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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Jan 22. 2024

8년차 사무직의 숙소 노가다 경험기 - 1

평생 잊지 못할, 내 생애 가장 추웠던 겨울

나는 마케터로 재직하다 기존 회사가 거의 망하고, 소위 말하는 블랙기업 두 세군데를 겪고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프리랜서는 녹록치 않았다. 부산지역의 한계였을까 내 능력의 한계였을까. 모든 프리랜서, 긱 커뮤니티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올려두었지만 매칭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백수였다.


운 좋게 직전 회사가 일감을 주었지만, 3개월차에 업무는 두배로, 급여는 1/2로 하자는 제안을 도저히 수락할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


진절머리가 났다. 나라는 놈을 극한까지 밀어붙여보고싶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노가다였다.


칸막이라는 공종이 있다.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고 유일하게 주급으로 급여 수령이 가능해 온갖 전과자와 막장인생이 몰려든다는 곳. 노가다 커뮤니티에서는 자조적으로 "칸마귀"라고 불리는 곳.


건물에 꼭 필요한 벽체와 천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첫 현장은 김해였다. 케링, 엠바, 스터드 등 낯선 자재를 나르고 보기만 해도 무서웠던 고속 절단기로 자재를 잘랐다.

천장에 구멍을 뚫고 망치로 앙카를 박을때는 눈에 시멘트 가루가 들어가서 따가웠다.

사수는 수시로 자재 이름을 물어보았고,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욕도 먹었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질문에 대해 답을 못해서 "이 새끼, 진짜 정신 못차리네 이거"라는 말을 들었을때는 많이 억울했다.


8년간 사무직만 하던 나에게 4장의 석고보드는 너무 무거웠다. 4.2m 짜리 쇳덩어리인 커튼박스는 지옥과도 같았다. 들고 옮기다가 손아귀 힘이 빠져 계단에서 떨어뜨릴뻔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해 으아악! 소리를 질렀다. 


천식이 있어 내 또래 보통 사람 대비 호흡량이 70% 수준인 내 폐와 기관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불멸과도 같았다. 선임들은 그저 요령이 생기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3일 내내 손이 부어 주먹을 쥐지 못했다.


3일간의 김해 현장은 오야지와 건축주의 갈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끝나버렸다.


데마가 나서 일주일간 쉬었다. 언제 다음 현장이 잡힐지 몰라 뭔가를 편하게 할수도 없는 일주일이었다.


다음 현장은 대구였다. 정말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는 숙소 노가다가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막 200일 정도 되었을 무렵. 육아가 가장 힘든 시절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짐을 챙겨 대구로 떠났다.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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