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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훈 Dec 05. 2022

외래어 범람으로 인한 예상 가능한 소통 갈등

아쿠아포닉스? 물고기 수경재배?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사업 설명회에 참석했다. 각 시군에서 2~3명씩 뽑혔으니 못해도 60여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각자 선정된 사업을 설명받고 질의응답을 받는데, 60대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나지막이 물어봤다.

“왜…그… 물고기 똥으로 키우는… 그거는 지원사업 안 합니까?”

관계자는 중년 남성에게 정성스레 귀 기울였지만, 결국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말했다.

“아쿠아포닉스 말하는 것 같은데요?”

5분 여가 지나서야 둘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아쿠아포닉스(Aquaponics)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물고기 양식(Aquaculture)과 수경재배(Hydroponics)의 영단어를 합친 합성어다. 말 그대로 수경재배를 하면서 물고기 양식까지 겸하는 기술이다. 인산과 질소가 풍부한 물고기 배설물이 녹아 있는 물로 농작물을 키우고, 그동안 정화된 물이 다시 물고기 수조로 흘러 들어간다. 물 사용량을 90% 가까이 줄일 수 있고 매우 경제적으로, 현재 매우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다.


 사실 아쿠아포닉스라는 단어는 젊은 층에게는 그리 생소한 단어는 아니다. 아마 우리는 영어가 필수인 교과과정을 겪어왔기에 그럴 수 있다. 반면 우리의 부모세대, 나아가 더 고령인 세대들은 영어가 낯설다. 이처럼 말의 소통 불화는 개인 간의 갈등을 넘어 결국 사회 분열의 일으킬 것이다. 그 분열은 사회에 많은 비용을 강제한다. 그 예를 이제는 사라져 버린 라틴어에서 볼 수 있다.


 고대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는 로망스어(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등의 뿌리 격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라틴어도 어쩌면 사멸(死滅)한 언어가 되었을 수 있다. 사실 라틴어는 교회나 지식인이 사용하는 고전 라틴어,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통속(또는 민중) 라틴어로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고전 라틴어는 사용하기 어려워 일반 대중들에게 외면받았고, 결국 통속 라틴어가 후대에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 한들 라틴어와 아쿠아포닉스가 무슨 상관일까? 말이 어려우면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는 뜻이다. 이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추가로 설명해야 하는 노력이 뒤따르고, 정보 불균형을 야기한다. 결국 말이 어려우면 불필요한 비용과 갈등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앞으로 생겨날 말들을 계속 사용할 만한 말로 바꿀 수 있을까? 사실 한번 사용한 말은 다른 말로 바꾸기 어렵다. 이미 입에 배였기에 자신이 잘못된 단어를 사용한다는 자각이 없는 한은 굳이 바꿔 말할 당위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초 단어를 들여올 때 처음부터 불리기 원하는 단어로 사용되는 것이 좋다.


 가령 아쿠아포닉스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관공서에서는 이를 ‘물고기 수경재배’라고 사용하는 것이다. 연구를 업으로 삼는 전문가들이 아닌 이상, 아쿠아포닉스든 물고기 수경재배든 말하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초반부터 여러 사람에게 불릴 만한 이름을 만들어 사용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해도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말을 하는 주체는 우리 개인들이고, 개인들이 의식적으로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국가의 어떤 노력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모든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지금, 영어 단어를 굳이 한글로 바꾸는 것이 세계화 흐름에 맞느냐는 반발도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영어를 한글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기 어려운 말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미 사어가 된 고전 라틴어처럼 ‘물고기 수경재배’라는 말은 ‘아쿠아포닉스’에 밀려 사라질지 모른다. 해당 단어가 사라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 손해는 아쿠아포닉스를 몰라 설명하는 데 사용해버린 5분이고, 그들을 바라보며 사라진 60여 명의 5분이다. 나아가 아쿠아포닉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소진할 5분이 될 것이다. 이런 사례가 ‘아쿠아포닉스’에서 끝이 날까? 셀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크고 작은 갈등과 비용을 강제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언어 순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세대 간의 언어 불화를 세대갈등의 일부로 치부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이 발전하고 배우는 것이 서로 다르다 보면 사용하는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에 균열을 야기하고 비용을 발생시킨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국가와 개인이 뜻을 합쳐 더 많은 단어가 순화되어 불려 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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