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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tructionist Mar 24. 2019

01. Su

1. 거대한 블루칩의 등장

Su는 신인 작가답게 과감한 작품세계를 펼쳐 보였다.

그가 가장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주제는 바로 ‘죽음’이었다.


그의 첫 시리즈 ‘death is’ 제목처럼 그에게 죽음은 남들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듯했다.

Su가 표현하는 죽음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되었지만, 그 아름다움이 표현하는 주체가 바로 ‘죽음’이었기에 작품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가 본능적으로 전해졌다.


기본적으로 Su의 작품은 ‘죽음’을 소재로 삼고, 주로 해골이나 죽음을 상징하는 꽃, 낫 등을 도상으로 사용했다.

때문에 초창기 평단에서는 Su가 오랜 미술의 전통에 입각하여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을 가진 일종의 장르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Su의 작품세계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 생명을 가졌던 그 무엇이 자신의 생이 끝나는 그 순간에 대한 찬사,였다.



“Shit!!”


스테판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USA 투데이를 집어던지며 욕을 내질렀다.

주위 사람들이 전부 스테판을 흘겨봤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열이 받아서 USA 투데이를 발로 자근자근 밟으며 아는 욕을 죄다 지껄였다.


“망할 놈들! 이걸 말이라고 지껄여?”


스테판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신문을 짓밟으며 화를 내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현재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거물 신인 Su, 바로 그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자로 발부된 USA 투데이 상단에는

<시실리 보스의 정부 Su?>

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Su의 작품 사진과 시실리 보스 루이 하멜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이러했다.

Su는 보스 루이 하멜의 입양아다. 하멜은 Su를 남창으로 키워서 그의 정부 노릇을 하게 했지만, Su의 재능을 알아본 대부호 러셀 윈스턴이 Su를 키웠다. … 라는 3류 가십지에나 나올법한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스테판은 신문을 발로 자근자근 밟으면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자신과 같이 Article에서 일을 했었다가 USA 투데이로 직장을 옮긴 전 직장동료이자 애인인 엘소드의 번호를 누르곤 전화받는 소리가 나자마자 소리를 빽 질렀다.


“엘―! 이게 무슨 소리야? Su가 남창이라니?”

[허니, 진정해.]


스테판은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미술계에서 나름대로 정직한 비평과 소신 있는 의견 제시로 나름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Article 미술, 예술 전문 잡지의 기자였다.

스테판은 NYU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기자였다. 하지만 그는 공부를 참 잘했지만 사회생활은 젬병이었다.

순하게 생긴 주제에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좌우 앞뒤 전혀 가리지 않고 무조건 뚫고 나갔기 때문이다.


이런 스테판에게 최근 가장 좋아하고, 애정 하는 작가가 바로 ‘Su’였다.

그는 Su 특유의 타나토스적인 죽음의 미학에 푹 빠져버려 Su를 거의 신처럼 추앙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근데 그게, 진짜 신빙성이 있는 소리야.]

“뭐?!”

[진정하라니까.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어디야?]


엘은 마구잡이로 소리를 질러대는 스테판을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약속을 잡았다.

스테판은 씩씩대며 전화를 끊고 국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스테판, 어디야?]

“저 좀 늦을 것 같아요. 오늘 USA 투데이 보셨어요?"

[봤지. 그것 때문에 어디냐고 물어보는 거야.]

“안 그래도 엘 자식 좀 만나고 갈게요. 정보 좀 얻고 갈 테니까 기다려요!”

[알겠어.]


스테판은 열에 뻗쳐서 쿵쿵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랩탑을 꺼내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리고 곧장 떠오르는 Su의 온갖 루머에 인상을 찌푸렸다.

러셀의 정부네, 상원 의원의 아들이네, 등등 온갖 더러운 루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하멜의 정부’였다.


타닥타닥…

랩탑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갔다.


스테판은 이 허황된 루머의 출처를 찾기 위해서 온갖 곳을 다 들어갔다. 파파라치들의 트위터, 미술계 인사들의 페이스북, 일간지 기사 등등… 그렇게 온갖 곳을 다 들쑤시고 다니던 중, 의외의 것을 하나 발견했다.


