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있다. 나는 두명의 친구와 함께 셋이서 어울리고 있다. 이들과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다. 우리의 공통점은 결혼을 일찍 했다는 것이다.
친구 한놈은 26살에 결혼해서 35살이 된 지금 벌써 아이가 둘이다. 다른 한놈과 나는 30살에 2주일 간격으로 결혼했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유부남들끼리 어울리게 되었다.
각자 가정을 챙기느라 저녁에 모여서 술을 마시기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이렇게 멀어지기는 싫고 우리는 나름대로 아재들의 주말 유흥을 고안해냈다.
1. 몸을 쓰는 행위를 할 것
2.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3. 반나절을 넘기지 않을 것
건전한 주말 유흥을 즐기기 시작했다. 주말 중 하루 시간을 낸다. 새벽 일찍 모인다. 육체 활동을 한다. 반주를 곁들인 점심을 먹는다. 집으로 돌아가 가정에 충실한다. 끝.
단순하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나름의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고 우정에도, 가정에도 충실하고 있다.
단풍이 무르익어가던 가을, 백양산으로 등산을 가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새벽 6시에 등산을 시작했다. 백양산이 그렇게 빡센 산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군인 정신으로 백양산 정상을 최단루트로 찍었다. 내려와서 어린이 대공원 수원지를 크게 한바퀴 돌았다. 딱 점심시간이 되어 국밥에 맥주한잔 딱 깔끔하게 먹고 각자 집으로 귀가.
바람이 많이 불던 초겨울 추운 날, 낙동강에 자전거를 타러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낙동강 근처 자전거 대여소에 모여서 새벽부터 자전거를 빌렸다. 찬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탔다. 중간에 노점에서 비싼 컵라면을 사먹었는데 태어나서 제일 맛있었다. 바보같이 장갑을 챙겨오지 않아, 동상 걸리기 직전에 뜨끈한 라면으로 손을 녹이는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자전거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먹는 메기매운탕과 막걸리는 꿀맛이다.
세상을 녹여버릴 듯한 기세로 햇빛이 내려쬐던 7월 말, 극한체험 느낌으로 낙동강을 걷자는 의견이 나왔다. 덕천역에서 모인 우리는 목적지인 호포역을 향해 걸었다. 진심으로 죽을 뻔했다. 낙동강은 야생이었다. 일전에 걸었던 수영강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없었다. 높은 고층 건물이 그늘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나무 데크 길 따위는 없고 길은 울퉁불퉁했다. "이대로 10분만 더 걷다가는 목격자도 없이 객사하겠다" 싶던 순간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래도 하늘은 예뻤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논다. 마누라들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고 조금 지나서 남편이 들어오니 아내 입장에서도 잔소리 할 건덕지가 없다.
금요일 밤, 퇴근하고 번화가에 모여 회사 욕을 해대며 기름진 음식과 술을 먹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그러면 주말 내내 건강하지 못한 피곤함과 소화불량에 시달릴거다. 나이가 막 많진 않지만 마냥 젊다고 하긴 또 애매한 나이라. 아침에 만나 또렷한 정신 상태로 같이 땀을 흘리니 대화도 즐겁다. 그야말로 장점만 있는 유흥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두달에 한번 정도는 아침 일찍 모여서 걷는다. 최근에는 갈맷길 8-1 코스를 걷고 국밥에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놀고 집에 와서 시원하게 낮잠을 자면 평일의 피로가 싹 풀린다.
왜 아저씨들이 등산을 가고 낚시를 즐기는지 어렴풋이 알게 될 것 같다. 3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사실 아재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나이다. 나보다 두 세살 많은 형들도 인스타에 보면 #OOTD, #오운완 등을 쓰고 힙한 카페와 술집들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옷도 아주 멋지게 입고 다닌다. 우리는 셋 다 인스타를 하지 않는다(나는 본업 때문에 눈팅만 한다).
아저씨와 청년을 나누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결혼인걸까? 아재든 아니든 주말을 보내며 충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이렇게 우리는 아재들의 주말 유흥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