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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tructionist Jul 18. 2019

나의 7번째 이직스토리

아무튼 우리 사장님은 착한 꼰대

'나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들 당시 일하고 있던 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했다.


사실 이직을 알아보고 있을 당시에는

'이 ㅈ같은 곳에서 빨리 탈출해야해!'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였지만,

정작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자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들과 일하고 싶어'라는 욕구가 강해졌다.


나는 총 6군데의 회사를 다녔고, 지금의 회사가 7번째이다.

맨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시작했던 일이 돈이 잘 되지 않자 파견근로 형태로 MBC에 들어갔다.

파견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름 MBC에서 도장을 예쁘게 찍는 일과 남들이 도장 찍었던 걸 기록하는 일, 사무용품을 채워넣는 일, 간식을 주문하는 일 등을 했다.

정말 1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갑자기 인원감축을 한다며 1층과 5층을 왔다갔다 일하라고 했을 땐

파견직원 주제에 이건 아닌 것 같다며 부장에게 항의를 했고, 2년 계약이던 파견에서 짤려 1년 계약으로 종료됐다.

자기만의 성에서 군림하며 사시던 그분들은 아직까지 여전할까 싶지만,

덕분에 다음 직장의 '내정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엔 알지못함 ㅋㅋㅋㅋ)


그 다음 직장은 대학병원 중 한 센터의 행정직이었다.

그곳에서 홍보도 하고, 행정일을 처리도 했지만, 사람이 부족한 탓에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어느날은 야외에서 상담을 하다가, 어느날은 예산을 짜다가, 어느날은 행사에 투입되기도 했다.

월요일에 출근했다가 수요일에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며 육체적으로 지치기도 하였지만

그곳의 팀장년 한명이 나를 찍어서 심심하면 내 뒷담화를 까거나 일부러 나를 콕 찍어서 퇴근을 안시키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었다. (괴롭힘법이 그때 있었어야됐는데)

나는 산뜻한 또라이였기때문에 팀장년에게 굴복하지 않고 '나는 일이 많아 퇴근하기 어려운데 먼저갈래?' 했을 때 '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와 같은 일을 여러번 시전하였다.

병원은, 아니 대학병원은 생각보다 훨씬 폐쇄적이라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룩한 무언가 안에 갇혀살고 있어서

'아냐, 니가 생각한 그거 아니야.'라고 말을 해주면 내가 이상한 사람 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아주아주 이상한 곳이었다.


결국 탈출을 결심했고, 이후 큰 회사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왜냐하면 크면 클수록 꼰대들이 많다는 확신이 들어 그들과 나는 좁혀질 수 없는 괴리가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그래서 작지만 교통편이 편하고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작은 디자인회사로 들어갔다.

그 사장은 정말 말이 존*게 많은 양반이었다.

문제는 말이 많을뿐 행동은 1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회사에는 내가 모르는 유령 사원과 유령 이사, 간부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월급이 꼬박꼬박 나갔지만,

내 월급은 30만원씩, 20만원씩, 10만원씩 들어왔다.

첫 3개월은 정상적으로 월급이 지급되었다가 점차 월급을 늦게주고, 반토막주고, 그 절반을 주고 하였다.

월급을 제대로 못받는 직원이 몇명이나 있는데 그와중에 사장놈은 차를 바꾸시고...^^

나는 너무 중소기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나 싶어 1년이 되자마자 그곳을 탈출했다.


이후 입사한 곳은 역시 작은 회사였지만 나름 외국계 회사였다.

호주와 한국을 왔다갔다하며 일을 하시는 사장님은 나에게 사장이라는 그 직함도 너무 오글거린다며 팀장이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아마 그게 마음에 들어 입사를 결정했던 것 같다.

이곳에서의 업무는 지금까지 했던 업무 전체를 차지하는 굉장히 종합적인 = 내가 사무실의 대부분 일을 다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급여와 회사의 처우, 인간관계 모두 만족스러웠기에 나는 가능하다면 이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는

ㅜ.ㅜ


그리고 향한 곳이 바로 나의 직전 회사이다.

회사가 망한것에 충격을 받고, 퇴사 이후 작은 수술까지 했어야 했던 나는 면접을 보러다닐때 한가지 기준이 생겼다.

'경영이 제대로 되고 있는 회사'

면접을 볼 때 회사가 망해서 이직을 한다는 것을 얘기를 했고, 같은 뉘앙스로 회사의 경영상태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

그 다음 기준은 늘 생각했던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극히 잘못생각한 거였다.

'경영이 제대로 되면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았어야 됐는데!!

걍 '경영멀쩡한 회사'만 찾다가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고, 몸까지 아파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아무튼 나의 직전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에도 많이있다.


그렇게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상태에서

어찌됐든간에 내가 실직을 하든말든 월세는 내야했고, 핸드폰요금도 보험료도 내야했기 때문에

정말 가장 열심히 이직할 곳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머피의 법칙 개같은 것 때문에 그 때 당시에(+지금도 마찬가지인듯) 일자리가 정말 너무 없었다.

너!!무!!! 구인공고도 없어서 이러다 알바해야되나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그래서 솔직히 요번 회사 알아볼 때 많이 기준을 낮춘것도 있음..ㅠㅠ 진짜 여러분 이직은 체계적으로 해야됩니다.


정말 다급하게 이직했지만 그래도 놓치지 않았던 회사 결정의 기준은 '경영멀쩡'과 '정상적인 사람' 두 가지였다.

요번 회사 면접에서도 나는 사장님에게 대놓고 이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며

내가 원하는 회사상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사장님은 충분히 그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사장님은 내가 입사한 이후에도 회사의 순이익과 손실을 공유해주며 매출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신다. (머 일을 시킬라고 그러는것같기도하지만)


어찌됐든 새롭게 일을 시작한 이곳에서는 예전처럼 나를 죽도록 괴롭히는 상사는 없지만,

사장님이 쫌 착한 꼰대이다.

착한꼰대는 착하고 좋은 분이지만 어쨌든 꼰대라는 뜻이다.

꼰대가 무조건 나쁜뜻은 아니지만 어째됐든 옛날분이라 어쩔수가 없는듯..^^


요새 일본불매운동 뉴스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꼰대도 어쩌면 과거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 아닌가 싶다.

꼰대의 특징 중 하나인 '내가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와 '내가 그러고싶어서 그러나' 등은 일본 특유의 수치를 감추려고 하는 특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단체생활 문화(학교,군대 등)를 일본에서 수입해와서 그 잘못된 관습이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 문제되는것처럼

어쩌면 그 꼰대들도 과거 일본에서 온 근본꼰대가 문제였던 건 아닐까?


아무튼 우리 사장님은 착한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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