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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Aug 31. 2020

아빠도 누군가의 아들이란 걸, 너무 늦게 알았다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졌다. 할머니의 증상은 할아버지가 먼저 떠나시고 시작됐다. 증상은 아빠와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것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악화되셨고, 결국 아빠는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내가 기억하기로 할머니는 주체적이고 당당하신 분이었다. 할 말은 하시는 분이었고 몸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밭일도 굉장히 열심히 하셨다. 할머니는 막내아들인 아빠를 막둥이-라고 부르며 아꼈고, 아빠를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다. 아빠는 어려운 시골 집안에서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시골을 떠나 가까운 도시에서 열심히 대학을 다녔다. 대학을 마치며 아빠는 서울로 올라가 일을 구할 수도 있었다. 서울은 기회의 땅이었고 젊었던 아빠와 친구들은 상경해서 그 기회를 쥐기 위한,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빠에게도 뜨거운 열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더 멀어질 수 없었다. 온몸을 다 바쳐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가족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을 시작했고 그 사이 서울로 올라간 친구들은 큰 성공을 거뒀다. 언젠가 아빠가 본인도 그때 서울로 올라갔다면 더 큰 사업을 했을지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빠는 전혀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아 보였다. 아빠에겐 가족을 자주 보며 아끼고 사랑하는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아빠는 항상 바빴지만 가족에 관한 일이라면 무조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나에겐 큰 산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아직 쌓아 올린 것이 없는 언덕인 나에게 아빠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가족을 지키려는 본능이 강한 아빠를 보고 있으면, 만약 내가 세상 모두에게서 버려지더라도 아빠에게는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빠와 가족은 내가 언제 어디선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더라도 돌아갈 곳이 확실히 있다는 안정감을 줬다. 



하지만 양가적이게도, 든든한 아빠의 가장 큰 약점 또한 가족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까지 건강이 악화되시면서 아빠의 산은 조금씩 낮아졌다. 할머니는 조금씩 가족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우셨는데, 손주인 나나 며느리인 엄마, 심지어 아빠도 알아보지 못하는 때도 있으셨다. 그렇게 아빠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날을 대비해 마음을 가다듬으셨다. 할머니가 떠나실 날이 머지않은 거 같다고 말하던 아빠는 무덤덤한 척했지만, 어딘가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무심하고 미련한 아들인 나는, 아빠를 위로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바쁘게 손님들을 맞이했다. 쏟아지는 손님들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아빠는 슬퍼할 여유가 부족해 보였다. 이런 말은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으나, 식장 곳곳에서 호상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말이 아빠에게 위로가 될지 난 몰랐으나, 아빠는 그저 손님들에게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슬퍼하는 모습을 손님들에게 보이지 않았고 성숙하고 능숙하게 그들을 대했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며 정말 어른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런 게 어른의 모습이라면, 어쩌면 난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했다.



장례식 이틀 째, 입관식을 할 때였다. 꽃이 가득한 관에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모두가 모여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가지런한 수의를 입으신 채 누워계셨다. 그제야 아빠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는 할머니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엄마-엄마-하며 울었다. 할머니의 수의에 아빠의 눈물이 적셔졌다. 그때야 알았다. 사실 아빠도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엄마를 잃은 슬픔에 젖어 엉엉 우는 아이라는 것을. 아빠는 그저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산처럼 버틸 수밖에 없었던 한 명의 외로운 아이였음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간이 흘렀다. 가끔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 꿈을 꾸는 듯하다. 저번에는 꿈에서 혼났다고 한다. 그럴 때면 아빠는 늙은 아들이 되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들러 인사를 드린다. 하지만 인사를 끝내면 아빠는 여전히 나의 아빠로 살아간다. 네 명의 자식과 세 명의 손주를 지키는 한 가정의 아빠로 다시 살아간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빠는 처음부터 아빠라는 어른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인 아이였다는 걸, 난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건 아닐까? 



덤덤하게 다시 어른의 삶을 살아가는 아빠. 산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빠. 어느새 아빠보다 훨씬 커버린 나는, 그런 아빠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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