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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Jan 23. 2021

남편은 정말 '남의 편'인 걸까?

문화가 다른 남자랑 살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들

라트비아에서 온 남편과 한국에서 온 나의 문화 차이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지만, 한 번 충돌하면 그 여파가 아주 크다. 국제결혼 이혼율이 그렇게 높다던데, 과연 이런 이유인 걸까 싶을 정도로 열띤 토론을 했다. 사실 대화 자체는 아주 건강하고 다른 의견과 문화를 가진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견을 넓혀준다. 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오늘의 대화 문제의 주인공이 문제였다. 지난 3개월 간 나와 남편을 너무 힘들게 했던 커플이 토론의 주제가 되자 나는 이성보다 감성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고, 왠지 그가 내 편이 아니라는 느낌에 서러워서 눈물이 주룩주룩 나기까지 했다.


(사건의 전말)

https://brunch.co.kr/@cmk5604/169

함께 살던 남편의 라트비아 친구 커플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이제 6일 후면 나가게 되었다. 하필 또 이사 가는 게 바로 앞 건물이라 마주칠 일이 있을까 괜히 홀로 씩씩 거리던 어제, 남편이 너무나 힘들어하는 모습에 친구 사이는 잃지 말라고 다독였고 결국 남자 둘은 이야기를 하러 밖에 나갔다. 한 시간이 넘도록 둘은 이야기를 했고 남편은 그동안 섭섭하고 힘들었던 것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마음이 가벼워 보였다. 그의 친구 또 한 사과를 했고 그만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남편이 돌아와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앞으로 내 친구 여자 친구랑 친구 할 수 있겠어?"


나는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내가 왜? 여보. 나는 당신이랑 친구의 우정이 앞으로도 쭉 가길 바라. 20년이 넘은 친구잖아. 근데 나는 저 친구의 여자 친구는 내 인생에 있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정말 너무 무례하고 내게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이야. 대신 둘은 그냥 편하게 만나, 가끔 술도 함께 하고. 잘 풀어서 다행이다"


 그러자 남편이 내게 그러면 다시 친구와 가까워지긴 어렵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대체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가 한 말은 이랬다.


"가장 친한 친구가 이 친구고, 모든 친구가 다 함께 아는 사이라 부부동반(커플 모임) 등 결혼식에 그럼 어떡하지? 당신 안 가면 나도 안 가.."


 갑자기 화가 났다. 당장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왜 그걸 미리 고민하는지. 그리고 왜 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지 울화통이 나서 그와 열띤 토론을 하다 괜스레 나 때문에 그가 다시 친구와 멀어질까 미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어찌해야 하는지 결혼 선배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도 그게 좋은 생각 같다고 했고 몇 명의 지인들에게 답변을 받았는데 그중 '띵'하고 한 대 맞은 것 같은 솔로몬의 답변을 얻었다.


"써니야. 걔네 아직 결혼 안 했다며..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친구 와이프도 아니고 고작 여자 친구인데
뭘 그렇게 까지 신경 써?
걔네 결혼하면 생각해.
앞으로 인연을 어떻게 할 건지"

 

나는 이 말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남편이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내게 화를 냈다. 그리고 라트비아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연애하는 건 결혼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내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반문했다.


"결혼해도 이혼하는 세상에 식장 들어가 봐야 알지.

어쨌든 우린 부부고 걔넨 아직은 아니잖아"


 그러자 남편이 내가 다른 사람을 낮춰 보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세상엔 다양한 커플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나는 결혼만이 커플의 종착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다양한 커플이 존재하고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단지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조금 줄이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그는 내게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종교, 교육 등 모든 것에서, 그 누구보다 존중을 잘하고 다른 문화권에 오픈마인드인 사람이 왜 결혼에선 꽉 막힌 거야? 혼인신고는 그냥 법적으로 보호받는 것뿐이라고. 결혼하지 않았다고 덜 진지한 만남이 아닌 건 아니야. 우리가 남의 관계를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되는 거야. 라트비아에서는 이렇게 사는 커플도 많고 이건 라트비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문화야. 한국과 아시아의 문화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야"


 나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싸잡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틀렸다거나 우리보다 덜 진지한 만남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한 말은 "그 여자가 와이프가 되면 더 고민해 볼게. 아직 여자 친구인데 평생 볼지 말지 왜 이런 고민을 지금 해야 해?" 이게 전부였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서로 싫어하는 감정이 줄어들 것이고, 다시 웃으며 볼 날이 있을 거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둘은 아주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한다는 것을. 그냥 너무 미워서 한 말이었다. 남편이 그냥 "그래! 그러자"라고 할 줄 알았다가 아니라서 괜히 서로 싸움이 난 것이다.


 남편은 내게 틀린 건 바로 고쳐야 한다며, 연설을 했고 나는 반문을 했다. 당신은 지금 그럼 아시아권의 문화가 틀렸다고 내게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내 생각, 내 느낌을 왜 내가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는지 그리고 나는 그녀(친구의 여자 친구)를 낮추어 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남편은 저런 표현 자체가, 나는 와이프이기에 위에 있고 그녀는 여자 친구이기에 아래에 있다는 전제가 깔렸다고 열변을 토했다.


나는 남편이 하고자 하는 말이 다 이해가 갔고, 같은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관계를 내가 감히 어떻게 더 얕고 깊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가 화가 났던 건, 남편이 내 편을 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매일 우리가 한 편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싸우면 안 된다고 하던 그가

“유럽에서는 안 그래"라는 말을 들먹이며 내가 왜 편협한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것이 미웠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나는 그의 문화를, 그의 사람들을 낮게 보거나 틀렸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오해가 또 오해를 불러일으켜 울면서 반박하던 나는 '최'씨 답게 고집을 피웠다.


"내 문화에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니까. 와이프랑은 다른 단계라고. 그리고 난 내 문화대로 따라야 한다고 한 적 없어. 더 옳고 그른 생각은 없는 거야. 대신 내 문화에선 이렇게 받아들이고, 그래서 당신 아니고 내 문화 사람들이랑 이렇게 대화할 거야. 됐어? 내 말 그래도 이해 못하면 당신한테는 이야기 안 할게.”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남편이 아주 정확한 지적을 해주었다는 것을. 세상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고, 모두가 나와 같지 않다. 누군가는 나의 말을 잘못 받아들이고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남의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는 것도 아주 나쁜 습관이라는 것 또 한. 그래서 나는 속으로는 그가 오히려 나의 감성적인 부분을 이성적으로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미운건 미웠다. 남편이 '남의 편'이라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이 말이 머릿속에 박혀선 서럽게 울어버렸다.


가끔 이렇게 찾아오는 문화 차이가, 사실 나를 성장시킨다. 세상은 정말 다르며 무의식 중에 내가 하는 말에 뼈와 가시가 그리고 전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 시켜준다. 결론은 내 남편은 남의 편이 아니라, 모든 사실들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게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실 화가 치밀어도 뒤늦게 늘 내가 스스로 깨닫게 해 준다는 것. 누군가는 이렇게 바라볼 수 있고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싫은 건 싫고, 미운 사람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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