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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Aug 21. 2020

나는 당신의 농담이 1도 재밌지 않다

무해한 웃음 - 안전한 농담에 관하여

나는 A선배를 좋아했다. 그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성격까지 다정했다. 심지어 리더십도 좋고 일까지 잘하는 그런 퍼펙트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한참 스펙을 쌓으려고 혈안이던 대학생 때, 어느 프로젝트 그룹에서 만나게 됐다. 난 스무 살이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스물다섯-여섯 즈음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당시의 나는 키가 크고 머리도 크고, 얼굴 또한 심야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이렇게 늦게 들어가면 부인한테 혼나지 않느냐'라고 물을 정도로 노안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게 형 누나들은 '우리 막내'라며 나를 잘 챙겨주고는 했다.


당시의 나는 일을 하다가 난관에 봉착하면 혼자서만 끙끙 대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답답한 스타일이었다. 그럴 때면 A형은 내게 먼저 다가와 어려운 게 없느냐 묻고, 막혔던 부분을 손쉽게 해결해주고는 했다. 회의를 할 때도 그는 문어체와 구어체가 묘하게 섞인 말투로 말하고는 했다. 평소에는 영어를 한국어로 적절히 번역해놓은 듯한 스타일로 말을 했는데, 그 모습이 더 스마트하게 보였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이었던 나의 눈에 그 형은 동경이란 단어를 의인화시켜놓은, 어떤 판타지와 같은 멋진 형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 형처럼 멋있는 ㅡ얼굴도, 스타일도, 일머리도 그와 같은!ㅡ 사람이 되고 싶었다.




프로젝트 그룹 멤버들끼리 자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멤버들끼리 마찰이 일어났다. 자신만의 선을 가지고 있어 그 선을 침범하면 안 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선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꾸 그 선을 넘나드는 사람도 있었다. B누나는 그런 선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누나는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지만 자신만의 영역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술자리에도 자신의 컨디션에 맞춰 참석했고, 누군가가 장난을 걸어오면 적당히 받아주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조금 도가 지나치는 농담을 걸어올 때면 더 이상의 반응을 하지 않고 무시했다.


언짢지 않은 개그를 항상 고민한다는 코미디언 장도연 씨


그런데 일이 터져버렸다. 평소 장난기가 많고 선을 넘나드는 성격이었던 C형이 B누나의 신체를 가지고 농담을 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C형은 통통했던 누나의 체형을 가지고 우스운 분위기를 만들며 농담을 했고 주위 사람들이 그 농담에 어색하게 웃어버린 거다. B누나는 농담을 듣자마자 이내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어두워진 그녀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C형은 계속 떠들어댔는데, A형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C야. 장난이란 건, 모두가 유쾌한 분위기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거야. 네가 가지고 있는 유머러스한 성격은 너의 장점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안전하지 않은 농담이라면, 나는 도저히 너와 계속 같이 지낼 확신이 없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B누나는 먼저 가보겠다며 자리를 떴고 이내 A형도 짐을 챙겨 나갔다. 술자리는 누가 드라이아이스라도 던진 듯 급격히 차가워졌지만, C형은 그냥 장난친 건데 자기가 그렇게 심했냐며 툴툴댔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웃음이 유해하다는 걸 끝까지 몰랐다. 아니면 자신의 농담이 유해하다는 걸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사건 이후로 A형은 다른 멤버들에게 확실한 선을 그었고 그 전만큼의 다정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술자리는 열리지 않았고 그렇게 멤버들은 얼마 안 가 헤어졌다. 모두 연락이 끊겨 더 이상은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야 SNS에서 A형의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여전히 B누나와 잘 연락하며 지내는 듯했다.




살면서 A형과 B누나의 일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군 복무 시절 나는 피부에 트러블이 많이 올라왔는데, 한 선임은 곰팡이 제거제 약 광고가 TV에 나오면 내게 저 약을 발라보라는 농담을 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주저앉히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상황이었지만, 그곳에 A형 같은 존재는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A형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내 주위 어떤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농담의 희생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면 불편한 농담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 농담에 사람들이 웃어버린다면, 나의 불편함은 금세 희석되어버리고 만다. 이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것인지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니까. 하지만 내가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다. 누군가를 까내리면서 그에게 상처를 주면서 얻는 웃음은, 그저 죽은 웃음에 불과하며 하등 가치가 없다. 웃음은, 필히 모두에게 무해해야만 한다.


그녀는 불편한 웃음을 경계한다


나는 안전한 농담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상처 받지 않는 웃음에 대해 생각한다. 몇몇 코미디언들이 불편하지 않은 코미디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조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뿐 아니라, 웃음을 직업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그들에게는 이것이 큰 숙제일 것이다. 하지만 직업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불편하지 않은 웃음, 안전한 농담은 중요하다. 누군가가 무례한 농담의 희생가 된다면, 우린 모두 A형이 되어야만 한다. 나 또한 주저 없이 A형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녀는 모두에게 무해한 웃음을 꿈꾼다


당신의 농담은 나에겐 농담이 아니다. 당신의 장난은 어떠한 긍정적 작용도 하지 않으며, 그저 불쾌할 뿐이다. 안전한 농담이 아니라면 난 응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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