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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Oct 04. 2023

유럽에도 시집살이가 있다.

외국인이랑 결혼해도 시댁이란 게 생기니까

한국의 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그리고 이제야 친구들로부터 밀린 답장을 받기 시작했다. 다들 시댁과 친정에 다녀오느라 바빴다며 몇 명의 친구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써니야, 난 네가 부러워. 넌 외국인이랑 결혼해서 시집살이가 없을 거 아니야. 추석도 없고, 설날도 없고.. 시댁에 안 가도 돼서 너무 부러워 진짜. 이번에도 너무 힘들었다 진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일단 추석도 없고 설날도 없는 건 맞는데, 유럽에도 명절이 있다. 이스터, 크리스마스, 미드써머, 새해가 되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 보니 나도 시댁에 갈 때가 있다. 그리고 유럽에도 시집살이가 존재한다. 


단지 한국과는 많이 형태가 다르다. 그리고 개인차가 몹시 크다고 해야 할까? 포괄적으로 유럽이라고 칭했지만 유럽은 사실 대륙이다. 각 국가마다 문화와 특성이 다르고, 또 집안 환경에 따라 달라져서 내가 감히 모두가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시집살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외국인이랑 결혼했어도 시집이 생기는 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가족 간 유대감이 깊은 경우


보통 유럽과 유럽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가족 단위로 넘어올 때는 다른 이야기다. 유대감과 가족애가 엄청나다. 가족중심문화를 가진 나라는 정말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 여기서 가족이라고 하는 건, 나와 나의 배우자가 아니라 시부모님부터 가까운 친척까지 포함이다. 가족끼리 너무 끈끈하다 보니 정말 자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게 시집살이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를 예를 들어보자면, 나의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사촌부터 육촌까지 무척 끈끈해서 가족 행사가 많은 편이라 그게 좀 버거울 때가 있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어떻게 가족들이 저렇게 많고, 다들 함께 모일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 피곤해지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유럽의 최장 연휴라고 보면 되는데 시댁에서 2주 동안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또 새해가 오면 가족들과 다 같이 스키장에 간다. 시부모님 생신 때는 비행기를 타고 덴마크에서 라트비아로 다녀와야 했다. 


물론 강압적인 건 아무도 없다. 그저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가족 간의 끈끈함과 유대감이 부러움과 동시에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른 가족들이 다 모이는데 우리만 가지 않으면 왠지 나 때문에 남편이 가족 모임에 불참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도 불편할 때가 있다.


나는 그래도 시댁 그리고 친척들과 다른 나라에 살고 있어서 조금 덜 한편이다.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독일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같은 나라, 지역 그리고 심지어 동네에 살고 있으면 정말 매일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행복이고 좋을 수도 있겠지만, 때때로 내가 남의 가족에 끼어든 기분이 든다고 한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매주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시집살이로 느껴진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본인만 빠지면 왠지 눈치가 보여서 그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남편이 절대 부모님이 살고 계신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없다고 몫을 박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가족과 유대감이 깊은 사람이 많다.


참고로 나는 이번 여름 일주일 여름휴가를 같이 가자는 시부모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또 거절했다. 남편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남은 여름만큼은 홀로 있고 싶었다. 왜냐면 여름 한 달을 이미 시댁에서 있었기 때문.



외국 시집살이의 장점


외국 시집살이의 장점도 있다. 바로 모두가 다 같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절에 음식을 만드는 것도 시부모님과 가족들이 모두 함께 동참하지, 여자라서 더하고 며느리라서 해야 하는 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평상시 시댁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해도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족임에도 '타인의 집'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렇다.


내가 오히려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면 불편해하시고 안 좋아하시는 걸 느꼈다. 왜냐면 본인의 살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 집에 오시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 본인의 공간이 아니라, 너의 살림살이라는 개념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끈끈하고 유대감이 깊으면서도 동시에 '너' 그리고 '나'의 공간을 명확하게 나눈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나의 경우, 라트비아 시부모님께서 나의 연락을 기대하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사실 그 정도로 가깝지도 않지만 연락 상대는 항상 본인의 아들인 남편이고 내가 옆에 있어도 굳이 바꿔달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게 처음엔 되게 정 없고 나를 싫어하나 싶었는데 적응하고 나니 오히려 편하다.



그래도 시댁은 시댁이더라


소제목과 같이, 시댁은 그래도 시댁이더라 이거다. 가족이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남의 가족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큰 명절은 추석이 끝났지만, 내게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2주 동안 라트비아에 간다. 시부모님 댁에서 양가 친척들과 함께 삼시 세끼를 먹으며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약간 피곤해진다. 그래도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가를 세뇌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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