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련 Aug 19. 2020

아이를 낳은 누나의 복직 준비

아이를 낳기 전 누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준비했다. 작은 자취방에서 나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 일을 했다. 여느 직장인처럼 업무를 처리하고 깐깐한 상사들을 대하며 진땀을 뺐다. 바쁠 때면 야근까지 하며 쓰러질 때까지 일했다. 남들보다 급여가 굉장히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었고 커리어에 욕심이 많았다. 다시 아침이 되면, 지친 몸이나 마음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누나는 다시 직장으로 출근했다.


월급을 받으면 남동생에게 용돈을 주기도, 맛있는 밥을 사기도 했다. 쉬는 날이면 실컷 늦잠을 잤고 아무렇게나 밥을 먹었다. 약속이 있는 날엔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았다. 아무렇게나 편해도 되는 여유를 자신에게 선물했다.



아이를 낳은 후 누나는 아침 7시면 일어나 아이들을 씻긴다. 본인은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밥을 정갈하게 요리해 아이들에게 먹인다. 남편은 회사를,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고 나면 누나는 의자에 앉아 조용한 집을 본다. 그리고 가만히 허무해진다. 


아이를 낳은 후 쉬는 날에는 조금은 늦게 일어난다. 남동생과 언니를 초대해 다 같이 식사를 한다. 식사를 준비하고 끝나면 다시 치운다. 쉬는 날에도 그녀의 하루는 엇비슷하다. 언니와 남동생을 보내고 쌓인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눕는다.  그러다 여전히 커리어를 쌓고 있는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고, 일하던 때의 자신을 떠올린다. 다시 일하고 싶지만, 시간도 여유도 부족하다. 어떤 무심함과 무게는 자꾸 그녀의 어딘가를 짓누른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조용히 허무해진다.



그런 누나가 복직을 준비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지만, 누나는 누나의 커리어를 다시 밟을 준비를 한다. 그녀는 일을 오래 쉬었다. 체력적으로 더 뛰어나고 젊은 동료들이 많다. 손에 놓은 일들이 다시 익숙해지려면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의 업무능력에 자책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기 전처럼 쓰러질 때까지 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에겐 다른 할 일이 있기에, 지켜야 할 것들이 많기에. 그렇기에 누나는 이제 더 많은 것을 책임지게 되었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누나는 조금은 두렵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타오르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누나는 조금 더 뜨거워졌다. 그리고 조금 덜 허무해졌다. 누나는 조용히 비어버린 무언가를 채워가고 있다. 누나는 그제야 누나다워졌다. 아이를 낳아도, 누나는 누나다운 당연한 것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녀의 삶을 제대로 알리 없는 무심한 남동생은 그저 몇 줄의 글로 누나를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군대에서 맞은 적 있느냐고 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