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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Oct 25. 2024

천 번이 뭐야, 셀 수 없을 만큼 더

<1000x> - 슈퍼밴드 ver.

단비(첫째 딸)가 카톡을 시작했다. 종종 업데이트되는 단비의 프로필 사진과 카톡 배경화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날 단비의 카톡 배경화면에 Q&A 링크가 올라. 질문은 모두 10개.


다른 질문들은 답하기 쉬웠는데, 마지막 질문이 의외로 까다로웠다.

"나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노래는?" 

천해주고 싶은 노래야 지금 앉은자리에서 수백 곡도 더 써낼 수 있지만, 그중 단 하나만 른다면?하아... 어렵다. 그래도 단 하나만 고르라면 이 노래다.

<1000x>.- 슈퍼밴드 ver.


어떤 노래도 사연 있는 노래를 이기진 못다. 사연은 2019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아내영어 공부를 더 해보겠다했다. 그러라고 했다. 반전이 있었다. 석사 위를 취득하려면 교원대학교로 가야 한다고 했다. 럼 아이들은?성은이 망극하게도 아이 둘 데려가겠다고 했다. 나는 집에 혼자 남겨졌다. 나이 서른여덟에 처음 해보는 자취 생활이었다.


막상 혼자 남겨지니 할 게 별로 없었다. 함께 살 땐 그렇게 자유시간을 갈망했는데, 막상 혼자가 되니 그 많은 시간을 뭐하면서 보낼지 막막해졌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영화나 다큐멘터리,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 영상을 보다가, 지겨워지면 책을 보다가, 책도 지겨워지면 질릴 때까지 걷다 들어와 픽하고 쓰러져 다.


옛날 같았으면 TV라도 봤을텐데, 집에 TV를 없앤지는 십년쯤 됐다. 그랬던 조차도 본방 사수할 수밖에 없는 TV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으니 제목은 <슈퍼밴드>. 오디션 서바이벌 로그램 질릴 대로 질 나였지만, <슈퍼밴드> 프로그램 포맷부터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과 달랐다.


일단 악기 연주자도 참가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기타, 베이스, 첼로, 바이올린 등 모든 악기연주자가 참가할 수 있었다. 밴드 음악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현악기나 관악기들이  음악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슈퍼밴드만의 꿀잼 포인트였다.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무림의 고수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내공을 펼치고, 실력을 검증받으면 이미 천하를 호령하고 있는 무림의 초고수들이 그들을 양지로 끌어낸다는 컨셉마음에 들었다. 참가자들이 결성한 밴드의 프로듀싱을 도와줄 무림 초고수(프로듀서이자 심사위원) 라인업엔 무려 김종완(Nell의 보컬)조 한(Linkinpark의 DJ)이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첫 방송을 본방 사수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슈퍼밴드 1> 프로듀서 라인업

긴장된 마음으로 첫 번째 참가자 무대를 봤다. 그리고 직감했다. 무한도전 이후로 나를 매주 TV 앞으로 데리고 갈 프로가 생겼구나. 첫 번째 참가자 하현상이 부른 노래는 Kodaline의 <All I want>였다. 이거 선곡 미스 아닌가? 이 노래 소화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러나 JTBC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그를 첫 번째 참가자에 배치한 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노래의 첫 소절 'All I want is nothing more'에서 게임은 끝났다. 오디션 서바이벌은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하기에 기교파, 고음파 가수가 득세하기 마련인데, 하현상은 감성 하나만으무대를 뒤집어놓았다. 단 1픽 저장.

다음 화에선 에드 시런의 'Castle on the hill'을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보컬에 마음을 빼앗겼다. 다이내믹한 편곡과 자유분방한 무대 매너가 인상적이었다. 색도 노래와 찰떡이었다. 보컬의 이름은 아일. 2픽 저장.


