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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Apr 30. 2022

소설도 일기도 아닌

은수와 희진처럼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모르겠다는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지.”

“난 그래서 네가 좋아.”

“... 갑자기?”

“응. 솔직하잖아. 그래서 널 좋아해.”  


라고 시작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두 명이다. 이름은 은수와 희진. 그들은 사귄지 1년이 조금 넘은 커플이다. 은수는 말이 많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남겨두지 않고 꺼내는 편이다. 그에 비해 희진은 말이 없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은수의 넋두리로 채워진다. 은수는 희진이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만났다. 그리고 그 과묵함이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만났다. 하지만 요새 은수는 조바심이 난다. 희진의 질문 없음이 때로 은수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희진은 자신을 궁금해할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랑은 이미 끝난 거 아닐까 하고 은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은수의 고민이 해결됐는지 그건   없다. 무작정  내려간 소설 속에는 내가 쓰고 싶은 대사들 득실댔기 때문이다.. ‘사건-인물-배경’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학창시절 지겹게 외웠던 지식은 새까맣게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글쓰기는 쓰는 사람의 삶과 무관할 수 있을까. 내 글감은 주로 ‘나’다. 쓰는 글마다 ‘나’와 ‘내’가 너무 많이 나와 곤란하기 일쑤다. 그래서 이번엔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소설을 쓰면 나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빈약한 설정 탓인지 소설의 진도는 더이상 나가지 않았다. 자리를 고쳐 앉고 써놓은 소설을 다시 읽었다. 소설 속 문장들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큰 의미 없이 나열한 문장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모르겠다는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지.”

은수가 희진에게 건네는 이 문장은 사실 내가 글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언제부턴가 글쟁이는 내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우스갯소리로 작가님이란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작가는 글을 쓰는 목적이 뚜렷한 이가 아니던가. 그럼 난 도대체 왜 쓰는 걸까? 무얼 위해 쓰는 걸까? 무얼 쓰고 싶은 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보면, 남는 건 그저 쓰고 싶다는 욕망뿐이다. 목적도 없는 그 욕망은 끔찍이도 절망스럽다. 미치도록 쓰고 싶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니 속은 더더욱 허망하다. 허망함 끝엔 원망이 남고, 그러다보면 글도 쓰기 싫어진다. 하지만 쓰기 싫다는 그 마음 마저도 글로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그렇게 글을 쓴지 2년 차, 그리고 그 글이란 걸 더 잘 쓰기 위해 글쓰기모임에 참여한지 2개월 차다.


“응 솔직하잖아. 그래서 널 좋아해.”


조바심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함에 말을 꺼낸 은수에게 ‘그래서 네가 좋아’라고 대답하는 희진처럼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내 솔직함을 알아봐줬으면 좋겠다. 솔직하고 정직한 것 말고는 내 글엔 특별함이 없다. 물론 혼란스런 나의 고백은 글을 향한 것이지만 글은 대답을 할 수 없으니 내 글을 읽은 누군가의 반응이 내겐 희진의 대답과도 같다.


끝없는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은 것도, 소설의 내용을 구체화시킨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쓰고 싶다는 욕망으로 시작한 이 글을 마무리할 때다. 이 글이 내 마지막 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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