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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an 28. 2021

나는 그곳에 있었다

몇 달 전,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너 여기 아냐?"


해안절벽 끝에 걸친 조수 웅덩이 사진이었는데, 물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해안가를 따라 제주도 한 바퀴를 다 걸어본 나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여기 제주도 맞냐?

"제주도 맞대. 여기까지 내려가는 길이 없어서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나 봐. 여러 가지 이유로 장소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하네."


장소를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더 묻지는 않았다. 그동안 인터넷에서 알려지는 바람에 지금은 갈 수 없게 된 장소가 얼마나 많았던가. (최근에는 진곶내 물개바위가 또 그렇게 출입금지 장소가 됐다)

다른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미지의 땅. 실제로 보면 어떤 모습일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졌다. 다행히 땅 모양과 바다 배경을 조합하니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그곳으로 가는 길도 해안 절벽 지형일 거라 예상되었기에 바다를 이용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공기주입식 카약을 꺼냈다. 그렇게 별안간, 예정에도 없던 항해를 떠났다.

그 날 카약 위에서 찍은 사진

찾지 못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총동원해 찾아보려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곳의 경치는 절경이구나' 하는 것만 확인했다. 아쉬웠다.

다만, 햇살이 따뜻하고 경치가 너무 좋아서, 카약을 타고 바다를 가르는 느낌이 좋아서, 조금은 위안이 됐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 분명 이 근처 어디인 거 같은데... 해가 저물어갔다. 별 수 없이 뱃머리를 돌리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곳은 내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갔지만, 가끔씩 바닷가에서 비슷한 지형을 볼 때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닿지 못했기에, 그곳은 주기적으로 내 모험심을 자극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내리라. 어떻게든.


몇 달 후, 추가 단서 하나를 포착했다. 우연히 다른 누군가가 그곳을 찍은 사진을 봤는데, 뒷배경에 작은 바위섬이 보였다. 내가 예상했던 그곳이 맞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지대가 해수면보다 1-2미터 정도 높아서 카약을 타고 가면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


다음날 바로 짐을 꾸렸다. 이번엔 길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무작정 '그곳' 추정 장소 근처로 가서 다시 해안가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찾아봤다. 기나긴 수색(?) 끝에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을 발견했다. 내려가 봤다. 예상대로 길이 험했다. 누군가 매달아놓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곳도 있어서 간만에 군대 유격 훈련하는 기분을 느꼈다.


다 내려와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찾던 그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 주위에 와 있음을 직감으로 느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주위를 둘려보니 저 멀리 사진 속 지형과 유사한 지형이 보였다. 내가 찾는 그곳이 저 너머에 있다면 지금껏 그곳이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이유가 설명이 된다. 가는 길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몰랐던 거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걸으니까 길이 된 것이다. 내가 만든 길을 따라 해안 절벽을 하나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 닿았다.


사진으로는 표현이 안된다. 절벽 높이는 20미터쯤, 물 웅덩이 깊이는 1.5미터쯤 되는 것 같다. 실제로 보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나는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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