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투어 가이드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대해 공유해 주신 모든 지식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생가(生家) 수색 과정에서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어려운 드라이브를 해주셔서 제 뿌리와 행복한 인연을 찾을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5일간의 생가 수색과 서울 명소를 탐방한 후, 미키(가명) 부부는 카드 한 장과 그들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 카드에는 영어 글씨와 함께 한글로 또박또박 쓴 번역문이 적혀 있었다.
< 미키의 카드 @ 손 훈 >
여행사에서 처음 부탁한 사항은 만만치가 않았다.
미키는 미국 입양아이고, 44년 만에 모국 방문이어서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는데,
♤ 코로나 고위험군으로 투어(tour) 중 KF95 마스크를 꼭 써 줄 것
♧ 식사는 식당 실내보다 옥외 테이블이나 take-out을 선호하니 협조해 줄 것
※ 위탁모(母)를 만나 대화할 때 절대 개인적인 의견을 넣지 말고, 있는 그대로 통역해 줄 것
◇ 민감한 여행이니만큼 고통스러운 과거사에 공감하고 그의 뿌리를 찾는 데 도움을 줄 것 등..
코로나 상황에도 야외에서 거의 마스크를 써 본 적이 없는나로선 식당 문제와 이 까다로운 조건을 어떻게해소해야할지 걱정이 몰려왔다.
햇볕이 점점 여물어가는 10월 어느 날, 성북동 언덕배기 게스트 하우스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다.
예상보다 미키는 포근한 인상이었고, 남편 그레이(가명)는 마음씨 좋은 화가를 연상시켰다. 그들은 첫날,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을 거닐면서 사진을 찍고 북촌 한옥마을에서 자개 만들기 체험도 하며, 나중엔 광장시장에서 멋들어진 한복을 맞추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을
진행하듯 자연스러웠다.
둘째 날, 민화 그리기 체험을 하고서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관람하는 걸 보니, 일반 관광객과는 달리 예술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있어 보였다. 다행히도 예술의 전당에 있는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샌드위치와 커피로 맛있게 먹었다.
셋째 날부터 미키의 생가 수색이 시작되었다. 표정이 좀 심각해 보여 잘 됐으면 좋겠고 너무 긴장하지 마라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들은동방사회복지회와 국제아동 인권센터 (NCRC), 그리고 경찰서를 이미 연락된 도우미와 방문하였다. 밤이 이슥해지자 나타난 이들에게 경과를 물어보니 별 소득이 없었다고 하였다. 미키 호적은 있는데 가족이 없어 외톨이였고, 형제가 6명이라는데 누구 하나 주소를 알지 못했다고 하였다. 경찰서에 DNA 검사와 실종 신고를 하고서친가 식구들 중 누군가가 실종신고 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이미 40년 넘은 시간이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는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어 마음이 안쓰러웠다.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에서 @ 손 훈>
4일째, 드디어 자신을 8개월 키워준 위탁모를 만나는 날이다. 사전에 교감이 있어서 가평으로 가자고 한다.키워준 어머니도 80대이고 얼마나 반가워해 줄지 별로 기대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가평 집에 도착하니 온 가족들이 모두 나와 환대해 주는 게 아닌가! 부모, 형제, 자매 모두 5명이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점심 식사를 푸짐히 차려놓고 옛날 얘기를 서로 풀어내었다.
"얘는 내가 제일 아끼고 기억나는 아기였어. 젖을 주면 기분이 좋은 지 내 턱을 만지곤 했지"
위탁 어머니는 암투병 중에도 그를 그리워했단다.
"어머니와 같이 가니 애기가 둘이었어. 얘가 예뻐서 내가 엄마보고 우리가 키우자고 졸랐지"
오빠가 그때를 회상하며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가족들이 모두 가평에 모여서 미키를 중심으로 정(情)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위탁모 가정이지만 이렇게 환대해 주니 얼마나 좋은가! 앞으로 서로 연락하자고 다짐하며 떠나는 미키부부를 그들은 오랫동안 배웅해 주었다. 미키도 한결 밝은 표정과 들뜬 목소리로 모국의 친척들에게 고마워하였다.
5일째는 파주의 엄마품공원(Omma Poom Park)에 갔다. 미군캠프 한 귀퉁이에 해외 입양인들이 모국에 와서 위로를 받는 공간이다.엄마 품을 형상화한 여러 조각품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조각을 보며 무엇을 느끼고 얼마나 위로받을 수 있을까. 곁에서 바라본 미키의 심정을 알 수는 없으나, 무척 대견하고 꿋꿋해 보였다. 그리고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그레이야 말로 미키의 친구이자 우군(友軍)이 아니겠는가.
< 엄마품공원 모자상 @ 손 훈 >
그들은 우리의 동행을 마치고 엄마가 태어난 진주와 형제들이 성장한 부산을 더 둘러보고 귀국한다고하였다. 그러면서 나를 앙클(uncle)로 불러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기꺼이 '삼촌'이 되어 주마고 약조하였다. 잊지 말고 계속 연락하자며...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나는 어느새 미키와 소중한 인연을 맺어 그의 해맑은 미소에 점점 스며들었다.
** 미키부부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선 되었을 때, 그리고 오늘 첫눈이 내리자 우린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