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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진 Nov 25. 2024

스타트업 주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취준 이야기

취업 전 이야기를 잠깐 하고 싶다.


대기업 면접에서 탈락하고 매일이 우울과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우선 신입 자리 자체도 많이 없었고 내는 곳 족족 탈락하거나 지원서 열람 이후 연락이 없었다.

아무 근거 없이 자만심으로 뭉쳐 '여기는 붙겠다' 싶었던 곳도 보기좋게 탈락했다.


남들은 잘 견뎌내는 것 같았는데 나는 이 기간을 버티는게 너무 힘들었다.

경력 공백에 대한 강박이 심하고, 사회에서 아무 기능도 못하는 백수 자체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지금 회사 이외에 가고 싶었던 곳이 따로 있었다. (물론 지금은 나름 만족하고 열심히 다닌다.)


두 곳은 인턴이었다.

하나는 중견기업의 채용전환형 인턴이고 다른 하나는 유망한 스타트업 인턴이었다.

인턴임에도 불 구 하고 두 곳 모두 왠만한 중견~대기업 신입 만큼의 보상을 제공하였으며, 커리어를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한 곳은 지금 회사와 마찬가지로 정보 하나 없는 초기 스타트업이었다.

그래도 공개한 초봉이 나쁘지 않아서 지원했다.




먼저 면접을 본 곳은 초기 스타트업이었다.

지금 회사와 마찬가지로 다른 회사 사무실의 한 칸을 빌려쓰는 곳이었다.


대표님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노련해보이고 에너지가 있어보였다.


대표님은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하셨고, 그렇기에 일부러 신입을 뽑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남자 직원이 편한데, 디자이너는 대부분 여자라 남자 디자이너가 면접을 보러와서 신나하셨다.


면접은 40분 가량 진행되고, 나머지 40분은 대표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회사의 비전과 향후 과제 등등

남자가 면접보러와서 좋다고, 그래도 합격한건 아니니 그건 알고 있으라고 하셨고 쉴새없이 이야기를 하셨다.


나를 좋게 봐주신거 같아서 괜시리 붙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표님과 함께 일을 하는 상상까지 했다.




그 주 금요일에는 스타트업 인턴 면접이 있었다.

말이 인턴이지 엄청난 분량의 자기소개서와 반나절이 꼬박 넘는 실무 테스트를 통과하고, 두 차례에 걸친 면접을 보야아 입사가 가능한 곳이었다.


다행히 실무 테스트까지는 통과하고, 면접을 보았다.

면접관들은 모두 젊어보였다.

다들 젊은 나이에 엄청난 보상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부러웠다.


면접 난이도는 생각보다 높았고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준비가 부족했다.

나는 스스로 자만하고 있었다. 

인사담당자의 연락도 빨랐고 모든 과정이 순조로와 이 정도면 당연히 붙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만하면 망한다.

면접 간 내 대답은 형편없었고 질문의 본질은 찾지 못한채 계속해서 횡설수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자만했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울 뿐이다.




다음주가 되었다.

희망을 놓지 않고 있던 나는 유망한 스타트업 인턴 탈락 연락을 받고 충격을 받아 하루종일 아무거도 하지 못했다.

동시에 면접관들이 근자감으로 무장한 나를 얼마나 웃기게 봤을까 생각하며 부끄러움과 우울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나를 남자라서 좋아하셨던 초기 스타트업 대표님께서 연락이 왔다.



정말 간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대표님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대표님은 우선 현 상황을 말씀하셨다.

현재 후보자가 날 포함해서 둘이고, 이틀 뒤 목요일에 다시 면접을 보고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연봉을 얼마나 깎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기분나쁘지만 그 당시에는 눈에 뵈는게 없어 많이 깎을 수 있다고 했다.

대표님은 알겠다고 하셨고 며칠 뒤 다시 면접을 보되, 이번에는 유사 서비스 알려주시며 공부를 해오라 하셨다.


그리고 집에 가서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랜딩 페이지를 외우다시피 했고 서비스도 가능한 모두 사용해보았다.




그날 오후 갑자기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추후 내가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될 회사의 인사담당자셨다.


3주 정도 전에 지원을 했던 곳이었고 연락이 없어 기억에서 지웠던 회사였다.

그분이 나에게 면접이 가능한 지 여쭤보셨고 최대한 빨리 방문을 원하셨다.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목요일, 재면접이 있는 날 오후에 면접 일정을 잡았다.


이 회사는 정보가 많이 없었다.

번듯한 회사 소개 페이지도 없고, 서비스는 기술적으로는 몰라도 디자인적으로는 미완성이었다.

그래도 기회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 재면접과 함께 나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재면접날이 왔다.

면접은 오전 10시로 회사가 집과 거리가 꽤 있어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하고 부랴부랴 달려나왔다.

그리고 가는 내내 붙기를 바라면서도 탈락할 때를 대비해 마음을 열어두려는 아주 이중적인 마인드셋을 내재했다.


회사에 도착해 대표님을 뵙고 다른 후보자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간단하게 공부해 온 것을 말하고 대표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표님의 말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실 딱 맞는 지원자가 있어 뽑기로 했고 우리는 회사 확장 후에 먼저 연락을 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덕담도 하셨다.

나와 다른 후보자 모두 실력은 훌륭하나 현 경제 상황이 좋지않아 취업이 어렵다는 말,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모두 좋은 곳에 취업할 것이라는 말,

마지막으로 회사를 확장하면 우선적으로 연락 주겠다는 말까지,


그때 정말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었다.

이렇게라도 불러줘서 감사하다고 해야할지 바쁜사람 불러다가 희망고문 하는 건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화나지만 그땐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


내일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면접을 마치고 회사를 나왔다.

다른 후보자와 가는 길이 맞아 잠깐 함께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화이팅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우울한 마음으로 다음 면접 장소로 향했다.

회사는 공교롭게도 두달 전에 부트캠프를 했던 곳 근처였다.

부트캠프 마지막 날 설마 여기를 다시 오겠나 했던 곳이었는데 다시 오게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두달 동안 맛집은 숱하게 찾아다녔기에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있었으나 별로 입맛이 없어 역에 있는 분식집에 갔다.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으나 살려고 억지로 음식을 쑤셔넣었다.

위가 딱딱하게 굳었는데 살려고 음식을 우겨넣는게 얼마만인지, 그때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우울하고 비참했다.


시간이 남아 음식을 다 먹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음료를 시키고 노트북을 열어 다시 한번 회사와 서비스에 대해 공부했다.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외엔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억지로 노트북을 쳐다봤다.


그 와중에 약간이나마 내 숨통을 트이는 긍정적인 연락이 왔다.

지난 주 모 채용 플랫폼에서 진행하는 취업 준비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합격 문자를 받았다.

이거라도 붙어서 다행이고 떨어졌으면 정말 비참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시간은 흐로고 면접 시간이 되어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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