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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Sep 18. 2023

아이를 낳고 장식품이 된 PS5

 나는 독립하면 갖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 자전거와 TV에 연결해서 즐기는 게임기. 즉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 아무래도 어린시절 집이 좁다보니 자전거를 보관할만한 곳이 없었고, 거실 TV는 부모님의 것이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독립을 하고 결혼을 했다. 첫 번째 로망이었던 자전거는 독립을 하자마자 싸구려 자전거를 구매해서 잠깐 즐겼으나 금방 싫증을 느껴 방치하고 있다. 나는 달리거나 걷는게 더 좋더라.


 플스에 대한 욕구는 계속해서 커져가고 있었으나, 신혼 초에 바로 게임기를 사자는 얘기를 꺼내긴 힘들어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새로운 세대의 PS가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다가 PS5가 출시되었다.


 아내가 원하는 생일 선물을 물어봤을 때, 과감하게 PS5를 질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임기 성능도 성능이지만 같이 출시된 "듀얼센스"라는 게임 패드의 성능이 그야말로 엄청나다고 했다. 활 시위를 당기고 쏘는 느낌, 벽을 타고 오르는 느낌 등을 디테일하게 구현했다 하더라.


 자전거와 달리 PS5는 꽤 오랜시간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아내가 깨어 있을 때는 TV를 같이 쓰니 거의 하지 않았지만, 주말에 아내가 늦잠을 잘 때 새벽에 커피를 마시며 즐기는 게임은 정말 꿀맛같았다. 감동적인 게임 스토리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레드 데드 리뎀션2, 언차티드 시리즈,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고스트 오브 쓰시마, 스파이더맨 시리즈, 디아블로2 레저렉션, 매년 출시되는 피파 시리즈 등등.. 수 많은 게임과 함께 아재의 세월이 흘러갔다. 싫증을 잘 내는 탓에 모든 게임의 엔딩을 보지는 못했으나, 새로운 게임을 지르고, 설치하고 실행할때마다 "와 현대기술의 발달은 위대하구나"라는 말을 외쳤다.


 하지만 5월에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의 PS5는 하루하루 방치되고 있다. 다른 집에서는 아이가 있든 없든 게임도 하고 TV도 켜둔다고 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웬지 그러기 싫었다.


 아이가 깨어있을 때는 TV를 아예 켜지 않고, 저녁에 아이가 자면 같이 잠깐 TV를 보고 만다. 그러니 게임은 꿈도 꾸기 힘들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잠깐 하려고 해도 아이가 언제 깰지 모르니 그냥 안켜는게 낫다. 감질맛나게 조금 하고 끄는건 아예 안하는것보다 더 싫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갓난쟁이가 뭘 알겠냐만은, 생애 초기 뇌에 각인된 부모의 모습이 게임패드를 붙잡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는 최대한 책을 붙잡고 있으려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웬만하면 남는 에너지를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고 싶다. 뭐 거창한건 아니고, 게임할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아이를 보고 웃어주고 안아주고 하고 싶다는 말이다. 찐으로 게임에 진심이면 잠을 줄여서라도 하긴 할텐데 그러기는 싫다. 에너지를 아껴 가정에 집중하고 싶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30대 중반의 완연한 어른이면서도 사실 그 말에 대해서 딱히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그 좋아하던 게임을 반 강제로 접게 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는 것 같다.


 내 오락기야, 조금만 더 쉬어라.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와이프랑 같이 친정에 보내놓고 그때 실컷 즐겨줄테니 말이다. 치킨 맥주와 함께!

방치되고 있는 나의 오락기. 쓸데없이 예뻐서 더 짜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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