응…?

딸깍…

어두운 화면에 두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한 사람은 명백하게 보스 루이 하멜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전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후드까지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풍당당한 풍채를 가진 하멜과는 달리 옆에 있는 청년? 아니, 소년…? 소녀? 은 상당히 왜소해 보였다.

진짜 분위기로는 뭔가 위험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듯했다.


“허니―”


덜컹

스테판 뒤로 엘이 다가와 스테판을 끌어안았다.

스테판은 자신을 끌어안은 엘을 귀찮다며 팔꿈치로 허리를 가격했지만 엘은 상관 않고 오히려 더 스테판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투닥거리다가 엘은 스테판 랩탑 화면을 바라봤다.


“어? 이거 Su네.”

“… 뭐?!!!”


벌떡― 덜컹…

스테판이 큰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됐다.

하지만 스테판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보다 5cm는 더 큰 엘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댔다.


“무슨 소리야 그게? 이게… 이게 Su라고?”

“쉬, 허니. 목소리를 낮춰.”


엘이 스테판의 입술에 엄지를 갖다 대고 문질렀다. 스테판은 머리끝까지 흥분한 상태에서 엘의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빨리 말해. 말 안 하면 일주일 동안 막스의 집에서 잘 거야.”

“뭐? 너무해!”

“말 안 해?!”


다시 목소리가 높아지며 엘의 멱살을 쥐고 흔들던 스테판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제 입술을 덮치던 엘 때문에 타의적으로 음소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개자식”

“워워, 스테판. 허니가 나한테 화낼 입장은 아닐 텐데?”


둘은 카페에서 쫓겨났다. 지나친 스킨십으로 다른 고객에게 불쾌감을 줬다는 이유였다.

사실 스테판은 쫓아내지 않았더라도 제 발로 그 카페를 뛰쳐나왔을 것 같다.

쪽팔려서.


“내가 밖에서 키스하지 말라고 했지?!”

“안 돼. 허니가 너무 귀여워서.”


엘은 씩씩거리는 스테판을 귀엽다는 듯 느끼하게 훑으며 스테판의 얼굴을 손으로 스윽, 감쌌다.

스테판은 엘의 손을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밀쳤다. 그리곤 길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런 느끼하고 발정 난 개자식을 애인으로 사귀다니!

내가 그때 너무 궁했지!


“됐어! 오늘부터 막스 집에서 잘 거야!”


스테판은 열이 받을 대로 받아서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엘이 한숨을 푹 내쉬고 가방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스테판 앞에 휘휘 내저었다.


“허니, 이게 뭐―게?”

“… 뭔데?”


엘은 스테판 앞에서 봉투를 왔다 갔다 움직이며 약 올렸다. 스테판은 궁금하지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서류봉투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엘은 꽉 껴안고 키스하고 싶을 만큼 귀여운 스테판의 모습에 눈을 번들거렸다.


“여기 뭐라고 써있을까?”


엘이 서류봉투를 여는 안쪽에 써져 있는 두 글자는…


“Su?!”


덥석

스테판이 서류 봉투를 잽싸게 낚아챘다. 하지만 엘도 봉투를 얌전히 넘겨주지 않았다. 엘은 스테판이 봉투를 잡자마자 스테판의 손목을 낚아채고 스산하게 말했다.


“허니, 공짜로?”

“…….”


스테판은 봉투를 힘껏 쥔 손이 스륵 풀리는 것 같았다. 이 자식은 대체 뭘 원하는 건지. 볼 때마다 참 단순하다고 생각하지만 또 계약이나 이익 관계에서는 참 명확하단 말이지.


사실 엘이 Article에서 USA 투데이로 갑자기 진로를 갑작스럽게 변경한 것도 바로 수입 구조 때문이었다.

돈도 되지 않는 미술 전문 잡지보다는 일간지가 짭짤할 것 같다는 판단에, 뭐 결과적으로 따지자면 엘은 전보다 돈을 훨씬 더 잘 벌게 됐지만, 그만큼 양심과 인권을 팔아넘긴 것 같아서 스테판은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뭘 원하는데.”

