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Choi Mar 30. 2023

카페에서 덴마크 연예인을 만났다.

덴마크에서 배우는 수준 높은 시민 의식

친구가 얼마 전 코펜하겐의 한 힙한 카페에 파트타임을 구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제 그녀를 응원해 줄 겸 저녁 식사 전 눈도장을 찍으러 카페에 들어갔는데, 핫플답게 손님이 꽉 차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데 옆에 낯익은 얼굴에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뽐내는 가족이 있어서 흠칫하여 돌아보니 덴마크에서 유명한 셀럽 가족이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도 나오는 가족인데, 여자분이 모델이자 인플루언서이고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시는 분이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 한국, 해외 할 것 없이 연예인에 관심이 거의 없는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족이라 나름 너무나 신기했다. 무엇보다 매번 우연히 잡지, 인스타그램이나 티브이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덴마크에서는 특히 코펜하겐 시티에서 종종 지나가거나 뜨고 있는 카페나 맛집을 가면 가수나 배우 등등 흔하게 유명인들을 마주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덴마크 가수 크리스토퍼 가족들도 종종 마주칠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내가 아는 덴마크 유명인이 별로 없어서 사실 마주쳐도 못 알아봤겠지만 말이다.


카페 안에는 나보다 어린 10대-20대 친구들도 보였고, 나처럼 30대처럼 보이는 사람들 등 굉장히 다양했는데 손님 그 누구도 그 가족을 빤히 쳐다보지 않았고 수근 거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새로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똑같았다.


나중에 그 가족들이 떠나고 친구와 카페 사장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알고 있었다고 했다. 마침 그 카페 안에 친한 덴마크인 친구의 언니도 있었고 나중에 언니에게도 물어보니, 그 연예인 가족이 카페에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덴마크에서 정말 유명한 셀럽 가족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도 말했다. 나는 그 유명한 연예인 가족을 카페에서 마주친 사실보다도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와 배려에 놀랐던 것 같다.


모두가 내게 말하길,

“덴마크에서는 사적으로 연예인 혹은 유명인을 마주치면 모르는 척해주는 게 예의예요. 그들도 사람이고 그들만의 삶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들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해준 거예요. 사인회가 있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그때 아는 척을 하면서 팬이라고 말하는 게 덴마크 문화예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혹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유명인을 마주했을 때 본 주변 사람들의 태도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였다. 논현동에 있던 숨겨진 맛집에 갔었다. 시간이 좀 늦은 편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옆 테이블에 범상치 않은 비주얼의 여성분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식사를 하시다 점점 사람이 줄어들자마자 그제야 한숨 놓인 듯 모자를 벗으셨다. 나는 인지 못했는데 앞에 앉아 있던 동료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여배우 XX가 옆에 앉아 있어요. 대박.”


그래서 옆을 슬쩍 보니 정말 그 유명한 여배우였다. 뭐 그때도 역시나 나는 관심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당연히 신기하긴 했다. 유명한 여배우가 내 옆에 밥을 먹고 있는데 안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는데 우리 반대 테이블에 앉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여성 두 분이 그 연예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그냥 연예인을 봐서 신기하다는 게 아니라, 칭찬도 아니고 욕을 하고 있었다. 어디 성형을 한 게 맞네 아니네. 실물이 더 안 예쁘네 뭐네 등등 정말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말들이었고 크게 말해서 우리 테이블까지 들려왔었다. 나와 내 동료들이 더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질 만큼 듣기 거북했고 연예인으로 사는 게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결국 그 여배우는 식사를 아주 빠르게 하시고 아무렇지 않게 나가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처럼.


그뿐만이 아니라 부산 여행을 갔을 때도 한 개그우먼을 식당에서 마주쳤는데 다들 식사하는 그분께 다가가 사인과 사진을 모습을 봤었던 기억이 난다. 그분도 혼자 여행을 오신 것 같았는데 굉장히 불편해하시면서 그래도 친절히 아주머니들께 사인을 해주는 모습을 본 것이 기억이 난다.

 

그렇다 보니 내가 어제 덴마크에서 본 광경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명인을 마주쳐도 그들의 사적인 시간을 보낼 때는 아는 척하지 않고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유명인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놀랐다. 내가 어제 목격한 덴마크 사람들의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 개인을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모습은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된 것 같다.


그렇게 덴마크에 살면서 또 하나를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덴마크에서 겪는 계절성 우울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