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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Sep 13. 2024

지금 아니면 기회는 없어

<Lose yourself> - Eminem

지난달, 교감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명퇴 신청하는 거 맞지? 명퇴 신청 공문이 왔길래 마지막으로 확인하려고..."

"네. 맞아요."


지난 몇 년간 품어온 꿈인데도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올해 명퇴 경쟁률(?)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국가에서 나의 요청을 받아준다면 몇 달 후 나는 국가 인증 백수가 된다. 책으로도 미리 은퇴 선언을 해놓았기 때문에 응원은 이미 많이 받았다. 말이 좋아 응원이지 그냥 참고 다니라조언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형이 지쳐서 그래요. 힘들면 휴직하면 되잖아요. 돌아와서 글도 쓰고 여행도 다니고 하면서 쉬엄쉬엄해요."

"저 아는 선생님도 작년에 명퇴했는데, 지금은 후회하신대요."

"요즘 경기가 안 좋으니 이래저래 다른 직종들도 쉽지 않은가 봐요."

그리고 이쯤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미생>의 그 유명한 대사.

"여기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평생 선생님 하다가 퇴임하는 거야말로 나에겐 가장 확실한 지옥이야.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만약 지금 떠나지 않으면 나는 평생그때 다른 길 가볼 걸, 후회만 하다가 눈도 못 감고 죽을 거야."


간혹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부럽다', '꿈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울 수 있용기가 대단하다'는 응원도 있었,

집에 재산이 많아 그만둘 수 있는 거라는 근거 없는 추측도 있었다. 실제로 나를 제주도 굴지의 분재원 사장 아들로 알고 있는  분도 계셨는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런 소문을 어디서 들었냐고 여쭤봤더니 누구한테 들은 지는 모르겠는데 분명 그런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 소문은 '40대 초반 가장이 돈도 없는데 명예퇴직을 할 리가 없음 - 그러고 보니 학교에 캠핑카 타고 다님 - 아마도 부잣집 아들인 듯' 사고 테크트리의 산물로 보였다. (절 분재원 사장 아들로 알고 계셨던 k 선생님, 제가 집에 돈이 많았다면 왜 교직경력 20년만 기다렸겠습니까... 왜 갑자기 눈앞이 뿌예지는 걸까요. 저 잠시 울고 올게요)


 '가장 듣기 좋은 응원 경연대회' 황금종려상은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왔다. 지금 허허벌판으로 나가기엔 경가 좋지 않다는 현실 인식파와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야 한다는 인생개썅마이웨이파 사이의 열띤 토론이 펼쳐 때, 구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후배가 해준 한마디.

"형은 뭘 해도 잘할 사람이니까 난 걱정 안 해."


순간 울컥했다. 뭘 해도 잘할 사람. 듣기 좋은 말이지만, 솔직히 내가 그런 사람인가 자문해 보면 솔직히 자신 있게 답할 자신 없다. 그동안 어그러진 계획들만 봐도 그렇다. 여행사 사장, 독립서점 사장, 작가 등 현실 앞에 스러져간 꿈의 시체들이 쌓여가는 동안, 명퇴 시점이 1년 앞으로 다가오는데도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던 나였으니.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두 딸을 재우고 나니 밤 10시 반. 늘 이 시간엔 밤 산책을 가곤 했는데, 그날따라 몸이 노곤하니 밖에 나가기가 귀찮았다. 하필 시선이 닿는 곳에 보이는 스마트. 그래, 오늘 하루는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보자.

이럴 땐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영상들을 보곤 하는데, 그때 걸려든 영상 하나가 내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될 줄이야. 영상은 2022 FISM(3년마다 열리는 세계마술대회. 마술계의 올림픽이라 불림) 매니퓰레이션 분야에서 1등을 수상한 박준우 마술사의 카드 매니퓰레이션(빈 손에서 카드가 계속 나오는 등 손기술을 이용해 카드로 신기한 현상을 보여주는 마술) 영상이었다.


