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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Dec 18. 2020

라트비아 남편은 어제 20년 지기 우정을 잃었다.

소중한 관계를 망치는 가장 빠른 길

덴마크에서 이민을 오면서 내가 기대한 바가 있었다. 함께 사는 남편의 라트비아 친구들이었다. 그와 유년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 둘은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로 함께 활약했고 서로가 선의의 경쟁자였다. 그리고 심지어 은퇴도 같이 했으며 새로운 길을 함께 찾았다. 이제는 라트비아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아닌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멋진 커리어 길을 닦아 나가던 이 둘은, 심지어 덴마크에서 함께 살며 같은 회사를 다닐 정도로 끈끈한 관계였다.


그런 관계가 어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이유의 절반 이상은 나에게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을 써 내려간다.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 어제 A한테 회사에서 말했어.
지난 2년 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참았고 더 이상 이렇게 못 지내겠다고 말이야.

나 다음 주에 사직서 낼 거야 여보.
새로운 출발 하자.

전후 사정은 이렇다. 남편은 내가 덴마크에 돌아오기 2년 전 이미 우리가 살 집을 구해놨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선택했었기에 그는 넓은 이 집에서 홀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마침 그때 그의 절친 A가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나도 덴마크에서 일하며 살고 싶어

라트비아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을 받을 수 있는 덴마크에 오고 싶다는 그를 남편은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고 본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추천서를 넣고 그를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A가 덴마크에 왔을 때, 남편은 우리 집을 내어주었다.


*덴마크에 이민 또는 워홀을 올 때 가장 힘든 점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집 또는 방 구하기'와 '직업'이다. 이곳은 대부분의 이들이 최소 석사를 밟았고 상향 평준화된 사회이다. 남편도 개발자가 되기 전, 15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겹게 생계를 꾸려나갔고 덴마크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힘겹게 만들어 낸 결과가 현재이다.


즉, A는 한마디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오자마자 남편이 얻어놓은 위치 좋은 아파트에 살 수 있었고, 심지어 갓 졸업한 친구는 돈이 없어 2개월간 남편이 먹여주고 재워주었다고 한다. 남편과 관계가 좋은 CTO를 설득하여 그를 같은 회사에 취업시켰다. 그리고 3개월 뒤, A의 여자 친구도 덴마크에 함께 살고 싶다며 이곳에 따라왔다. 그리고 남편은 내가 오기 전 2년이나 이 둘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소중하고 아끼는 친구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남편의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살면 서로 외로운 이 타지 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여 덴마크에 이민을 왔다. 아직 한 참 젊고 어린 20대 중후반의 부부이기에, 둘보다는 넷이서 사는 게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없던 지난 2년, 함께 살던 친구의 여자 친구가 남편까지 잘 챙겨주었으리라 하는 생각에 고마웠다. 그래서 종종 그녀에게 여태 잘 보살펴주어 고맙다는 연락도 했었다.


내가 덴마크에 돌아왔을 때, 여자 친구는 석사과정으로 다른 도시에 잠시 거주하며 주말마다 집에 온다고 했다. 그래서 어차피 퇴사하고 결혼 준비를 하며 별로 할 것 없는 내가 돼 갚다는 생각으로 두 남자를 알뜰히 살폈다. 그리고 그녀가 주말에 돌아왔을 때 두 팔 벌려 안아주며 고마웠다고 인사를 전하고 함께 살게 되어 기쁘다고 말까지 하였다. 근데 그녀의 태도와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를 어색해했고, 처음에는 그냥 성격상 그녀가 내성적이라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가끔 그녀가 조금 이상해서 짜증 날 때가 많다고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친해지기 위해 애쓰려고 했다. 어차피 나도 이곳에 와서 친구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가 내 두 눈과 두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주방으로 가 짜증이 났다는 소리를 내며 모든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남편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또 저러네.. 여보 미안

이해가 안 가진 않았다. 그동안 홀로 집안을 책임지며 본인이 꾸려놓은 것들을 내가 마음대로 쓰는 게 싫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워낙 두 남자가 여자 마음에 쏙 들게 집안일을 잘하지도 않기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그녀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네가 데코 해놓은 주방 너무 예쁘더라! 덕분에 잘 쓰고 있어.