하현상과 아일. 예선에서 나의 최애 보컬이었던 둘은 본선에서 같은 팀이 되고, 베이스와 첼로를 밴드 멤버로 해 본선 3라운드를 펼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누군가를 응원해 본 적이 없던 나도 이들만큼은 마음 졸이며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심사평에 어찌나 가슴을 졸였던지. 그러나 좋은 밴드의 역사 뒤엔 좋은 서사가 있기 마련. '시련 극복 후 부활' 만큼 좋은 서사는 없고, 이 시련을 극복해야 좋은 밴드가 는 법이다. 로 그 타이밍에 밴드 사의 흐름을 단번에 바꾼 노래가 나왔으니, 노래 제목 <1000x> 되시겠다. (1000x는 1000 times라는 )





Even if I'm leaving you at the door

비록 내가 네 곁에서 떠나더라도

Even when I know that you're never lonely

네가 결코 외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도

Harder than imagined

상상했던 것보다 힘들어

Harder when it's cold

네가 차가울 때보다 더

Even when I'm playing in the fire

내가 불 속에 있다 해도

Even when I'm doing it for all my life

널 위해 내 삶의 모든 걸 바친다고 해도

Harder than imagined

상상했던 것보다 힘들어

Harder when I let it go

놓아줄 때보다 더 힘들어

Tell me that love is enough

사랑은 충분했다고 말해줘

The seas will be parted for us

바다가 우리를 위해 갈라질 거야

Tell me that love is, ooh

오 내게 사랑은


In another lifetime

또 다른 삶에서도

I would never change my mind

내 마음은 절대 바뀌지 않을 거야

I would do it again

또다시 널 사랑하겠지

Ooh, a thousand times

천 번은 더

Just to let you in here

널 내 안에 둘 거야

Where you make me lose my mind

네가 내 머릿속을 뒤흔들 곳에

In another life I'd do it all again a thousand times

또 다른 삶에서도 널 사랑하겠지 천 번은 더


Never would I ever let my love escape you

결코 내 사랑이 떠나가게 하지 않을 거야

Never keep you from the promises I gave you

절대 네게 한 약속들을 어기지도 않을 거야

Further than imagined

상상한 것보다 더

Further than we've ever known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Tell me that love is enough

충분한 사랑이었다고 말해줘

The seas will be parted for us

바다가 우리를 위해 갈라질 거야

Tell me that love is, ooh

오, 내게 사랑은


In another lifetime

다른 삶을 살아도  

I would never change my mind

내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I would do it again

다시 널 사랑하겠지

Ooh, a thousand times

천 번은 더

Just to let you in here

널 내 안에 둘 거야

Where you make me lose my mind

네가 내 머릿속을 뒤흔들 곳에

In another life I'd do it all again a thousand times

또 다른 삶에서도 널 사랑하겠지 천 번은 더


      

필 그땐 첫째 딸의 생일 즈음이었고, 그날 밤 나는 옥탑방에 올라가 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2014년 7월 9일을 기억한다. 태풍 '너구리'가 귀여운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메가톤급 소용돌이를 몰고 우리나라로 북상하던 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홈에서 결승에 오르는 역사적인 현장을 보겠다며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웠던 날, 예상과 달리 브라질이 독일에 17 처참히 박살 나는 바람에 꿈인지 생시인지 잠도 달아났던 날, 그 여파로 생애 처음으로 학교에 지각한 그날.


큰 피해를 입힐 거라던 예상과 다르게 태풍 너구리는 세상에 단비(welcome rain)를 뿌렸고, 단비(정단비) 나에게 왔다. 단비와 엄마를 연결했던 물리적 탯줄을 자름과 동시에 앞으로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영혼의 탯줄을 연결했던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됐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때까지 내가 가졌던 모든 바람은 사치가 됐고, 난 더 바랄 게 없는 사람이 됐다. 단비 아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때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으나, 단비를 만나는 순간부터 내 모든 상처와 결핍 사랑하게 됐다. 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터널을 걷던 그때, 그 끝에 낭떠러지가 있을 걸 알면서도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던 그때, 그 시절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면 지금 단비를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기에, 이제 비로소 내 모든 상처와 결핍을 끌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늘 고맙다. 단비도, 그 시기를 버텨준 나도.


