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슬픔을 내려놓고
대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있다. SNS를 밥 먹듯이 하던 그는 대학원생이 되자마자 학기 중에는 랩실에 갇혀 매일 연구만 하며 살게 됐다. 특유의 감성적인 사진과 예쁜 피드 색감으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던 그의 SNS 계정은 그가 석사 학위를 따는 동안 지속적으로 인기를 잃어갔다. 그는 다달이 나오는, 아주 작고 귀여운 수십만 원에 불과한 월급으로 살아가고는 했다.
반면에 나는 회사에서 돈을 벌고 있었고 그와 가끔 만나면 밥이든 술이든 사주며 그의 생활을 물었다. 아니, 솔직히는 엄청 놀렸다. 척척석사님과 겸상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이런 고학력자께 싸구려 음식을 대접해 죄송하다며 놀려댔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는 나의 조롱에 맞추어 적당히 반응해주면서 분위기를 맞춰갔다.
그날은 연말이었고, 오랜만에 그와 만나서 술 한잔 하는 날이었다. 대학원 얘기, 회사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주병이 넷이 되고 다섯이 됐다.
"대학생 때는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이더니. 돈 버니까 좋냐?"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진 친구가 물었다.
"대학생 때는 내내 돈이 없어서 힘들고 불안했는데, 요즘은 다음 달에 또 벌면 되지 생각하니까 안정감이 드는 거 같아."
나는 말을 마치고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털어 넣었다. 사실 얼결에 대답한 거였다. 안정감, 내가 정말로 회사를 다니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솔직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래, 안정감이 느껴지면 된 거야. 난 돈도 안 되는 연구나 하고 있지만... 그래도 더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니까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더라. 뭐, 그래 봤자 물론 너한테 밥술이나 얻어먹는 처지지만."
친구는 말을 마치고 멋쩍은 듯 웃으며 남은 술을 마셨다. 술집이 닫을 시간이 되어 이만 헤어지고, 친구의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또 만나기로 했다.
술집 밖으로 나왔다. 지난주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듯 세상이 거뭇거뭇 하얗게 번져 있었다. 이미 지하철 막차는 끊긴 시간이었다. 난 친구에게 택시를 불러 줄 테니 타고 가라고 했다. 친구는 괜찮다고, 버스 타고 가면 1시간 안에 도착한다고 했다. 나는 내가 풀코스로 쏘는 날이니 그냥 편하게 택시 타고 가라며 우겼다. 택시를 기다리며 친구가 미안한 듯 고맙다고 말했다.
"코트 예쁘네. 너한테 잘 어울린다. 나도 대학원 졸업하면 돈 모아서 사야겠다!"
낡은 패딩을 입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코트는 내가 얼마 전 월급을 받고 나서 구매한 고가의 코트였다. 나는 뭐가 예쁘냐고, 그냥 흔한 코트라고 말했다. 마침 예약했던 택시가 도착했고 친구를 태웠다. 친구는 택시를 타는 동안에도 오늘 하루 고마웠다고 말하며 다음엔 자기가 사겠다고 말했다.
"척척석사님의 풀코스 대접 기대할게요~!"
웃으며 말하곤 그를 보냈다. 휴대폰에는 술집에서부터 친구 집까지의 예상요금이 2만 3천 원이 나올 것이라는 알람이 왔고, 난 미리 결제를 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가는 길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나는 입은 코트를 더 여몄다. 휴대폰 진동이 주머니 안에서 울렸다. 내일 오전까지 급하게 처리해달라는 업무 연락이 쌓여 있었다. 내일 오전 안에 할 수 없는 양이었다. 난 집에 도착해서, 미리 일을 해놓기 위해 노트북을 켰고 요청받은 업무 리스트를 보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그러자 잘 들어갔다는 친구의 연락이 와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불안과 우울에 슬퍼하던 놈이...
돈 버니까 좀 나아진 거 같아서 보기 좋다~
난 잘 도착했어.
우리 각자의 길을 잘 걷다가...
나중에 웃으면서 만납시다!!'
사실 아니었다. 나아진 게 아니었다. 난 여전히 불안했다. 회사에서는 난 그저 소모품이었다. 소모품처럼 일하고 나서 받는 월급은 내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나는 오히려 돈은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는 친구의 심적인 안정감을 부러워했다. 내가 월급으로 샀던 고가의 코트 따위 사실 필요 없는 것이었다. 나는 오히려 낡은 패딩 안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그의 표정이 필요했다. 난, 경제력 같은 물리적 안정감이 아니라, 그와 같은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했다.
노트북 화면 속 업무 프로그램을 꺼버리고, 워드를 켰다. 내가 그간 써오던 소설들과 에세이들을 다시 읽었다. 출간제의를 받아서 기뻐하던 내 모습이, 작은 소설 공모에 당선돼 방방 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고치고 싶었다. 업무에 관해 떠드는 회사 사람이 아니라, 글과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료를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거 직장 생활하면서도 배울 수 있는 거 아닌가. 무작정 글을 배우겠다고 나섰다가 망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한 켠에서 여전히 날 괴롭혔다.
대학시절 졸업반 때, 내 전공수업은 재미없다며 국문과 전공 수업을 무작정 들었을 때 제출했던 에세이 워드 파일을 찾아서 읽었다. 타과생이 국문과 전공 수업을 듣는다고 모두가 날 이상하게 쳐다봤었지. 맞아, 이 에세이를 제출했을 때 교수님이 말했었지. 너무 고통스러울 땐 글 쓰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것 말고는 도저히 방법이 없더라고 말해줬었지.
그 후로 오랜 시간 고민을 하고 직장을 나왔고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꾸준히 쓰면서 공모전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난 누군가의 걱정처럼 작가가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돈 벌 자신이 없어 대학원으로 도피하는 것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아주 단호하게 말 할 수 있을 거 같다. 몇 살에는 얼마를 벌어야 한다는,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에 못 이겨 도피한 곳이 직장이었다고. 나에겐 도피처가 직장이었다고 말이다.
그래. 난 아주 분명하게, 하고 싶은 일을 배우면서 최선을 다해보는 친구를 부러워만 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난 어느새 놀려먹던 친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옥을 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냐고 친구가 말했다. 잘 모르겠다고, 그런데 내가 입은 코트가 편한지 지옥이 편한지는 그 지옥에 들어가 봐야 아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친구는 다시금 말했다.
그래, 이제 그만 슬픔을 내려놓고...
나중에 웃으면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