그리고 그녀에게 언제 시간이 되냐며 두 남자 빼고 함께 차라고 한 잔 마시거나, 식사라도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춤하더니 알겠다고 하였다. 유럽 밖에 가 본 적이 없는 그녀는 당연히 한국 사람을 만나 본적도, 한국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했을 것 같아서 그녀에게 한식을 대접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전혀 말을 하지 않기에 정말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생각했지만, 내가 외향적인 성격이니 내가 노력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근데 밥을 먹는 내 내도 안절부절못하며 남자들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데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내게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둘 다 알아서 먹고 온댔어.

남자 둘만의 시간도 좀 보내게 해주자"


그렇게 정말 밥만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많이 하며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하였지만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고 그냥 조금 더 천천히 알아가야겠구나 싶어서 속도를 낮췄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 올 때마다 하루에 몇 번씩 집안일을 하며 홀로 씩씩거리고 나와 남편의 물건도 본인이 원하는 위치에 놓는 모습을 보며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내게 말하면 될 텐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 싶어 내가 내 집에서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달이 지났을까? 그녀가 다시 아예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집안의 모든 것들을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나와 남편보다 더 큰 방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와 남자 친구는 거실을 늘 독차지하고 있었다. 함께 쓸 수 없을 만큼 남자 친구는 게임을 하며 소리를 질렀고, 오전에는 그녀가 소파에 다리를 쭉 뻗고 본인의 물건으로 도배를 했기에 굳이 치워달라고 하여 옆에 앉을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남편의 친구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거실 식탁에서

게임을 시작하는데 매번 소리를 질러 우리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고, 남편은 몇 번이고 그에게 주의를 줬다.


내가 남편의 친구 A에게 불만이 생겼던 것은 사실 소음이 아니었다.(그의 여자 친구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 함께 저녁을 먹고 본인 그릇 또한 스스로 치우지 않는 모습을 보며 결국 내가 치우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나는 돌려 돌려 두 남자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들 식기세척기에 즉각 넣어주면 좋겠어

남편은 눈치를 채고 본인이 더 잘하겠다며 그를 커버했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나서 지금 뭐 하는 거냐며  그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쟤 여자 친구가 다 해서 버릇이 나빠.

내면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직접 한 마디 하려고 하자 남편이 본인이 잘 말하겠다며 나를 말렸다. 그리고 그 싸움이 우리 개인의 문제로 번지기 시작했다.


나 여기 너네 식모로 온 거 아니야.
이런 취급받으려고 퇴사하고 온 거 아니고.
내가 내 남편도 아니고 왜 남편 친구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데? 내가 집안일이 싫다고 했어?

나는 주부가 되기 싫다기보다, 결혼을 하고 비자를 기다리면서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이 초라보였고 이미 예민한 상태였기에 더욱더 자존심이 상했었던 모양이다.


남편은 단 한 번도 나를 무시하거나 낮게 보거나 또 나에게 모든 집안일을 맡긴 적이 없다. 물론 일을 하고 돌아오면 그를 위해 저녁밥상을 차리는 것은 당연히 나의 몫이지만,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오직 문제는 A의 비매너 행동이었다. 그래서 이미 마음이 상해있었는데도 불구하고 A의 여자 친구가 돌아오며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침에 눈 마주치면 인사하고 차갑게 돌아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방에 틀여 박혀 있거나 거실을 독차지하며 내가 묻는 질문에 간간히 대답할 정도였다. 그리고 채식주의자인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기에 나는 육식을 사랑하고 남편 또한 나와 같기에 점점 넷이 밥 먹는 게 불편하여 우리는 따로 먹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더 대화할 기회가 사라졌고, 그녀는 오직 그녀의 남자 친구가 집에 와야만 말문이 트였다.


내가 불편할 수 있는 건 이해가 가지만, 넷이 있으면 마치 내가 끼면 안 될 곳에 온 것처럼 나를 대했다. 셋은 같은 국적의 라트비아 사람이라 더 끈끈함이 있을 수도 있고 그냥 문화적으로 대화를 좀 퉁명스럽게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을 했지만 함께 있을수록 나만 외로워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번은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 아시아에서 눈 본 적 있니?


한국도 아니고 아시아에서 눈을 본 적이 있냐 묻길래 순간 당황했고,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생각하며 한국에 있는 한 지방은 러시아보다 춥다고 설명해주었지만 속으로는 고등교육받은 애 맞아?라는 생각도 했다.


그냥 성향이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자꾸 본인만의 집인 마냥 행동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고 나는 밖에 나가 다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와의 마찰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녀가 나의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30분 안에 손님이 오고, 곧 인터뷰가 있는데 아침 먹을 거면 지금 먹어줄래?