끝이 없는 세계를 좋아한다. 대개 인간의 끝없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예술 분야가 그러한데, 마술도 그중 하나다. 이젠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싶은데도 상상도 못 했던 장르와 기술들이 튀어나온다. 어차피 손 안에서 이뤄지는 기술들인데 새로운 게 생겨봐야 얼마나 더 생길까 싶은데, 인간의 상상력과 이를 구현해 낸 열정과 집념에 감탄, 또 감탄할 따름이다.


간만에 느껴보는 몰입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새벽 4시 반. 그렇게 6시간을 같은 자세로 몰입해 있었. 화장실도 안 가고, 물도 안 마시고 무려 6시간을, 같은 자세로. 래 들어 뭔가에 이렇게 깊게 몰입해 본 적 있었나? 온몸에 뜨거운 뭔가가 퍼져나갔다. 아직 마음속에 미련이 남아있었구나. 직 포기를 못했구나. 울컥한 마음에 마음을 식히려고 새벽 밤을 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마음속에 마지막 남은 불씨를 꺼뜨릴 용기가 내게 없다는 것을. 늦었지만 그 길을 다시 가보자. 끝까지 가보고 별 게 없다면, 끝에 닿기에 내 열정이, 내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때 돌아서자.


한시라도 뭔가에 빠져있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평생 취미를 갈아치우며 살아왔지만, 그중 가장 오랫동안, 가장 깊게 빠졌던 건 오직 마술이었다. 다른 취미들은 길어도 1, 2년 정도 하다 지루해지면 그만뒀지만, 마술에는 의 20대 초중반을 갖다 바친 것만 봐도 그렇. 그렇게 마술사라는 꿈은 더 이상 내게 남은 카드가 없다며 절망했을 때, 기 상황을 대비해 카드 뭉치 맨 아래 숨겨놓은 조커 카드로 등장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나는 마술사라는 퇴직 후 플랜에서 제외시켰던 걸까? , 맞다! 그때 그 사건 때문이었지...



교대에 다닐 때부터 마추어 마술사로 종종 무대에 섰다 보니 생님이 된 후에도 학교에 와서 공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곤 . 평일 낮엔 나도 수업을 해야 하니 공연의 대부분은 수학여행 레크리에이션이나 학예회, 학교의 방학 행사 찬조 공연이 대부분이었다. 돈 한 푼 안 받고 참 많이도 다녔다. 땐 무대에 서는 느낌 자체가 좋았으니까.


그런데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실은 내향적 인간인데 그동안 외향적 인간의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는 것을. 내향적 인간으로 살면 이렇게 편한 걸... 그때부터 무대 위의 설렘이 긴장감으로 다가왔고, 점점 무대를 기피하게 됐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마술이란 게 하루 뚝딱 준비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카드 매니퓰레이션 같은 마술은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습하는 데만 최소 몇 달이 걸린다. 20대 중반 까지는 시간이 많았기에 카드 매니퓰레이션도 무대에서 선보이곤 했었는데 직장이 바빠지다 보니 연습할 시간이 없어졌다. 별 수 없이 마술 공연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연습 없이 바로 할 수 있는 쉬운 마술들로 루틴을 짜게 됐다.


불러주는 곳이라도 많으면 열심히 연습할 텐데 공연할 기회라고 해봐야 1년에 두세 번이 다였고, 공연비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많이 받아봐야 10만 원 남짓. 재료비, 기름값, 연습 및 세팅, 정리에 투입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남는 것도 없었다. 공연 요청 들어오면 하루 이틀 연습하고 바로 할 수 있는 마술로 대충 공연 루틴 짜고 적당히 시간 때우고 오자는 마음 생길 수밖에.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그 공연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6학년 수학여행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40-50분 정도 마술 공연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시작부터 다른 공연과는 분위기가 다름을 감지했다. 마술 시작 전에 학년부장 선생님이 애들 앞에 나와서 를 소개하는데 2백 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 중 선생님을 쳐다보는 아이는 앞줄의 몇 명이 다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교실붕괴의 현장인가? 아니, 이건 한 학년 전체가 이러고 있으니 학교 붕괴의 현장이라 해야 되나? 아, 이때 도망 나왔어야 했다.


