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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Dec 08. 2020

여행이 일상인 듯, 일상이 여행인 듯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

나에게는 꿈이 있다.

여행을 통해 여행을 떠난 사람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고 남는 행복만큼 사회로 환원하는 여행'사'(社)를 만드는 꿈.

여행을 통해 여행을 떠난 모두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도록 돕는 여행'사'(士, 한자의 뜻은 '선비 사'지만, 비행사나 조종사처럼 전문적인 기예를 닦은 사람에 붙이기도 함)가 되는 꿈.




서른 즈음에, 나는 내가 여행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 후로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났다. 그때 이미 '인생은 여행이다' 만큼 내 인생 한 단어로 표현하는 데 적확한 단어는 찾을 수 없다고 론을 내렸다.


길 위에서 나는 쉬이 행복해졌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있던 냇가의 시작점이 궁금해 냇가를 거슬러 올라갈 때도, 하루 종일 걸으면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 떠난 도보 여행에서 기어코 100km를 찍고 쓰러졌을 때도, 새벽 2시에 출발해 겨우 오른 키나발루산 정상에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는 바람에 구토를 하며 일출을 맞이했던 그날도, 나는 행복했다. 그때마다 나는, 남은 삶은 여행하듯,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여행할 때의 나야말로, 타인의 욕망이 투영되지 않은, 순도 100퍼센트짜리 진짜 나임을 확신했다.

심지어 길을 잃었을 때도 길 위에서라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한 번은 자전거에 텐트 하나 메고 오키나와 일주를 떠난 적이 있었다. 여행 첫날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미리 봐둔 캠핑장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는데, 저 위에서 캠핑장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차를 타고 내려다.

"죄송해요. 오늘은 캠핑장을 운영하지 않아요."

(그렇다. 예약은 하지 않았다.)


주변을 검색해보니 숙소는커녕 작은 마을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외진 곳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뿐이었다. 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가다 보니, 바닷가가 보였다.

잠시 쉴 겸 침낭을 이불처럼 깔아놓고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바람이 쎄서 텐트는 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금방 떠나자니 바닷가 풍경이 너무 예뻤다. BGM으로 검정치마 3집, 넬 3집, 이소라 6집을 틀어놓고 플레이리스트가 끝날 때까지 3시간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가만히 앉아있을 뿐인데도 행복감이 눈앞의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때의 감정을 글로 겨 소중한 몇몇에게 카톡으로 전송했다. 이름 없는 바닷가에 침낭 하나 덩그러니 펼쳐진 내 이부자리 사진과 함께.


"예약한 캠핑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바닷가에 앉아 있는데, 여기는 추워서 자지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대책도 없어서 몇 시간 후면 숙소 구하러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이 상황이 뭐라고 이렇게 행복하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나는 평소 감정에 이름 붙이기를 즐긴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황홀한 감정이 나를 감쌀 때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그보다 더 큰 행복감에 휩싸일 때 쓰는 표현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이다. 이 열 글자 표현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 지금처럼 황홀한 순간이면 더없이 좋겠습니다'라는 뜻도 있고, '지금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기꺼이 제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지금까지의 삶만으로도 살만한 삶을 살았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남은 삶에 미련도 없습니다'라는 뜻도 있다. 그 날 내 느낌이 그랬다.


그렇게 깊고 진한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여운을 깨는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급히 길을 떠나야 했지만, 그 날 내 눈 앞에 보이던 풍경과 바다내음, BGM으로 깔아놓은 음악 소리와 파도 소리의 조화, 내 뺨을 스치던 바람 하나하나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그날은 밤을 새워서 하루 종일 걸었고, 다음날 다른 캠핑장에 들러서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었다.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지친 몸을 텐트 안에 뉘이고 되뇌었다.


'1평짜리 텐트만 있어도 살 수 있는 게 삶인 것을. 삶을 여행하듯 살면, 두려울 것이 없겠구나.'


그날 찍었던 사진을 찾아봤더니 없다ㅠ 다음 날 캠핑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대체한다.


그렇게 살다 가련다.

여행이 일상인 듯, 일상이 여행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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