 바보인 신하가 될까 봐 사실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임금도 자신의 눈에 옷은 보이지 않았으나 신하들이 옷이 보인다고 하는 상황에서 자신만 옷이 안 보인다고 하면 웃음거리가 될 거 같아 매우 훌륭한 옷이라고 칭찬을 하였다. 이후 거리 행진에 그 옷을 입고 나갔는데 거리에 나온 시민들도 이상하게 생각은 하였지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꼬마가 깔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래요!”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한 목소리로 말들을 했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한 꼬마 아이의 말이 아니었다면 세상 어느 누구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신하들도 백성들도 침묵을 하고 있었을까?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했을 경우 자신의 신분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왕이 두렵다 할지라도 진심 어린 말을 할 수 있는 신하가 있었다면 임금님이 벌거벗은 채로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시대 상황도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 과연 대통령을 위해 진심 어린 말을 한 사람들이 있었을까? 소위 친박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조차 대통령의 권위를 빌려서 권력을 휘두를 생각을 했지 대통령의 주변에 간신의 무리들이 들끓고 있을 때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이 과연 진실한 사람들일까? 대통령에게 있어서 진실한 사람들은 누굴까? 자신의 말에 콩이다 팥이다 말하지 않고 따르는 사람들을 말하는 걸까?


향후 차기 정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대통령만 잘 뽑으면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의 문제들을 짚어보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리더 중심의 사회인가 참모 중심의 사회인가?’

시중에 나와 있는 경영서적이나 정치서적을 살펴보더라도 리더십과 리더 중심의 책들은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참모와 관련된 서적은 극히 미미하다. 또한 각종 회사나 조직에서 하는 교육은 리더십 교육이 대부분이고 사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더라도 리더를 중심으로 흐르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정황들로만 본다면 우리 사회는 리더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맞는 거 같다.


스포츠 세계에서도 그런 경향은 나타난다. 감독의 역할에 따라 만년 하위 팀이 우승 후보로 올라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만들었던 히딩크 감독의 사례일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은 곧바로 다양한 책으로 출간이 되었으며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이끌었다.


히딩크 감독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각종 이슈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공한 사람이 화제가 될 때마다 리더십의 모델은 항상 변화되어 왔다. 그리고 그 핵심은 리더가 조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리더만 잘하면 나라건 회사건 조직이건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한나라 유방이 리더로서 큰 자질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항우처럼 용맹하고 뛰어난 장군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부리는 재주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대표적인 예가 한신이 유방에게 포로가 되어서 한 말이다. 고사성어로 유명한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는데, 유방이 한신에게 자신이 어느 정도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폐하는 10만 정도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유방은 이렇게 물었다.

“그럼 너는 얼마나 거느릴 수 있는가?”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유방이 재차 물었다.

“나는 10만을 거느릴 수 있고 너는 나보다도 더 많은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데 어찌하여 나의 포로가 되었는가?”

“폐하는 군사를 거느리는 재능은 부족하지만 장군을 거느리고 부리는 재능은 저보다 뛰어납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유방은 자신이 직접 전투를 지휘하는 능력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를 지휘하는 장군들을 지휘하고 거느리는 능력은 뛰어났었다.


하지만 이런 유방도 사람을 잘 부릴 줄 아는 능력만 갖고 혼자 한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초나라의 항우가 성공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도 항우 주변에 마지막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데 있다.


초반 그를 도와 대업을 이루려 했던 범증 마저 유방의 반간계(反間計)에 의해 항우를 떠나자 항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항우가 아무리 군사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한신, 장량, 소하, 진평, 조참, 번쾌 등 유방을 도와 함께 대업을 도모하려는 자들과의 싸움에서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결국 유방도 그를 도와주던 참모가 없었다면 한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항상 성공한 리더만을 부각한다. 그 뒤에 숨어 있던 조력자를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공한 리더에게는 반드시 훌륭한 조력자가 있다.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로 활약했던 핌 베어벡 코치나 박항서 코치 등이 없었다면 4강 신화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흔히 스포츠계에서는 누구누구 사단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바로 감독이 자신과 함께 일하는 코치진들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이렇듯 감독 밑에는 자신을 보좌하는 팀원이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스포츠 세계에서는 감독이 바뀌면 대체적으로 코치진까지 대대적인 자리 이동이 불가피하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어느 조직이건 리더 혼자 잘해서는 결코 큰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왜 리더 중심으로 모든 게 흐르는 걸까?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리더만큼 리더를 도우는 참모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리더 중심 사회에서 참모 중심의 사회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가 왔다고 본다.


모든 사람들이 리더만을 꿈꾸고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아니라 리더를 도우는 참모가 되고 싶어 하고, 참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리더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 회사의 CEO를 제외하고 그 밑에 있는 장관이나 회사 그룹의 계열사 사장들은 다 참모이지 리더라고 할 수는 없다. 아니면 참모이자 리더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몇 년 전 한 공무원의 ‘우린 영혼이 없는 공무원’ 이란 발언이 사회의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 말을 잘 곱씹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헌법이 정한 제7조 2항의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는 정신에 따라 소신껏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국가사업이 변경되고 대통령이나 장차관의 말 한마디에 지금껏 자신이 추진하던 일이 변경될 수밖에 없을 때 그 담당자의 심정은 어떨까? 물론 정책 변경에 대해 어떤 항변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료사회에서 항변은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건 중앙공무원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가 되면서 지방공무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예전에 시민사회 활동을 하다가 지방의 별정직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기신 분이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자신이 나름 생각하고 들어간 일을 시행하려고 하는데 공무원들이 잘 움직이지 않아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사를 따라주지 않는 것에 대해 힘들어하던 그분에게 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분들도 나름 배운 만큼 배운 분이고, 관료사회에 있으면서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전문가 분들입니다. 본인 생각만으로 일을 하려 하지 마시고 일단 먼저 그분들의 의견을 듣고 그분들이 생각하는 방향에서 새로운 대안을 각자 제출하라고 해 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당신과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며, 함께 토론하며 문제를 풀어간다면 그 자리에 있는 동안 그분들과 함께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사업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이 있는 동안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분들이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일만 하더라도 큰일을 하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분 나름대로 자신을 선택한 분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고 조직의 팀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일을 추진하려고 한 것 같다. 이런 일들이 바로 리더 중심의 사회에서 나오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리더가 아닌데 항상 리더처럼 행동하고, 또 리더처럼 행동하라고 교육받고 있다. 그리고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하는 교육들 중 리더십 교육이 대부분이다. 조직의 부서, 팀에서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조직에서의 참모 역할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다. 실제로 우리는 리더보다는 참모로서의 업무 역할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임에도 교육과 행동은 정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한 번쯤 참모나 2인자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진진하게 고민해 보며, 참모의 중요성과 리더와 참모가 공존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조직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기가 온 것 같다.


PS :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에 있는가? 참모의 역할에 있는가? 또한 리더가 아님에도 리더처럼 행동하고 있는지, 리더와 참모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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