당황스러웠다. 그날 나도 헤드헌터와의 인터뷰가 있었지만 방에서 해결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내가 내 집에서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화가 나서 성격상 폭발할 뻔하였지만, 남편과 친구의 관계를 생각하여 참았다. 그리고 어차피 나가려고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이 상황을 말하자 남편이 되러 폭발을 하였다. 더 이상은 못 참아주겠다며 아무래도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그때 내가 그냥 그러자고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를 말렸다. (거의 둘 다 호구다) 알고 보니 남편도 지난 2년 간 그녀와 함께 살며 거의 반 강제 채식주의자로 살았고, 많은 순간순간 화남이 있었지만 성격상 그냥 빨리 잊어버렸다고 했다. 나는 이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남편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기에 이 지경까지 왔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자꾸 마찰이 생기며 안될 것 같아, 남편이 12월 초, 남편의 친구 A에게 3개월을 줄 테니 나가 달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어색해졌고, 여전히 집안은 그들의 세상이었다. 내가 물건을 놓으면 그녀가 원하는 위치에 바뀌어져 있고 하루는 남편과 나를 불러놓고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냉장고 두 칸은 너네, 나머지는 우리 칸이야.

감히 명령을 해? 의견을 묻지도 않고 양심에 털도 없는 양아치 같은 저 말에 또 화를 내지 못한 건, 나의 화로 모든 이의 관계를 망칠 것 같아서 또 참았지만 남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예전 회사 CTO를 따라 이직을 하면서, 굳이 A까지 함께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는 남편 덕에 함께 스톡옵션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회사를 옮기면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차질이 생겼고, A의 상사는 남편은 회사에서도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오면 주야장천 게임만 하는 그를 보며 남편은 깨달았다고 했다. 감사한 줄도 모르는 기생충 같은 것들이라고. 지난 2년 간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는데, 자기 복을 스스로 차 버리는 것들이라며 특히 A의 여자 친구는 지난 2년이란 기간 동안 어떠한 경제활동 없이 빌붙어 살면서 주제넘은 행동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A의 여자 친구는 아르바이트도, 그냥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자기는 고학력자라 왜 그런 서비스직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한테도 그리 말하였고, 남자 친구 덕에 덴마크에서 무료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남편이 친구 사이는 잃지 않기를 바라며 좋게 이야기하자고 하였으나, 최근 그 둘로 인해 우리가 크게 말다툼을 하였는데 그 둘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래서 남편은 약속이 3개월이었는데 더 이상은 같이 못살겠다며,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했고 나머지 두 달은 에어비앤비를 우리가 해줄 테니 그냥 빨리 나가 달라고 했다. 그러자 A는 남편에게 사과를 했고 본인도 본인 여자 친구의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어 얼마나 불편했을지 알았지만 아무런 태도를 취하지 않아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은 그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며 다음 주에 퇴사하고 다른 곳에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프로페셔널한 도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이 둘에게 사실 미안한 점은 있었다. 싫으면 감정을 못 숨기는 나는 어느 순간 똥 씹은 표정을 하며 그들을 바라보았고, 나 때문에 불편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보다 참을성 없는 내가 너무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남편이 그걸 보고 그를 끊어냈다는 것을 알기에 절반은 나의 탓이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밤새 속으로 울었다. 그냥 뭐 같아도 2개월 참을 걸. 어차피 나갈 텐데. 스스로가 엉망인 것 같아 괜스레 우울하고 힘들었다.


유난히 힘들고 추운 이 겨울에, 우리 둘은 더 절실히 느꼈다. 가까울수록 거리를 두어야 하며 누군가 선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죄라고.


관계를 망치는 길이었던 네 명의 동거 생활.

이번 달 말까지 나가겠다고 말한 그들이 나가면 우리는 어쩌면 영영 보지 않는 사이가 된다. 내가 미안하고 속상한 건, 남편과 A의 오랜 우정에 금이 갔다는 것뿐. A의 여자 친구는 여전히 끝까지 머리털 하나라도 뽑고 내보내고 싶은 심정이다.(글이 길어져서 못 쓴 게 너무 많은데, 정말.. 징글징글 한 X.. 다신 마주치지 말자)


그리고 능력자 남편, 당신이 퇴사 후 프리랜서를 하던 다른 회사 CTO로 가건 나는 당신을 믿고 응원해. 나도 빨리 자리 잡을게, 다신 이런 개똥 같은 상황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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