“알면서♥”


엘은 슬쩍 손을 내려 스테판의 엉덩이를 꽉 움켜잡았다. 그 순간, 스테판의 이마에 힘줄이 빠직 돋아 올랐지만, 애써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은 정보를 ‘얻어야’ 하는 입장이니까 말이지.


“오늘 밤?”

“Just?”

“… 알았어. 3일.”


스테판은 3일 내리 섹스를 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Su의 과거로 추정되는 결정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야!


“이번 주를 나에게 줘.”


엘이 서류 봉투를 쥐고 있는 스테판의 손을 끌어올려 손등에 키스했다.

스테판은 손등에 닿는 축축한 느낌에 기분 나빴지만, 엘이 한 말에 경악을 하고 있어서 그 따위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번 주?!! 말도 안 돼! 나 죽어!”

“왕처럼 모실게.”

“그래도 안 돼. 차라리 나눠. 이번 주랑 다음 주.”

“No! 허니가 그렇게 미뤄서 지킨 적 없잖아.”


엘은 인상까지 찌푸리며 진심으로 거부했다.

스테판은 자신이 엘과 한 약속을 그렇게 지친 적이 없었나 고심하다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엘에게 말했다.


“이번엔 진짜야. 약속할게, 응?”

“안 돼. 그럼 이 건은 없었던 걸로 해.”


엘이 스테판 손에 있던 봉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스테판은 다급하게 엘에게 물었다.


“이 정보 가치가 내 일주일을 몽땅 쏟아 붓을 정도야?”

“그보다 더할걸?”

“……5일.”


스테판이 애절하게 엘을 쳐다보며 애원했다.

하지만 엘은 이미 섭섭했는지, 별 대꾸 없이 아직도 스테판이 잡고 있던 봉투를 잡아당겼다.

스테판은 에라 모르겠다, 라는 생각으로 엘에게 소리쳤다.


“알았어.”

“…What?”

“해준다고.”


순간, 봉투를 잡아당기던 엘의 손에 힘이 쫙 풀리며 스테판 쪽으로 봉투가 넘어왔다.

엘은 베실 웃으며 정말? 정말? 을 반복해 물었다.

스테판은 하는 수 없지,라고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오늘 밤에 보자고 약속을 한 채 회사로 뛰어갔다.

회사로 달려가는 스테판의 뒤에서 엘의 커다란 목소리가 거리를 쩌렁쩌렁 울린다.


“7 days!!!”


젠장, 연차가 얼마나 남았지?



스테판은 회사를 향하는 길거리에서 다급하게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안에서 튀어나온 몇 장의 사진들과 입양증명서를 살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젠장, 이건 정말 대박이야!


꽤 오래된 입양증명서를 복사한 듯한 종이에는, 보스 루이 하멜이 아이를 입양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피입양자의 이름으로 ‘Lee Suha’이 삐뚤삐뚤하게 적혀있었다.

Su와 이름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 Su’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내용이 영어로 작성된 것도 아니어서 내용 파악도 불분명했다.

스테판은 입양증명서를 다시 서류봉투에 집어넣고,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사진은 스테판이 아까 인터넷으로 본 사진과 흡사했다. 하지만 엘이 준 이 사진들은 인터넷보다 훨씬 선명하고,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에는 나머지 엑스트라를 제외하면 두 명의 인물 사진이었는데, 한 명은 시실리 보스 루이 하멜,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소년이 있었다.

끽해야 14-15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시아 소년은 약간은 노란 피부와 까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이 Lee Suha인가? 아니, 지금은 Louis Suha?


사진은 밤에 찍혀서 그런지 약간의 노이즈가 있었지만, 지금 루이 하멜과 정체모를 그가 함께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는 되었다.


소년은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 멍한 눈빛으로 공중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그런 그를 하멜이 어깨를 잡고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시실리의 보스가 누군가를 챙긴다고?

이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던 스테판의 경악은, 마지막 장에 가서 악을 지르고야 말았다.


“Oh… my…!!”


마지막 장에 있는 사진에는 두 명이 아닌, 세 명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람의 이름은 대부호 러셀 윈스턴― 러셀과 하멜은 다정하게 악수를 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낀 아시아 소년은 여전히 멍하게 공중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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