단비를 사랑한다는 건, 내 지난날의 상처와 결핍도 함께 사랑한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훗날 단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수정체가 탄생하기까지, 아빠 엄마 만나 사랑할 때까지, 내가 했던 셀 수 없이 많은 선택들 중 단 하나만 바뀌었어도 단비를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 말하자면, 단비를 사랑한다는 건 단비를 만나기 전 내가 했던 모든 선택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어 준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단비야, 아빠는 지금 Jarryd james의 '1000x'라는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어. 단비도 지금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읽어보렴. TV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인데, 가사가 어찌나 아빠 마음과 똑같은지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세상의 절반이 수면 아래로 잠기더구나. 시 후 눈물이 또르르 떨어고, 물을 다 흘리고 난 다음에 세상이 더 깨끗해진 듯한 기분이 참 좋았다. (단비도 아빠를 닮아 눈물이 많다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게 될 거야. 시원하게 울고 나면 세상이 환해지고 흑백처럼 보이던 세계가 고화질 LED 컬러 TV로 탈바꿈하는 그런 기분)


다만 노래에서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 가사가 있었는데...


‘다음 세상에서도 내 마음은 변치 않을 거예요.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천 번이라도 더’


아빠는 다음 세상을 믿지 않. 다음 세상에서 사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아빠는 이번 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해. 가능한 한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남김없이 주고 가려한단다. 그리고 또 마음에 숫자야. 1000 times. 아니, 천 번이 뭐야? 아빠는 수만 번, 수억 번도 더 단비를 사랑할 자신이 있. LUCA(지구상 최초의 생명체)가 아빠-단비로 이어지기까지의 지난한 역사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가장 오래된 마음(사랑이라는 마음이 생겨 자손을 남기게 되고 그다음 다른 생명체를 경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음을 떠올리자. 사랑을 지키려다 보니 타인을 경계하는 마음도 생기게 된 것이다)을 수만 세대에 걸쳐 진화시켜 왔을 테니 얼마나 애절한 마음이겠어. 그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단다.


지금 혹시 밤이라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봐. 아빠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글을 쓰고 있거든.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빛은 아주 오랜 전에 별에서 보낸 빛이 긴 시간을 우주 공간을 여행한 끝에 우리에게 닿는 거란다. 그중엔 이미 세상에 없는 별이 보낸 별빛도 있다고 해. 별이 폭발하는 순간, 별빛만 남기고 사라진 거지.


아빠는 단비한테 그런 별빛이고 싶어. 살아있는 동안 가능한 온 힘을 다해 단비를 비추는 별. 언젠가 아빠도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겠지? 그때도 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단비를 향한 별빛을 보내고 떠날 거야. 그러니 아빠가 떠나더라도 밤하늘의 별빛으로 남았다고 생각해 줘. 가끔 밤하늘의 바라보며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있다면 아빠가 보낸 별빛이라고 생각하길 바라.    


가끔은 산다는 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행복이라는 감정은 쉽게 적응이 되어 점점 느끼기 어려워지는 반면, 불안과 고통 기본값으로 주어졌으면서도 점점 자주 찾아오지. 그 끝에는 결국 죽음이라는 허무가 기다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건 불안과 고통 사이 작은 틈새마다 '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답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비는 아빠에게 그런 존재란다. 단. 비. 두 글자만으로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만능 치트키.


밤하늘이 별이 아른거린다. 저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쩌다 지구라는 별에 사람으로 태어나는 행운을 얻어 나를 나로 만난 걸까 궁금해졌는데, 편지를 쓰면서 답을 찾았다. 아빠는 단비를 만나기 위해, 단비를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아빠의 결혼식 입장곡 제목도 'I was born to love you' 였단다^^)

단비야, 사랑해. 


20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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