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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Mar 03. 2023

상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어요.

나의 캐나다인 매니저는 나를 그저 순종적이고, 겸손한 그리고 나약한 동양인이라 착각했던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경험을 하며 쌓아 왔는지를 간과했다. 내가 그동안 입을 다물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던 이유는 착해서도, 할 말을 할 줄 몰라서도 혹은 의견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가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하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에너지를 무한 소비해야 하나 싶었던 마음과 그래도 좋게 끝마무리를 하고 나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일 때문에 내 행복한 인생을 더이상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녀는 내게 정중히 협박을 했다.  


"내일 오전 8시 45분에 미팅 가능해요?"

웬일로 어제 상사가 내게 먼저 미팅이 가능한지 물었다. 원래 보통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본인이 원하는 시간대로 미팅을 잡았다 취소했다 했던 사람인지라 왜 갑자기 내 의견을 묻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몇 시간 뒤 갑자기 조직장, 즉 VP가 1:1 요청을 보낸 것을 확인했다. 분기마다 하는 매니저 평가에 관한 이야기라며 나뿐만 아니라 모든 팀원들이 초대되었다. 회사가 워낙 탑다운, 즉 수직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라 팀원들 모두 VP와 말 한마디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상사의 상사인 디렉터를 건너뛰고 VP가 직접 1:1을 하자고 한 것은 결국 일이 터졌구나를 알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모든 팀원들이 최하위의 성적을 매니저에게 준 모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퇴사하기로 한 덴마크인 동료의 HR 고발이 크게 작용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탓을 나에게 돌리고 싶었던 상사는 어제 아침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퇴사할 거, 물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써니가 팀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거슬려요. 그냥 조용히 나가줄래요?"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정확히 이야기해 달라고 하니 그녀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회사가, 일이 그리고 상사가 싫으면 그건 집에 가서 남편이나 친구들한테 말해요. 괜히 동료들한테 말해서 분위기 흐리지 말고요. 프로페셔녈하지 않잖아요? 자, 예를 들어볼게요. 제가 싱가포르에 살고 있잖아요? 근데 써니는 싱가포르를 좋아해요. 근데 제가 자꾸 싱가포르가 싫다고 하면 써니는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러니까 자꾸 분위기가 흐려지잖아요. 본인이 일이 싫어서 나간다고 한 거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하면 제가 어떻게 내부나 외부에 추천을 해줄 수 있겠어요? 앞으로 덴마크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만약 하는 업무와 회사에 대해 계속 부정적이게 말을 하고 다녔다면, 그리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쳤다면 그것은 당연히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문제가 본인에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한 채 나에게 덮어씌우려고 한다는 것이 괘씸했다. 이게 가스라이팅이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나의 퇴사가 마치 온전히 나의 선택인것처럼 표현하는 것에 화가 쳐밀어 올랐다.


첫 번째로 지난 1년간, 그녀가 매니저로 지내는 동안 팀의 총 6명이 팀을 옮기거나 퇴사를 했다. 이유는 전부 그녀의 매니징 스타일 때문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퇴사율 전환율이 말해준다. 그리고 지난 6개월 내가 근무하는 동안 2명이 퇴사를 했고, 둘 다 나의 상사의 마이크로매니징과 미스매니징으로 회사를 떠났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고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나간 사람들을 탓했었다.


그녀가 얼마나 유치하고 찌질하냐면, 내 이전 동료가 퇴사를 할 때 그녀는 새로 입사한 같은 포지션의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어차피 퇴사하니까 말 섞지 말아요. 부정적인 사람이라 영향받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새로운 멤버는 당연히 어이가 없었고, 이걸 모든 팀원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대체 어떤 매니저가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그뿐만 아니라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나를 대표해서, 1월에 퇴사한 동료가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나가는 게 옳았다고 표현했었다. 결국 또 본인의 의견을 팀원들의 의견처럼 대표해서 나에게도 똑같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조용히 퇴사를 하고 싶지 않아 졌고 나는 맞서 싸우기로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첫 번째로 나는 VP와의 면담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녀가 했던 잘못된 행동들과 언행 리스트를 적어나갔고, 동료들은 다 같이 탄원서를 썼다. 그녀가 그동안 했던 모든 악행들을 적어 내려갔다. 동료들이 가장 화가 난 부분은 첫 번째로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의 의견인 마냥, 내가 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 점에 대해 가장 화를 냈다. 아무도 그런 피드백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곳에 가장 오래 근무했고 나의 인터뷰에 참가했던 동료는 내가 마케팅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해오고 있다는 점에 대해 적어 내려갔다. 당연히 불합리하고 옳지 않다는 것을 서포팅해 주었다. 세 번째로 그동안 동료들 간의 이간질을 시킨 점이었다. 동료들은 상사가 또 퇴사자에게 뒤집어엎어 씌우려는 것에 대해 모두가 분노를 했고, 이미 고여버련 문제를 계속 이런 식으로 덮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일이 점차 커질 것 같았고, 받은 오퍼는 거절한 채 그냥 사실대로 모든 것을 폭로하고 마음 편히 퇴사를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어쨌든 나는 떠나면 되니까. 잃을 게 없으면 더 후련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오퍼를 준 상사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해 끼치고 싶지도 않고, 결국 일이 커지면 나를 멤버로 영입한 것을 후회하거나 피해가 갈 수 있으니 그냥 이대로 이 더러운 조직에서 나가겠다고.


그러자 내게 오퍼를 준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써니가 피해자인 거 나도 알고, 팀원들이 다 알아요. 그냥 사실을 밝혀요. 나도 서포팅할 테니까. 일이 얼마나 커지던 명백한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VP로 일이 넘어가고, CEO로 넘어가도 괜찮아요. 오퍼 취소하지 않을게요. 마케팅 매니저로 입사했는데 여태 마케팅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떠나잖아요. 아쉽고 안타까워서 그래요. 스스로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줘봐요. 나랑 일하다가도 이 회사가 아니면 그냥 그때 떠나요. 이 일을 사랑하지 않아도 돼요. 그 매니저처럼 말도 안되는 열정 강요하지 않을게요. 그냥 여태 하던 모습, 태도로만 해주면 돼요."


그렇게 일단 나는 오퍼를 받겠다고 승낙을 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팀원들과 나 모두 VP와 1:1 일정이 잡혀있는 날, 상사는 싱가포르에서 덴마크로 출장을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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