그래도 내가 마술 시작하면 날 봐주겠지 했는데 마술을 시작해도 분위기가 쌩- 솔직히 나도 준비 별로 안 하고 간 건 인정하지만... 최소한 사람이 앞에 있으면, 사람이 말을 하면 얼굴을 봐줘야 하는 거 아닌가? 대한민국의 공교육의 처참한 상황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지만, 그래서 지금의 미래를 예견한 4-5년 전에 하루라도 빨리 학교를 떠야로 마음먹은 나였지만, 공교육이 무너진 지 오래라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말만 하면 뒤에서 ‘기모찌 기모찌’ 이러는 애들이 있었고, 카드 선택할 사람을 고를 때에도 여학생을 고르면 ‘남혐, 남혐’, 남학생 고르면 '여혐, 여혐' 이러는 애들이 있었다. 그것도 여러 명. 진심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음 순서가 장기자랑 시간이어서 다들 장기자랑 연습하고 있었다고 다. 이 소식을 듣고도 위안은 되진 않았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였다. (몇 달 후 날 섭외한 선생님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병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냥 그런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하필 그때 선생님들은 밖에 다 나가 계셔서  혼자 그 많은 아이들을 혼자 이끌어야 했는데, 가 담임이 아니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 너네 이러면 안 된다고 회유도 해봤는데 역시나 먹히 않았다. 오죽했으면 중간에 그만하고 나갈 생각까지 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필 그날, 아내와 두 딸이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마술 역사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망한 그 공연을... 중간에 음악을 틀어주던 아내에게 가서 이거 도저히 못하겠다, 섭외해 준 선생님한테는 죄송하지만 여기까지만 하고 마무리하자고 했는데, 아내가 그래도 끝까지 시간을 채우자고 했다. 그리고 마주친 두 딸의 눈빛. 첫째는 어떤 상황인지 감 잡은 것 같은데, 영문도 모르고 ‘아빠, 멋있어요’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둘째의 유난히 빛나던 그 눈빛.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마술을 안 하기로. 

'이런 아이들은 카퍼필드가 와도 집중 못 시킨다. 내가 다시는 무대 올라가나 봐라.'

그렇게 그 공연은 나의 (망한 첫 공연이자)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그 이후로는 마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트라우마가 발동되었다. 일종의 PTSD였다. 가끔씩 꺼내어 연습했던 카드는 다신 꺼내지 않다. 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아직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끔은 '내가 그날 제대로 마술 공연을 했다면 그 아이들도 집중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가도 '아니야, 그 아이들은 카퍼필드가 와도 집중 못 시켰을 거야' 하는 생각이 바로 튀어나왔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의 끝은... '하필 두 딸이 본 아빠의 처음이자 마지막 마술 공연이 그 공연이라니...'였다. 아빠가 그렇게 허접한 마술사는 아닌데... 패자부활전이 절실했다. 퇴를 하면  남아도는 건 시간일 테니 어쩌면 지금이 도전의 적기였다.


 

Look, if you had one shot, one opportunity

이봐, 네가 단 한 발, 단 한 번의 기회로

To seize everything you ever wanted, in one moment

원했던 모든 걸 얻을 수 있게 된다면

Would you capture it

그 기회를 잡을 거야,

or just let it slip?

아니면 그냥 날려 버릴 거야?      

- <Lose yourself> 중


원했던 걸 모두 얻지 못해도 좋다. 그저 두 딸에게 제대로 된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 이미 돌아갈 다리는 불태운 지 오래, 저기 내 뒤에 불타는 다리만큼이나 내 열정은 뜨겁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상상조차 못 했던 로 이탈이지만, 두렵지 않. 언제나 그렇듯, 지금껏 그래왔듯 이번 선택도 무조건 옳은 선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잃을 것은 겨우 손안에 쥘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지만, 내가 얻을 것은 나머지 모든 것이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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